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매립장을 방불케 하는 집 안 풍경, 집구석에 놓인 고무통 안에서 발견한 오래된 두 구의 시신…. 엽기적인 풍경은 ‘포천 빌라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모(50) 씨가 ‘호딩(Hoarding·저장강박증)’을 앓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정신장애 증상이 범죄 행위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곤란하다”면서도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호딩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2011년 국내에 출간된 ‘잡동사니의 역습’은 ‘호더(hoarder·저장강박자)’ 20여 명의 행동 양태와 치료 내용을 다룬 책이다. 호더는 작게는 추억의 물건과 희소한 물건, 더 나아가서는 자기 배설물까지 수집하고 집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외상이나 상실로 트라우마를 겪고 물건 수집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피의자 이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1995년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엽기적인 풍경과 호더의 생활
호더를 위해 서울 노원구청은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들의 집을 청소, 소독하고 심리치료를 연계하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쓰레기집’의 주인은 주로 저소득층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이다. 집을 치우는 현장에 동행하고 싶어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는데 “우리도 다음 일정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반기에도 계획 중이지만 일정을 확답하기는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호더는 대부분 집을 치우는 행위 자체에 불안감을 느끼고 협조하지 않는다. 집을 치우려면 길게는 두 달 반 가까이 여러 차례 방문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생물을 수집하는 ‘애니멀 호더’도 있다. 잡동사니는 미관을 해치고 악취를 발생시키는 데 그치지만, 좁은 공간에 수십 수백 마리 동물을 ‘방치’하는 애니멀 호더는 자신과 동물들의 건강, 생명까지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7월 13일 자원봉사자들과 경기 광주시 한 다세대주택을 찾아 동물 구조 활동을 벌였다. 집주인은 70대 할아버지. 이웃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 소리와 악취가 나는 집 때문에 몇 번이고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그는 구조 활동 중 갑자기 개들을 내줄 수 없다고 해 자원봉사자들을 애먹였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은 암모니아 가스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집히는 대로 개들을 꺼냈다. 먼지와 배설물이 털에 뒤엉켜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렵고, 발톱을 한 번도 깎지 않아 갈고리 모양으로 자란 개들이 방 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동물사랑실천협회 관계자는 “개 100여 마리를 씻기고 치료해 임시보호소로 데려갔다. 개들이 적정한 치료와 중성화수술을 받고 좋은 가족을 만나면 활동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호딩은 이제 쇼핑중독이나 정리·정돈 취약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2009년 미국 케이블채널 A·E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호더스’는 어지러운 집을 청소하고 꾸며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를 비교할 생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후 호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해 프로그램 방향을 다큐멘터리로 선회한 바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호딩은 강박증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데서 시작하다, 수집하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물건을 버리거나 치우면 불안감이 커지게 된다. 방송에 나오는 쓰레기집 주인은 증세가 심한 경우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서류, 문서, 책처럼 지식이나 정보를 모으는 데서 시작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상담한 사례 중에는 한 중소기업 사장도 있었는데, 모아둔 서류를 건드릴까 봐 사장실에 직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그는 “수집과 저장에 지나치게 신경 써서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라면 병원을 찾아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며 잘못된 인지체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딩은 인간의 공허함이 만든 질병입니다. 마음속 허전함을 물질로 채우는 데서 비롯하죠. 내 손에 물건이 있어 얻는 만족감과 남들로부터 받는 인정, 관심에 집착하다 증상이 악화합니다. 쓰레기집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홀로 사는 노인이 많아요. 물건으로 빈 공간을 채우면서 고독을 잊고 풍족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버리기와 정리하려는 마음
그렇게 애착을 갖고 모으는 물건이 음반이나 액세서리일 수 있고, 가방이나 구두일 수도 있다. 이제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태그(tag)도 미처 떼지 못한 옷은 계절이 돌아오면 입을 수 있을 것 같고, 선물상자는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결국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는 게 현대인의 초상이다.
버리기와 정리를 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있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관계 정리가 힘이다’의 저자 ㈜베리굿정리컨설팅 윤선현 대표는 “정리 컨설팅을 의뢰한 고객 중에는 쇼핑중독자가 많다”고 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높고 소비를 통해 삶의 만족을 얻거나 보상 심리가 있는 고객 가운데 과거 상처 또는 콤플렉스 때문에 유독 어떤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변화에 둔감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또한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 안 하는 거라고 착각하거나, 물건을 버리지 않는 걸 알뜰하다고 생각하지만 집 안 곳곳에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방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가장 먼저 자기가 무엇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저는 정리를 ‘인생의 질서를 만드는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흔히들 정리는 ‘버리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활용’입니다. 지금 가진 것을 제대로 쓰면 그에 따라 얻어지는 가치가 있거든요. 소유물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용도를 살피다 보면 차츰 정리가 되기도 합니다. 심각할 정도로 정리가 어렵다면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뭔가를 어지르지만, 죽고 나면 분명 누군가는 내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거든요. 아니면,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다 생각하고 미리 업무 인수인계를 준비한다는 느낌으로 정리를 시작해보세요. 인생에 언젠가 끝이 있듯 죽음이나 이사, 이직 같은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생각하면 미리 정리해놓지 않았을 경우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거든요. 그걸 기억하면서 정리하려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해보세요.”
