주간동아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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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번역해놓고 무심 법치주의 수치죠, 수치”

FTA 번역 오류 잡은 송기호 변호사 “영어 우월주의 사로잡힌 외교부 사고 이해 못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journalog.net/gangpen @gangpen

    입력2011-03-14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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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번역해놓고 무심 법치주의 수치죠, 수치”
    국내 기업이 완구류를 한국산으로 유럽에 수출하려면 제품에 수입 원자재를 얼마 이상 쓰면 안 될까?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국내 완구업체는 바로 이 ‘비원산지 재료허용 비율 기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칫 이 기준을 넘기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낭패를 당할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비율이 낮으면 값싼 수입 원자재를 활용하지 못해 그만큼 원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기업의 채산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부가가치 기준’이라고도 한다.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한-EU FTA 비준동의안 한글 번역본에는 이 비율이 40%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영문본엔 50%로 돼 있다. 외교부에서 번역을 하면서 잘못 옮긴 결과다. 왁스류 비원산지 재료허용 비율도 영문본에는 50%로 돼 있는데, 한글본에는 20%로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처음 지적한 주인공이 바로 통상 분야 전문변호사인 송기호(48) 변호사다. 유럽 쪽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에 수출입 국제계약이나 무역분쟁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주려고 한-EU FTA 한글본과 영문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 송 변호사를 더욱 어이없게 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틀리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어이없었던 것은 외교부가 내가 지적한 그것만 고쳤다는 점이다. 당연히 다른 내용에도 문제가 없는지 전체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드시 전체적 점검 필요

    결국 송 변호사가 직접 나섰다. 전체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고 3차 서비스산업 중 유럽 쪽에서 개방을 약속한 부분만 살펴보기로 했다. 주말 이틀을 꼬박 투자해서 번역상의 오류를 찾았다. 결과는 한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진금지조항’에 대한 오역이다. 신용평가나 신용조사와 관련해 대외개방을 하면 다시 뒤로 돌릴 수 없다는 의미의 조항이다. 각국의 정책 재량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예민한 부분이다. 이 조항에 대해 영문본은 ‘역진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글본에는 ‘다시 금지하지 않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송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그 뜻을 명확히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영문본에 들어 있지도 않은 ‘동의’가 포함됐다. 또 우리 정부가 마음대로 동의할 수 있고 안 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진 것처럼 해석했다. 이는 번역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의 거듭된 지적으로 외교부는 한글본을 재정리했지만 여전히 오역 투성이다. ‘or’를 ‘그리고’로 번역한 것이 있을 뿐 아니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한정사인 ‘any’를 빠뜨린 문장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FTA 관련 규정을 보면 영문본이든 한글본이든 모든 국가의 언어로 정리된 정본은 동등하다고 돼 있다. 그러니 당연히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한글본에 문제가 있으면 영문본을 따르면 된다는 태도다.

    송 변호사는 “일반 시민과 기업이 영미법 국가체계를 바탕으로 정리된 영문본으로 법률생활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외교부가 영어 우월주위에 사로잡히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한글본을 경시하거나 무시하고,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지경에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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