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오전 10시, 서울 구로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코로나검사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대기자들. 이 줄은 보건소주차장 입구에서 시작해 건물 지하 2층까지 길게 이어져있다. [한여진 기자]
지상 주차장에서 지하 2층 주차로까지 늘어선 번호표 대기자
“삑~ 37.7℃”12월 12일 토요일 아침 인후통과 함께 기침이 나와 체온을 재보니 37.7℃. 그 순간 ‘코로나’ 세 글자가 떠오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 코로나 콜센터(1339)로 전화를 걸었다.
“수요일부터 두통이 심했어요. 현재 체온은 37.7℃정도이고 인후통도 있고 기침도 나요. 약은 병원 처방약과 함께 타이레놀을 복용했는데…”
장황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거주지 보건소로 전화해보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뉴스를 통해 “코로나 증상이 의심되면 ‘1339’로 전화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작 전화해야할 곳은 따로 있었다.
코로나 콜센터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ㅇㅇ보건소입니다.”
“발열과 기침, 인후통이 있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지, 문의 드립니다.”
“선별진료소로 전화해주세요. 전화번호는 02-000-0000입니다. 뚜뚜뚜”
어렵게 연결된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는 “오늘(토요일)도 검사를 하지만 현재 대기 인원이 많으니 우선 보건소에 와서 번호표를 받으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 종합병원 선별진료소를 검색해 두 곳에 전화를 걸었는데, “오늘은 마감됐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마음 급해졌다. 만약 코로나에 걸렸다면 서둘러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무조건 보건소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을 이용했다.
보건소 외부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는 입구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선별진료소 앞에서 잠시 서성이는 동안 어느 누구도 코로나 검사 관련해서 따로 안내를 해주지 않았다. 번호표부터 받아야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어쩔 수 없이 하얀색 방호복으로 무장한 관계자에게 다가가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뒤로 가서 줄을 서세요”라고 말했다. 검사 대기표부터 받으라는 얘기였다.
대기표를 받으려는 줄은 보건소 주차장 입구에서 시작해 지하주차장 1층, 2층으로 이어졌다. 눈치껏 줄의 끝을 찾아 줄을 섰다. 대기 중인 사람들 대부분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간혹 20, 30대들도 눈에 띄었다.
방호복 차림의 관계자가 대기 중인 사람들을 향해 “무증상인 분들은 오늘 코로나검사를 받지 못하니 주중에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대기자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회사 옆에 앉은 동료가 확진을 받아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오늘 검사를 못 받으면 어떡하느냐” “콧물만 나는 건 무증상이냐” “집에 어린 아이가 있어 지금 당장 검사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등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보건소 측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은 사람이나 유증상자가 아닌 무증상자는 주말에는 검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무증상자가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자 할 때는 주중 낮 시간대에 번호표를 받은 뒤 저녁 7~9시에 검사가 가능하되, 대기 인원이 많으면 이 역시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줄을 선 지 30분 정도 지나자 보건소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대기 줄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한겨울 찬바람을 맞고 서 있자니 뼛속까지 시려오는 기분이었다. 급한 마음에 집에서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나온 게 실수였다. 한기가 느껴지자 기침은 더욱 심해졌다. 발끝은 꽁꽁 얼었고, 눈에서 눈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70·80대 어르신들은 더욱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 더 지났을 무렵 드디어 내(한여진 기자) 차례가 됐다. 오전 9시 10분부터 기다린 번호표가 10시 40분이 넘어서야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A4 사이즈의 번호표에는 ‘오후 3시 20분~4시 타임의 9번째 검사자’라는 문구와 함께 인적사항 표기란이 게재돼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정말 코로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급습해왔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뒤 오후 3시가 넘어 다시 선별진료소로 갔다. 이곳은 오전 번호표 대기와 달리 조용했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선별진료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그곳에서 나눠준 일회용 장갑을 끼었다. 검사실에 들어가기 전 아크릴 가림막으로 가려진 문진대에서 다시 한 번 증상을 설명해야 했다. 의료진에게 검사 후 ‘자가격리’ 수칙을 들은 뒤 검사키트를 받아 코로나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실은 한 팔만 뻗어도 닿을 정도로 좁았다. 아크릴 가림막을 두고 건너편에는 의료진이, 검사자 쪽에는 휴대용 의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의료진은 아크릴 가림막에 난 두 개의 구멍에 팔을 집어넣고 검사를 시작했다. 먼저 문진대에서 받은 검사키트를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의료진은 키트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뒤 붉은색 진단 시약통의 뚜껑을 열어 아크릴 판 앞의 선반에 세우고는 긴 면봉 두 개를 꺼냈다.
코로나 검사 키트. [게티이미지]
입안 검체 채취는 힘들었다. 면봉으로 입안 곳곳을 사정없이 휘저으면서 긁자 헛구역질이 절로 났다. 앞에 있는 의료진을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두 개의 면봉을 붉은색 진단 시약 통 안에 넣는 것으로 코로나검사가 끝났다. 진료소를 나와 일회용 장갑을 벗어 지정된 쓰레기통에 버리고 비치된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한 뒤 미리 준비해간 마스크로 교체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문자로 발송된다. [한여진 기자]
일요일 오전 9시 47분, ‘검사 결과 문자’가 왔다. ‘코로나19 상황실에서 안내드립니다. 김○○님의 12월 12일 검사 결과는 음성(정상)입니다’
“김OO??” 다른 사람의 검사 결과 문자가 온 것이다. 화낼 새도 없이 바로 보건소 선별진료소로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에 맞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연신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검사 결과가 잘못 전달된 것에 대한 항의도 잊었다.
