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도망가다 ‘쿵’, 붙잡히면 ‘발뺌’

‘제2 윤창호법’ 첫날 ‘강변북로 가는 길’ 단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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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6-26 17: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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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전 0시 5분경 경찰들이 음주 사실이 의심되는 택시 운전사를 단속하고 있다. [사진 김우정 기자]

    25일 오전 0시 5분경 경찰들이 음주 사실이 의심되는 택시 운전사를 단속하고 있다. [사진 김우정 기자]

    6월 24일 오후 11시 40분 서울 마포구 합정역 8번 출구 앞.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도 인근 술집에는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술에 취한 사람만큼이나 이 곳을 빠져나가는 차량도 많다. 동교동 삼거리에서 홍대입구역을 지나 양화대교로 향하는 왕복 8차선의 양화로의 통행량이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양화로에서 분기하는 2차선 도로 한 편에서 경찰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양화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하는 길목이다. 왼쪽 차선으로 빠져 구리시 방면으로, 오른편 차선 통해 고양시 쪽으로 향하는 차량들 사이로 경찰관들이 도로에 주황색 ‘라바콘’을 설치한다. 

    시계가 0시 0분을 가리키며 날이 바뀐다. 25일을 기해 적용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이른바 ‘제2 윤창호법’에 따른 ‘전국 음주운전 특별단속’이 시작됐다. 이 날 양화대교 북단의 ‘음주운전 특별단속’에는 마포경찰서 교통과와 인근 지구대 소속 경찰관 11명과 차량 5대가 동원됐다.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윤창호 씨가 만취운전자의 뺑소니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 때문에 같은 해 11월에는 흔히 ‘윤창호 법’이라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국회에서 통과, 12월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도로교통법 개정안’(개정안)도 같은 맥락에서 ‘제2 윤창호법’으로 불린다. 개정안에 따라 인명피해와는 별개로 면허정지 및 취소 대상인 음주운전의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이 대폭 강화된다. 징역, 벌금 등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숙취 속 운전대 잡은 택시 기사

    단속현장 지휘를 맡은 마포경찰서 교통안전2팀장 이정효 경위는 “인근 홍대나 합정 지역은 유흥가가 밀집해 평소 음주운전 차량이 많다. 정확한 위치는 알릴 수 없지만 현 위치 포함해 여러 장소에서 단속을 자주 시행한다”고 귀띔한다. 



    단속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된 오전 1시 5분경. 갑자기 ‘음주감지기’가 노란색 불빛과 함께 “삐삐삐”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첫 단속 대상은 놀랍게도 60대 후반의 택시 운전사. 갓길로 택시를 유도한 경찰관들이 운전사를 경찰차 뒤편으로 이끌었다. 

    경찰관이 “입 한번 행구고 음주측정기에 풍선 불 듯 숨을 내쉬라”고 말하며 생수 한 잔을 권한다. 택시 운전사는 “술 마신 것은 엊그제다. 오늘 운행 전에 크림빵 먹고 가글했을 뿐”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는 갖고 있던 초콜릿 우유를 연신 마시며 “정말 술 안 마셨다”며 강변한다. 

    경찰관들이 물을 권하는 이유는 만에 하나 있을 억울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현장 경찰 관계자는 “빵 종류도 반죽 발효하는 과정에서 소량이나마 알코올 성분이 생기고 구강청정제도 알코올이 들어가는 제품이 많아 ‘음주감지기’에 걸리기도 한다. 이 같은 경우 물로 입을 행구면 ‘음주측정기’에는 알코올 수치 ‘0’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가 분 음주 측정기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22%를 가리킨다. 기존에 혈중 알코올 농도 0.05~.01%에서 0.03~0.05%로 강화된 면허취소 기준에 0.008% 못 미치는 수치다.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음주 후 운전대를 잡은 것 자체는 사실인 것이다. 

    택시에 탔던 승객인 50대 이 모씨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원래도 술을 입에 대면 운전 안 하지만 마침 어제 아침 ‘제2 윤창호법’ 시행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택시타고 귀가할 생각이었다. 택시 운전사가 음주 단속에 걸리다니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도망치다 ‘딱 걸린’ 무면허 음주운전자

    25일 오전 0시 53분경 음주운전 사실이 확인된 강 모(33)씨가 경찰로부터 ‘면허취소’ 처분을 받고 있다.

    25일 오전 0시 53분경 음주운전 사실이 확인된 강 모(33)씨가 경찰로부터 ‘면허취소’ 처분을 받고 있다.

    원활하게 이뤄지던 단속에 또 다른 음주운전자가 포착된 것은 12시 53분경. 경차에서 내린 강 모(33)씨의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술 냄새도 제법 났다. 강 씨는 경찰의 단속에 순순히 응했다. “홍대 근처에서 1시간 동안 데킬라 4잔 가량 마셨다”는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3%. 소주를 반 병 이상 마셨을 때 검출되는 수치다. 경찰관이 “어제까지는 면허정지에 해당하지만 오늘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른 기준 강화로 면허가 취소된다”고 설명한다. “오늘부터 윤창호법 시행되는 사실 몰랐느냐”는 질문에 강 씨는 “죄송하다”며 말을 아꼈다. 

