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수도권 부동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전세 품귀 분석
경기 중개사들 “갈 곳 없는 세입자 계약갱신청구로 눌러앉아 매물 급감”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 매물을 찾기 힘들어졌다. [동아DB]
최근 전세 품귀 현상과 전셋값 상승을 부추긴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는 저금리와 1인 가구 증가를 지목하지만 현장에서는 “당국이 정책 실패를 가리려고 공연히 헛다리를 짚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국의 설명과 현장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아봤다.
정책 실패 원인을 “저금리와 1인 가구”로 돌리는 당국
11월 19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11월 둘째 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전주(0.27%)보다 0.03%p 높은 0.30%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감정원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7월 31일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후 최근 3개월 동안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1.45%)은 같은 기간 매매 가격 상승률(0.21%)의 약 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서울 강남권 아파트 매매가는 이전보다 0.06% 상승한 반면 전셋값은 2.13% 올랐다.11월 5일 김현미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에 이어 20일 윤성원 국토부 제1차관도 최근 전셋값이 폭등한 원인으로 ‘저금리’와 ‘1인 가구 증가 등 주거 문화 변화’를 들었다. ‘금리가 낮아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올리고 있으며 세대 분화로 1인 가구가 늘어나 전세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3월부터 계속됐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타격을 완화하고자 3월 기준금리를 0.50%p 내려 연 0.75%로 낮췄으며 5월 추가 인하를 통해 연 0.50%로 책정했다. 이후 기준금리 변동은 없었다. 앞으로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저금리 기조가 전셋값 폭등을 견인했을까. 부동산시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금리가 낮고 전세가 매매보다 대출 받기가 쉬운 여건이 전셋값 상승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계산대로라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서울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데, 전셋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미력하나마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전셋값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라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주택임대사업자들에게 임대의무기간을 지키게 해 수요에 비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났던 것처럼,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법이 전월세시장의 공급 부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전셋값 상승의 궁극적 요인은 바로 여기 있다”고 지적했다. ‘KB부동산 리브온’의 월간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임대차법 시행 이후 최근 3개월간 서울 시내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3750만 원 넘게 상승했다. 지난 2년간 상승폭은 7500만 원으로, 이 상승폭의 절반이 지난 3개월 동안 오른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1, 2인 가구가 늘어나 전셋값이 올랐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최근 3개월 동안 1, 2인 가구가 전셋값이 폭등할 만큼 급증했다는 설명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3개월간 전세 품귀 현상과 전셋값 폭등을 일으킨 주범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전세 수급 현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를 원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전세 물량이 나오지 않으니 전세 품귀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 세입자들이 이사보다 계약갱신을 청구해 계속 눌러 살다 보니 전세로 나오는 물량이 많지 않고, 보유세 부담을 느끼는 집주인도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었다. 이와 함께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고 청약 대기 인원이 늘어난 점, 특목고(특수목적고교)가 사라지면서 좋은 학군을 찾는 수요가 증가한 점이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1년간 아파트 매매 및 전세 가격 추이. [한국감정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35평형(전용면적 108.88㎡)의 전셋값은 2년 전보다 4억~5억 원이 올라 10억~11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에는 10억 원대 후반이던 매매가도 현재 29억 원으로 치솟았다. 이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김남길 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기존에 살던 집에 눌러앉는 세입자가 열에 아홉이다. 재건축조합원의 경우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해서 이참에 들어와 사는 주인도 늘어나고 있다. 또 재건축을 기대하고 집을 사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며 “그래서 전월세 물량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 전세난민 신도시로 이동, 매물 품귀 가중
