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사회 지탱하는 기둥, 국민 신망 무너진 점 안타까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사법기관의 독립성 반드시 지켜져야
제15대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으로 당선된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영철 기자]
현재 대한민국을 분열로 몰아넣고 있는 ‘검찰총장 직무배제’에 대해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11월 20일 제15대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에 당선됐다. 1964년에 설립된 한국법학교수회는 ‘법학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정 교수의 회장 임기는 2021년 1월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다.
정 교수는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 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지냈다. 2000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고려대 교무처장, 대법원 인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한국민사집행법학회 회장과 한국법학교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민사법 분야의 권위자로 불린다. 11월 25일 정 교수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신법학관 4층에서 만났다.
정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법조계 이슈에 관련해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으로 선출된 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을 내기 다소 조심스럽다”면서도 “정치인과 법조인의 역할이 다르며, 각자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는 만큼 서로 본분에 충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권 유지의 욕망
-15대 한국법학교수회 신임 회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우리나라 법학교육은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법과대학 중심의 학부 법학교육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변호사양성 실무교육으로 이원화됐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지 1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불안정한 부분이 많다.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5개 모든 로스쿨은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합격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 학문으로서의 법학교육과 학문후속 세대의 양성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부 교수와 로스쿨 교수들의 통합도 시급하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해마다 떨어져 시험에 낙방하는 ‘변시 낭인’이 늘고 있다.
“신규 변호사의 시장 진입률을 조정하기 위해 해마다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정하는데, 올해(제9회 변호사시험)는 합격자를 1768명으로 정했다. 시험 응시자는 3316명으로 합격률은 53.32%다.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총 5번인데, 삼수 정도 하면 거의 포기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다보니 학교나 학생들도 오로지 변호사시험 합격만을 목표로 달려가느라 학문으로서의 법학교육이나 법학자 양성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변호사 합격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변호사 수가 너무 많아질 것을 염려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호사 수요도 한층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미국연방법원에서 처리하는 민사본안사건이 98.5%가 합의로 끝난다. 변호사끼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사회적 비용이 훨씬 줄어든다. 우리나라도 민사에 있어 변호사의 개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또 변호사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로펌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다. 학계나 기업, 공무원조직 등으로 진출해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한국법학교수회는 법무부 인사 및 징계 관련 위원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윤석열 총장이 징계에 회부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추 장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알겠으나 절차상의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윤 총장의 비위로 거론한 내용들이 법적인 근거가 타당한지를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한다. 나 역시 해당 기록을 직접 살펴보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검찰 내부 목소리나 언론을 통해 나온 얘기들을 조합해 볼 때 추 장관이 좀 더 신중했어야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에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국민이 양단으로 갈려 싸우는 모습이 가장 안타깝다. 정권이라는 게, 한번 잡으면 계속 그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이는 진보든 보수든 다 마찬가지다. 권력이 유지되느냐 마느냐는 결국 국민의 심판에 달렸다.”
“추 장관 처분, 적절했는지 의문”
정 교수는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법조인들부터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재판부 불법 사찰’인데, 이른바 ‘사찰문건’으로 지목된 보고서를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불법사찰이 아닌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었다”고 반발했다. 어떤 판사가 증거 채택이 엄격한지 등 재판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모두 공개된 자료라는 주장이다. 검찰총장 직무배제 발표 후 뒤늦게 대검 감찰부가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한 것을 두고도 ‘선 발표 후 조사’라는 점에서 검찰총장 직무배제의 근거가 빈약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직무배제에 앞서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이는 정당했다고 보나.
“현재 겉으로 드러난 내용들만 보면, 적절하지 않은 조치라고 생각한다.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도 우리나라 해방 이후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그렇게까지 할 사안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추 장관이 가고자하는 길,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검찰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법조계 종사자들을 만나보면 지난 몇 년 사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과거에는 물론 검찰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다. 정치적 개입도 심했고, 검찰 스스로도 정치적 외세에 쉽게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웬만한 비리는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게 됐다. 정치와 법이 맞부딪치더라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
-최근 서울남부지검장은 ‘라임수사’ 관련해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발동되자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라며 사직서를 냈다. 과연 정치가 검찰을 덮고 있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사법기관의 독립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추 장관의 일련의 행동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과연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만한 사안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법무부가 라임 사건 관련해 수사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섣부른 판단으로 조치를 내렸다면 검찰은 물론이고 국민들 또한 오해할 만하다.”
11월 26일 대검찰청을 비롯한 전국 검찰청 10여 곳의 평검사들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및 윤 총장 직무배제 등 일련의 조치들에 반발하며 평검사 회의를 열었다. 평검사 회의는 2013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사퇴와 관련해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소집한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성명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절차와 과정을 통해 검찰총장의 직을 수행할 수 없게 한 법무부 장관의 처분은 검찰 업무의 독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친여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징계심의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대통령은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영환 교수 역시 적당한 타이밍에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공수처 생겨도 정치 갈등 사라지기 힘들어
-‘추-윤 갈등’은 어떤 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분쟁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찌감치 대통령의 개입이 필요했다고 본다. 현재 추-윤 갈등의 시발점은 ‘조국 사태’라고 볼 수 있는데, 그때도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보면 여권 입장에서는 아까운 카드를 하나 잃은 셈이 아닌가. 조국 사태가 이제는 개인사로 남게 됐다. 민사소송에 있어서도 법원의 심판을 받기 전에, 제3자의 적절한 개입과 중재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정치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향후 두 사람의 갈등이 어떻게 종결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법원은 윤 총장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하나.
“윤 총장이 서울행정법원에 낸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은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열흘 안에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법원이 윤 총장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검찰총장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직무정지 처분 취소 행정소송도 벌일 텐데, 이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장이 누가 되느냐도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다.
“공수처장이 누가 되더라도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또 불거질 걸로 예상한다. 사실 공수처법은 법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법이다. 해외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가 신설됐는데, 그에 따른 효과가 제대로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충돌하고 있지만 공수처가 생겨나면 또 다른 갈등의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는 필연적이다. 공수처장의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률가로서의 견제와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뽑혀야 한다. 만약 공수처마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법치주의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법에 대한 신뢰 회복은 가능한가.
“법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고민할 시점이다.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엄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혼돈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정세도 그렇고 국내 사정 또한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매우 성숙했다는 미국도 이번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혼돈을 겪었나. 흔히들 요즘을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라고 하는데, 법과 정치 분야도 뉴노멀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법이 사회의 근간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법조인은 법조인대로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 서로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