2011년 국내에 출간된 ‘잡동사니의 역습’은 ‘호더(hoarder·저장강박자)’ 20여 명의 행동 양태와 치료 내용을 다룬 책이다. 호더는 작게는 추억의 물건과 희소한 물건, 더 나아가서는 자기 배설물까지 수집하고 집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외상이나 상실로 트라우마를 겪고 물건 수집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피의자 이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1995년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엽기적인 풍경과 호더의 생활
호더를 위해 서울 노원구청은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들의 집을 청소, 소독하고 심리치료를 연계하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쓰레기집’의 주인은 주로 저소득층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이다. 집을 치우는 현장에 동행하고 싶어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는데 “우리도 다음 일정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반기에도 계획 중이지만 일정을 확답하기는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호더는 대부분 집을 치우는 행위 자체에 불안감을 느끼고 협조하지 않는다. 집을 치우려면 길게는 두 달 반 가까이 여러 차례 방문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생물을 수집하는 ‘애니멀 호더’도 있다. 잡동사니는 미관을 해치고 악취를 발생시키는 데 그치지만, 좁은 공간에 수십 수백 마리 동물을 ‘방치’하는 애니멀 호더는 자신과 동물들의 건강, 생명까지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7월 13일 자원봉사자들과 경기 광주시 한 다세대주택을 찾아 동물 구조 활동을 벌였다. 집주인은 70대 할아버지. 이웃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 소리와 악취가 나는 집 때문에 몇 번이고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그는 구조 활동 중 갑자기 개들을 내줄 수 없다고 해 자원봉사자들을 애먹였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은 암모니아 가스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집히는 대로 개들을 꺼냈다. 먼지와 배설물이 털에 뒤엉켜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렵고, 발톱을 한 번도 깎지 않아 갈고리 모양으로 자란 개들이 방 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동물사랑실천협회 관계자는 “개 100여 마리를 씻기고 치료해 임시보호소로 데려갔다. 개들이 적정한 치료와 중성화수술을 받고 좋은 가족을 만나면 활동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호딩은 이제 쇼핑중독이나 정리·정돈 취약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2009년 미국 케이블채널 A·E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호더스’는 어지러운 집을 청소하고 꾸며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를 비교할 생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후 호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해 프로그램 방향을 다큐멘터리로 선회한 바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호딩은 강박증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데서 시작하다, 수집하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물건을 버리거나 치우면 불안감이 커지게 된다. 방송에 나오는 쓰레기집 주인은 증세가 심한 경우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서류, 문서, 책처럼 지식이나 정보를 모으는 데서 시작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상담한 사례 중에는 한 중소기업 사장도 있었는데, 모아둔 서류를 건드릴까 봐 사장실에 직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그는 “수집과 저장에 지나치게 신경 써서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라면 병원을 찾아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며 잘못된 인지체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딩은 인간의 공허함이 만든 질병입니다. 마음속 허전함을 물질로 채우는 데서 비롯하죠. 내 손에 물건이 있어 얻는 만족감과 남들로부터 받는 인정, 관심에 집착하다 증상이 악화합니다. 쓰레기집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홀로 사는 노인이 많아요. 물건으로 빈 공간을 채우면서 고독을 잊고 풍족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버리기와 정리하려는 마음
그렇게 애착을 갖고 모으는 물건이 음반이나 액세서리일 수 있고, 가방이나 구두일 수도 있다. 이제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태그(tag)도 미처 떼지 못한 옷은 계절이 돌아오면 입을 수 있을 것 같고, 선물상자는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결국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는 게 현대인의 초상이다.
버리기와 정리를 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있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관계 정리가 힘이다’의 저자 ㈜베리굿정리컨설팅 윤선현 대표는 “정리 컨설팅을 의뢰한 고객 중에는 쇼핑중독자가 많다”고 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높고 소비를 통해 삶의 만족을 얻거나 보상 심리가 있는 고객 가운데 과거 상처 또는 콤플렉스 때문에 유독 어떤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변화에 둔감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또한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 안 하는 거라고 착각하거나, 물건을 버리지 않는 걸 알뜰하다고 생각하지만 집 안 곳곳에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방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가장 먼저 자기가 무엇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저는 정리를 ‘인생의 질서를 만드는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흔히들 정리는 ‘버리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활용’입니다. 지금 가진 것을 제대로 쓰면 그에 따라 얻어지는 가치가 있거든요. 소유물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용도를 살피다 보면 차츰 정리가 되기도 합니다. 심각할 정도로 정리가 어렵다면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뭔가를 어지르지만, 죽고 나면 분명 누군가는 내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거든요. 아니면,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다 생각하고 미리 업무 인수인계를 준비한다는 느낌으로 정리를 시작해보세요. 인생에 언젠가 끝이 있듯 죽음이나 이사, 이직 같은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생각하면 미리 정리해놓지 않았을 경우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거든요. 그걸 기억하면서 정리하려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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