서울에서 심화된 전세난은 신도시는 물론, 비과열지구로 알려진 아파트 단지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기 일산, 남양주 등으로 몰려가면서 이 지역의 전셋값 상승과 전세 품귀 현상이 점점 뚜렷해진 것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큰마을대림현대아파트는 2500세대가 사는 대단지임에도 월세 매물이 하나도 없다. 전세 매물도 4개뿐이다. 인근 일산두산위브더제니스아파트 역시 2700세대가 거주하는 단지임에도 전세와 월세 물량이 각기 58개, 8개에 그치고 있다.이 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15년째 하고 있다는 공인중개사 이영숙 씨는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많다. 비조정지역인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넘어오는 전세 수요도 늘고 있다”며 “전세로 나오는 물량은 증가하지 않는데 찾는 사람은 계속 있으니 전셋값은 물론, 매매 가격도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소형 평형보다 대형 평형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역시 전세 품귀 현상의 주범으로 계약갱신청구권제가 꼽히고 있다. 이씨는 “전월세 세입자 10명 중 8~9명이 계약갱신을 청구해 2년 더 거주하길 원하다 보니 전세는 물론, 월세 물량도 없어 매물이 나오자마자 바로 소진된다”며 “아침에 전월세 물건이 나오면 저녁에 계약이 이뤄질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소하동 휴먼시아아파트 1~7단지도 단지당 600여 세대가 살고 있음에도 전세 물건이 2~4개, 월세 물건은 0~2개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정수연 씨는 “전세가 귀하다 보니 34평형(전용면적 84.47㎡) 아파트 전셋값이 올해 들어 1억5000만~2억 원 올라 6억5000만 원에 임대차 계약이 성사되고 있다”며 “인근 재건축 단지가 공사에 들어가 이주 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전했다. 정씨도 전세 물량 부족 원인으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먼저 꼽았다. 그는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을 청구해 거주 기간을 2년 늘리다 보니 원래 세를 주던 집이 전세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주하던 집주인이나 신규 매수자가 전세를 놓을 경우 한두 건씩 전세 매물이 생기는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하남시 풍산동에서 가장 많은 1222세대가 사는 미사강변센트럴자이아파트는 시중에 나온 전세가 8개, 월세가 2개에 그친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단지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37평형(전용면적 96.38㎡)의 전셋값이 2017년 4월 첫 입주 당시 4억 원대였는데 지금은 2배 이상 뛰어 9억 원대가 됐다. 이 단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부동산중개업을 했다는 이수지 씨는 “내년에는 2년 만기가 되는 전세가 많지만 계약갱신청구가 가능해져 이주 계획이 없는 세입자는 대부분 2년 연장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로 나오는 물량이 적은 데 반해 수요가 줄지 않아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셋값이 4억 원대부터 9억 원대까지 공존하다 보니 계약 연장을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씨는 “현재 임대차법이 집주인보다 세입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어 그런 경우 대부분 집주인이 한 발 물러선다”고 전했다. 이씨는 “전셋값이 집집마다 큰 차이가 나고 분양한 지 3년밖에 안 된 새집이라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도 늘어나고 있어 언제 갈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세입자를 난민 취급하는 정부”
서울 외곽에 있는 아파트 가운데 전셋값과 매매가의 격차가 크지 않은 곳에서는 전세로 살던 세입자들이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매입)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일하는 부동산공인중개사 조미현 씨는 “최근 매매 건수가 부쩍 늘었다”며 “지금을 매수 적기로 여기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아예 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1주택자 중에선 평형이 큰 집을 구매하는 이도 적잖다”고 덧붙였다. 평형이 큰 집을 한 채 더 매입하면 일시적으로 2주택자가 되지만 기존에 사는 집을 1년 이내에 팔 경우 취득세가 중과되지 않기 때문이다.결혼 후 줄곧 서울에서 전셋집을 전전하다 최근 고양시에 아파트를 샀다는 40대 직장인 김수현 씨는 “2년 더 계약 기간을 연장한도 해도 2년 뒤엔 전셋값이 지금보다 더 많이 올라 전셋집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며 “아이도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학원가가 잘 조성돼 있고 출퇴근이 용이한 역세권 아파트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의 30평형대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다 10월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20평형대 아파트를 매입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직장인 이은수 씨도 김씨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씨는 호텔을 개조한 전세주택을 공급한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면서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생활하는 보금자리인데 호텔을 대안으로 삼은 정부 발표를 접하고 국민을 난민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국토부는 전세난을 해소하고자 내년부터 수도권에 7만 가구의 전세형 공공임대주택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 물량을 많이 공급하는 데만 급급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교수는 “1, 2인 가구만 염두에 두지 말고 부부와 자녀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일반 아파트와 같은 편의성을 제공해야 한다”며 “교육과 교통, 쇼핑, 문화생활 편의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양질의 주거 환경을 원하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