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는 어른 3명이 들어가면 쪼그려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다. 게다가 지난 연말 경찰이 철거에 나서면서 지붕이 무너져내려 폴대로 가까스로 텐트를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좁은 텐트 안에는 난로, 노트북컴퓨터, 이불,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거리처럼 여의도의 빌딩숲과 초라한 텐트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시간강사에 대한 적절한 처우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수십 년간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점은 없다. 딱 한 가지 변한 것은 있다. 그들도 이제는 명색이 ‘교수’다. 강의전담교수, 비정년트랙교수, 겸임교수, 대우교수, 초빙교수 등이 그들의 직업이다. 교수의 종류가 그렇게 많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비록 ‘비정규’라는 꼬리표가 붙긴 하지만.
대학교육 원동력, 천덕꾸러기 신세
김 위원장을 비롯한 전국 7만여 명의 대학강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비정규 교수들에 대한 법적 지위 보장이다.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센터가 지난해 6월 전국 72개 대학 시간강사 및 강의전담교수 2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정규 교수들은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사항 1순위로 강의료 개선(57.1%)과 법적 지위 보장(45.2%)을 꼽았다. 현행 고등교육법 14조 2항에는 ‘교원’의 개념을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한정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대학의 전임강사 제도를 폐지하고 교원이 교수, 부교수, 조교수의 3단계로 줄어든 ‘대학 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하지만 시간강사로 불리는 비정규 교수는 간과됐다.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전임 교원과 비정규 교수의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교과부가 지난 정기국회 때 임해규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시간강사 평균연봉(주당 9시간 기준)은 999만원으로 전임강사 평균연봉 4123만8000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시간당 강의료도 올해 국공립대는 평균 4만3070원, 사립대는 평균 3만4790원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울 정도. 임성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성균관대 분회장은 “학교 측은 이 쥐꼬리만한 강의료에 채점비, 강의 준비비, 사회보장비가 다 들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포함돼 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강의료가 낮다고 강의 부담이 적은 것은 아니다. 2008년 개설된 31만6507개 강의 92만7627시간에서 시간강사는 31만3196시간(33.8%)을 담당했다. 대학 전체 수업의 3분의 1 이상을 시간강사가 담당한 것. 임 분회장은 “학기 중이면 그나마 낫지만 방학 때는 정말 대책이 없다. 이 대학 저 대학 강의를 서너 개씩 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빠듯하다”며 “지방에서 강의하는 분들 중에는 주당 30시간씩 강의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방에서는 시간당 2만원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2009년에도 비정규 교수의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한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절망적인 현실 앞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정규 교수도 속출했다. 지난해 2월 한경선 박사는 비정규 교수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 측은 “알려진 자살 사례는 7건이지만, 학교 측이 쉬쉬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수십 건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교 측은 “강사들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일 뿐 처우와는 관계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강사 김기판(40) 씨는 “이런 상황에 우울하지 않고 제정신이라면 그 사람이 오히려 정상이 아닐 것”이라며 냉소한다.
지난해 11월 ‘반듯한 직장’을 갖지 못해 괴로워하던 시간강사가 아내와 두 아들을 청부 살해하려 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불안한 지위에 비례해 가족 간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김기판 씨는 “결혼 전 기대치에 비해 현실이 워낙 피폐하다 보니 가정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혼은 물론 불안한 처우 때문에 혼기를 놓친 강사들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실타래처럼 엉킨 이 난제를 ‘특단의 조치’ 없이는 풀 수 없다고 고백한다.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길 바랄 뿐이다. 또한 비정규 교수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 교과부가 할 수 있는 마땅한 조치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 비정규 교수들에게 연구보조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제출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교과위)를 통과했지만, 결국 예결위 계수조정위에서 삭감됐다. 4대 보험 가운데 비정규 교수들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연금도 교과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교과부는 보건복지부에 법률안 발의를 개진할 수 있을 뿐이다. 예산을 마련하려면 기획재정부와도 논의해야 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부 내에서도 일부 비전임 교원을 대학의 전임 교원 확보 비율에 포함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이것이 비전임 교원의 처우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전임 교원의 중간 단계로 강의전담교수를 두고 일정 수준의 처우를 보장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제출됐지만 한계가 있다. 정작 문제는 대학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교과부 “특단의 조치 없이 해결 난망”
대학들은 재정 문제를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노조의 주장처럼 비정규 교수의 법적 지위만 인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특히 비정규 교수의 법적 지위 보장에 따른 재정 부담에 대해서는 양측의 시각이 대조적이다(상자 기사 참조). 대학들은 비정규 교수 문제에 좀더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수 요원들이 이미 ‘공급 과잉’ 상태인 데다 대학들마다 테뉴어 심사를 강화해 교수들을 퇴출시키는 마당에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 보장으로 교수직을 늘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한 사립대 교무처장은 “교수로 채용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 외국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 교수 한 명을 뽑는데도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강사는 지금 수련 과정에 있을 뿐, 박사라고 해서 다 전임 교원만큼 연구 업적이 높은 것도 아니다”며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 한 번 했다고 이들을 모두 교수로 채용한다면 대학 재정은 금방 고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대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애 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쟁취특별위원장(오른쪽)은 500여 일 동안 투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투쟁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누군가는 싸워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이공계의 경우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국책연구소, 기업 등지로 다양하게 진출한다. 다만 기초인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문제인데, 사실 대학에 필요 없는 학과가 너무 많다. 이런 학과를 그대로 두니 강의도 남겨야 하고 강사도 두게 돼 문제만 더욱 악화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접근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지, 비정규 교수를 전임 교원으로 전환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해결이 요원하다는 얘기다.
비정규 교수들은 ‘전임 교원과 비정규 교수 사이에는 질적, 기능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학교 측 주장에 분통을 터뜨린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 분회 김영곤(61) 강사는 “교수들은 툭하면 ‘검증이 안 된 강사들에게 어떻게 전임 교원 직위를 함부로 내줄 수 있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강의는 왜 맡긴다는 말인가. 강의를 맡기는 것을 마치 큰 시혜를 베푸는 양 말하는 학교 측의 태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서울대학교대학생사람연대 박종주(23) 대표는 “학교 측 말대로라면 우리는 지금껏 비싼 등록금을 주고 자질 없는 강사들에게 질 낮은 수업을 들은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학교 측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적 소송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며 “학교나 정부 모두 비정규 교수들을 전문가로도 노동자로도 인정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487일. 여의도 텐트에서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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