    이렇듯 실제 단속에 적발된 음주운전자는 어떻게 될까. “최근에는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하고 신원이 확인되면 대개 귀가 조치한다. 이후 담당 경찰관과 일주일 이내로 일정을 조율해 경찰서로 출두한다.” 마포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장 이동일 경감의 설명이다. 취객에게 다시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기에 보통 현장의 경찰관들이 대리운전 기사를 대신 불러 집으로 보낸다. 

    이 경감은 “음주운전 처벌은 면허정지나 취소 등 행정처분과 징역 혹은 벌금형 같은 형사처벌을 병행한다. 현장에서 적발한 음주운전자의 음주경위 등을 조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것까지가 경찰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개정안에 따라 강화된 구형기준은 면허정지의 경우 징역 1년 이하 혹은 벌금 500만 원 이하, 면허취소는 징역 1~2년 혹은 벌금 500만~1000만 원이다. 같은 면허취소더라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 이상으로 높을 경우 형량도 징역 2~5년 내지 벌금 1000만~2000만 원으로 높아진다. 

    단속 종료 예정 시간인 2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1시 40분경. 갑자기 “끼익”하는 타이어 마찰음이 들렸다. 단속 현장 쪽으로 주행해오던 흰색 다마스 차량이 음주 단속 현장을 보고 후진 도주를 시도했다. 차는 인근 합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강변북로 북단 진입로로 이어지는 희우정로를 따라 오던 중이었다. 근처에서 ‘음주감지기’를 운용하던 이승헌 경장을 비롯한 경찰관들이 “차를 멈추라”며 황급히 뛰어간다. 다시금 후진을 시도하다 주차된 차를 들이받은 해당 차량은 경찰관들의 제지로 결국 멈춰 섰다. 


    25일 오전 1시 40분경 음주 단속 현장에서 도주를 시도한 강 모(49)씨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25일 오전 1시 40분경 음주 단속 현장에서 도주를 시도한 강 모(49)씨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운전자 강 모(49)씨는 차에서 내린 후에도 경찰들의 손을 뿌리쳤지만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이내 다시 붙잡혔다. 한 눈에 봐도 상당히 취한 듯한 강 씨는 음주 측정을 위해 장비가 있는 경찰차로 100m 남짓 이동하는 와중에도 여러 차례 반항을 시도했다. “나도 내가 잘못한 것 안다”는 둥 10분 이상 횡설수설하며 측정을 거부하던 그는 경찰의 설득 끝에 결국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었다. 결과는 개정안 도입 전후 모두 면허취소에 해당되는 0.15%. 경찰의 조회 결과 그는 심지어 2015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경찰관이 음주운전자 적발 시 현장에서 작성하는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를 꾸미기 위해 강씨에게 음주 정황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혼자 소주 1병 가량을 마신 후 금천구 독산동의 자택으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수백m 이상 주행하던 중이었다. 조금 진정됐는지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고 말한 강 씨는 이내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에 서명하고는 경찰서로 임의동행 조치됐다. 무면허 상태로 음주운전을 한데다 도주까지 시도했기 때문이다.

    ‘정치망’ 방불케 하는 단속 기법

    이 경위는 “음주운전은 습관성이라 재범률이 높은 편이다. 습관성 음주운전자는 경찰관이나 음주 단속 현장을 보면 불안감에 반대 차선으로 유턴이나 후진을 시도해 추가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많다”고 설명한다. 차량 행렬에 있을지 모르는 음주운전자의 이런 돌발 행동에 대비해 경찰의 단속 현장도 전략적으로 꾸려진다. 

    이 경위는 음주운전 단속을 ‘낚시’에 비유한다. 큰 어망만 던지고 손놓고 있으면 여기저기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 가령 통행량이 많은 대로만 통제할 경우 근처 골목길로 음주운전자가 우회할 우려가 높다. 직접 통제하지 않는 차선의 경우 단속 현장이 육안으로 식별되는 지점, 이른바 ‘목길’에 경찰관을 배치한다. 오늘 다마스 차량이 도주를 시도한 희우정로 골목이 바로 그렇다. 음주운전 차량을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동시에 단속에 따른 교통 정체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오늘 현장의 경우 일방통행만 허용되는 2차선 도로이므로 일단 합정역 사거리 방면에서 진입해 온 차량의 유턴은 불가능하다. 대신 갓길에 주차된 경찰차 중 선두가 강변북로 쪽으로 도주하는 음주운전 차량을 추적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경위는 얼마 전 음주 회식 후 부른 대리운전 기사와 만나기 위해 대로변으로 짧은 거리 주행한 운전자를 적발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75%로 면허정지였다. 올해로 28년차 베테랑 경찰인 그는 “음주 단속을 하다보면 이렇게 일견 딱한 사정도 없지 않다”면서도 “취객이 운전대를 잡은 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순간 모든 사고가 시작된다”며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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