매일 아침 새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 시에는 수시로 손소독제도 사용하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코로나방역 수칙을 잘 지켰다고 생각했기에, 코로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줄 알았다. 하지만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 12월 13일에는 1000명을 넘었다. 12월 15일 현재 누적 확진자 수는 4만4364명. 이젠 그 누가 코로나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만약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발열, 인후통, 기침 등 유증상이 있다면 빨리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12월 1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3주간 ‘집중 검사 기간’으로 정하고 수도권 150곳에 설치된 임시 선별진료소를 통해 무료 검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임시 선별진료소는 서울역과 용산역, 신도림역, 대학가 등에 설치하며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임시 선별진료소에서는 무증상자도 오전, 오후 구분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검사자 폭증으로 검사 결과도 제때 통보되지 않아
"언니, 지금 보건소에서 연락 왔는데, 2주 동안 자가격리 하래."12월 13일 일요일 저녁, 방문 밖에서 들려온 여동생의 말에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적인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한경 기자) 하나 조심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시작은 여동생과 함께 근무하는 직장 동료 아버지의 확진이었다. 곧바로 여동생을 비롯한 여동생 직장 동료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만 결과 통보가 늦어졌는데, 뒤늦게 들려온 소식은 확진이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일요일 보건소에서 여동생 회사로 역학조사관이 나왔고 여동생을 비롯한 10명에게 2주간 자가격리 통보가 왔다. 여동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날부터 거실과 부엌 등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따로 식사를 했는데, 자가격리 소식을 듣고 나니 더욱 철저히 거리두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14일 월요일 아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보건소 역학조사 결과 별 말이 없었다면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의미이긴 하나, (기사) 근무 장소에서 불안할 수도 있으니 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조언이었다.
임시선별진료소 운영 첫날, 혼란으로 고통 가중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14일(월요일), 점심시간이 막 지난 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졌다. 추위를 예상하고 단단히 옷을 입고 집을 나섰으나 ‘검사를 받을 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파란색 보호복을 입은 보건소 관계자가 끝줄에 와 “오늘부터 설치된 임시선별진료소에서는 줄을 서지 않고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며 이동을 권했다. 추위를 이길 자신이 없던 나는 그중 한곳을 골라 다시 이동했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893m 떨어져 있다는 설명과 지도를 믿었지만, 초행길인 데다 검사 장소가 외진 곳에 있어 한참을 헤맨 끝에 도착했다.다행히 바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증상 여부를 물은 뒤 손을 소독제로 닦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게 한 후, 검사 신청서를 쓰게 했다. 그 후 작은 병을 들고 이동했다. 대기하던 검사 담당자가 먼저 긴 면봉 하나를 목구멍으로 넣어 채취를 한 후 절반 크기로 잘라 내가 들고 간 병에 담고 다시 면봉 하나를 콧속 깊숙이 찔러 넣었다 꺼낸 후 반으로 잘라 역시 병에 담았다. 검사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 그런데 막상 검사를 받아보니 면봉이 너무 깊게 들어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병을 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제출하면 끝이었다.
문제는 검사 결과를 3일 안에 통보해준다는 마지막 안내방송이었다. 하루면 결과가 나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서울시가 무료로 선제 검사에 들어가다 보니 검사자가 많아 결과 통보가 늦어진다는 설명을 들었다. 일단 추위 때문에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에서는 하루면 결과가 나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차이가 있는 줄 알았으면 이 추운 날 거기까지 가지 않고 그냥 보건소 앞에서 기다렸을 것”이라는 기자의 하소연을 듣고 담당자는 “3일은 양성이 나왔을 때 정밀 검사를 위한 최대 소요 시간이며 오늘 임시선별진료소는 운영 첫날이라 혼선이 있다.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 사이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또 다른 종합병원에도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역시 하루면 결과가 나온다고 답변했다. “오늘 그곳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원래 4시까지 운영하는데 오늘 검사자가 너무 많아 준비된 검사키트가 거의 다 소진돼 일찍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전화를 걸어온 보건소 담당자는 "혼선이 정리됐고 임시선별진료소도 내일 오전 11시에 문자 확인이 가능하고, 9시부터는 유선 확인이 가능하니 오늘 굳이 보건소에서 재검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어느 과정 하나 매끄러운 것이 없었지만 그나마 해결돼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루면 나온다는 검사 결과 하염없이 기다려
다음날인 15일 오전 9시, 출근 준비를 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내 이름이 없다며 어디서 검사했는지를 물었다.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진행된 검사는 취합해 발표하다 보니 오전 11시 이후에나 확인이 된다고 했다. 어제와는 다른 대답이었다. 추운 날 야외에서 검사를 진행하며 고생하는 분들을 직접 본 입장에서 화를 내기도 그랬지만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기 전에 미리 그런 사정을 알려 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같은 날 오전 11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내 이름이 인터넷으로 검색이 안 된다며 문자를 기다리라고 했다. 확진자 명단에 없다는 말도 해줬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을 문자만 기다리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무료 선제 검사로 검사기관에 물량이 넘쳐 검사가 지연되고 있으며 오후 4~5시에 결과 확인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들렸다. 검사 결과 통보가 지연되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이날 검사 결과는 오후 2시경에 문자로 날라 왔다. ‘음성입니다’였다.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 우왕좌왕 행정 절차에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불편한 경험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