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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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대학은 ‘제2 백남준’을 키워야 한다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한국 대학, 과도한 실용성 추구와 대학 간 연구 실적 경쟁으로 본질 왜곡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9-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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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부터 한국 대학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나 대학 정원 축소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표면적 징후일 뿐이다. 대학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위기의 중심에 있다.

    혁신적 인재 대신 순응적 노동자 양성

    서울 소재 명문대인 A 대학을 살펴보자. 이 대학은 매년 90% 넘는 국내 취업률을 기록할 만큼 실용적인 교육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커리큘럼 대부분이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 강의는 줄어들고, 예술과 체육 관련 학문도 사라져가고 있다. 학생들은 실용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하느라 고전문학이나 철학 같은 ‘쓸모없는’ 학문은 선택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잃고, 정해진 길을 따라 걷는 수동적인 존재가 돼버린다.

    B 대학의 상황은 어떤가. 이 대학은 매년 상위 10위권에 진입하고자 교수들에게 과도한 연구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수들은 학문적 가치보다 국제전문학술지(SCI·SSCI)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실을 수 있는지를 신경 쓴다. 학문적 깊이보다 양적 실적에 집중한 결과, 학생들조차 연구의 의미를 깨닫기보다 논문 작성법에 몰두한다.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할까.

    자신의 작품 ‘TV 첼로’ 옆에 서 있는 비디오아트 작가 고(故) 백남준. [동아DB]

    자신의 작품 ‘TV 첼로’ 옆에 서 있는 비디오아트 작가 고(故) 백남준. [동아DB]

    ‌한국 대학 교육이 과도한 실용성 추구와 대학 간 연구 실적 경쟁으로 왜곡되고 있다. 대학은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이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적인 노동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돼버렸다. 정작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선진국이 된 한국이 더 큰 도약을 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백남준은 전자음악과 비디오아트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보여준 창의성은 단순한 예술교육이나 기술적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양한 예술과 과학, 인문학을 융합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 이는 그의 교육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백남준은 한국에서 교육받은 후 독일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은 그의 창의적 성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대학이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대학 랭킹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랭킹을 파괴하고 초월하는, 즉 랭킹 기준을 만드는 학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면 어떨까. 한국 대학이 세계를 움직일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꿈이라도 꾸길 바란다.

    인공지능(AI) 발달과 4차 산업혁명 도래는 대학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있다. 기존 지식의 진부화(obsolescence)와 전문가 집단 소멸 위기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직 노동자 수요가 급감했으며 회계사, 통역사, 애널리스트, 변호사가 과거만큼 필요하지 않을 전망이다. 대학 교육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격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수많은 첨단 학과의 의미가 퇴색하고, 프로그래머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AI가 정신노동의 거의 대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AI 관련 학과와 경영학과 입학 정원을 줄이고 언어학과, 철학과, 인류학과, 수학과 정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다. “대학에 왜 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대학 밖에서 예술·인문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취지에서 ‘다빈치스쿨’ 정신을 살린 모임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고전 번역이 주는 즐거움

    고전 읽기 모임을 함께하는 학생들에게 “21세기에 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들의 대답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공통분모로 나타난다. 고전 읽기가 지루하고 따분한가. 최첨단 AI 시대에 고대 어휘와 문장들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들이 우리의 근심이나 욕망과 무관한, 그저 한낱 꿈처럼 머나먼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엉뚱한 시도를 해보자. 2시간 동안 그리스어 알파벳을 배워 일리아스 첫 문단을 번역해보는 것이다. 조금 생소하겠지만 할 수 있다. 구글 번역과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일단 첫 문단을 그리스어로 크게 소리 내어 반복해 읽을 수 있으면 곧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이고 ‘음악’이고 ‘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한번 꽂힌 음악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듯이, 첫 문단을 하루 종일 ‘노래’처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유튜브에서 이를 낭독하거나 노래한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리아스의 첫 문단을 직접 ‘번역’하는 과정에서 창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미 출간된 판본들의 번역이 아니라, 바로 ‘나의 번역’으로 일리아스의 문장들이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번역을 하다 보면 원어에서 받은 느낌을 더 생생하고 살아 있게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좀 더 좋은 단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뒤지거나, 말의 배치를 이리저리 바꿔보거나, 규칙적인 운율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번역 과정에서 이렇게 ‘또 하나의 시’가 태어난다.

    일리아스의 첫 문단을 넘어 읽기를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면 기원전 그리스의 전쟁 이야기가 더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 여기 현실의 어떤 모습 또는 인간 삶의 정수를 극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전은 우리가 직면한 물음들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이 세상에서 ‘반짝이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정말 실용적인 것은 실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술과 인문학이 생존 기술이 되고 있다. 인류의 고전을 읽자. 그리스어와 한자를 공부하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논어, 맹자, 중용,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진정한 교육이 필요하다. AI 시대에는 더욱더 그렇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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