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지호영 기자]
2월 20일 오전 인천 남동구의 인천고용복지플러스센터 앞에서 만난 윤모(48) 씨의 손에는 ‘임금 지연 및 체불 내역 확인서’가 들려 있었다. 그는 이달 초 10년 가까이 일한 남동국가산업단지(이하 남동산단)의 한 포장재 제조공장을 그만 뒀다. 회사가 몇 달째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부장인 그가 부하직원들을 대신해 회사와 언쟁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회사는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사실을 확인해주지도 않았다. 그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면 월급통장 1년치 내역을 뽑아서 지방 노동청에 접수한 다음 다시 센터에 와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은행에 가는 중이었다.
“회사가 신규 투자를 많이 했지만 일감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은행에 공장 건물까지 잡혀놨는데 자재 값은 올랐지, 수금은 안 되지…. 남동산단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면서 요즘처럼 경기가 나쁜 때를 본 적이 없어요. 코로나 때문에 소비가 확 줄어들어 더 힘들어졌고요.”
대구 인천 40대 고용률, 전국 하위권
40대의 일자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조업 불황의 그늘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제조업 종사자 수는 2016년 1월 467만3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2020년 1월 현재 44만7000명으로 4년 전과 비교해 4.8%(22만6000명) 줄었다. 지역별 40대 고용률 현황을 살펴보면 40대가 제조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조업의 도시’, 인천(77.4%)과 대구(76.9%)의 40대 고용률은 전국 평균(78.4%)을 한참 밑돈다(그래프2 참조).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나붙은 공장 급매를 알리는 게시물(왼쪽)과 문 닫은 한 공장. [지호영 기자]
차를 타고 돌아본 남동산단은 꽤나 분주해보였다. 자재를 실은 트럭이 오가고,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고 회사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현 위치 공장 매매’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거나 아예 공장 문을 걸어 잠근 곳이 더러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인쇄공장의 근로자는 “회사가 대출 상환에 쪼들리다보니 사장이 여기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표를 내는 직원도 꽤 많다. 회사는 월급이 많은 차장, 부장이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라고 말했다.
수인선 남동인더스파크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는 ‘공장 급매’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기계 사출, 도금, 절산·절곡, 식품, 화장품 등 업종은 다양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사무소의 서모 대표는 “최근에 확실히 공장 매물이 늘었다. 매수자는 드물어서 아주 싸게 나오지 않는 이상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 연말에 공구상가에서 점포 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요즘 해고가 엄청 많대요.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 상당수가 40대로 보입디다. 경력이 15년 이상 되면 회사서 내보낸다고…. 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니까 공구 상가에서 부품 납품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장사 잘 되리란 보장은 없죠.”(서씨)
직원 서른 명 중 열 명이 권고사직 명단에 올라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근로자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지호영 기자]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박모(45) 씨는 지난해 연말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중국 수출용 화물을 취급하는 물류업체였는데, 전체 직원 서른 명 중 열 명이 권고사직 명단에 올랐다. 직급이 과장이었던 그는 “월급 많은 순으로 잘렸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일이 많을 때는 하루에 수십 개의 컨테이너를 선박에 싣느라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작년 한 해 일감이 확 줄었다고 했다.
홍모(43) 씨는 서울 소재 섬유유통회사에서 영업부 차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스스로 사표를 낸 경우다. 섬유공장이 대거 중국으로 옮겨가고, 거래하던 대구 쪽 공장들이 대부분 폐업한 여파로 회사의 경영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씨는 “홑벌이에 8살, 6살로 한참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계속 일해야 하지만, 회사에서 버틴다고 될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섬유업계 업황이 너무 좋지 않아 재취업이 불가능할 것 같아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2006년 정부와 재계, 노동계가 함께 설립한 노사발전재단은 40대 이상 중장년의 재취업과 창업 등을 돕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운영한다. 센터를 찾는 이들은 주로 50대지만, 인천에서는 40대도 적지 않다. 남동산단 내 위치한 인천중장년일자리지원센터의 임은경 소장은 “지난해 7000명이 우리 센터를 찾아왔는데, 40대가 10명 중 2명이었다”고 밝혔다. 임 소장에 따르면 40대 실직자의 사정은 다른 듯 닮았다. 회사가 문을 닫아서, 구조조정을 해서, 근로계약이 더는 연장되지 않아서, 회사 전망이 좋지 않아서 등등. 임 소장은 “다들 상황에 떠밀려 회사를 나오지, 자발적 퇴사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내수 불황, 최저임금 인상 등 여파로 경영 환경이 나빠지자 남동산단 내 기업들은 퇴사자가 발생해도 충원하지 않아 재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코로나 여파로 채용 계획도 취소
물류회사에서 근무하다 권고사직을 당한 박모 씨(왼쪽 사진 오른쪽)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인천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게시물을 살펴보는 사람들. [지호영 기자]
고용노동부는 40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일자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제조업 안정화 방안, 직업훈련 강화, 취업지원 방안 등을 종합대책에 담아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임은경 소장은 “현재 정부는 50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12개월간 월 80만 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제도’를 운영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40대를 대상으로 이와 유사한 지원책이 나온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은경 노사발전재단 인천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
“가족의 기둥 40대, 갈 곳 없어 안타깝다”
임은경 노사발전재단 인천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 [지호영 기자]
“제조업체 생산직군에서 가장 많은 실직자가 나오는 것 같다. 2018년 한국GM 사태가 한창일 때도 남동산단 가동률은 65% 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60%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래도 기술 있는 분들은 자리가 나면 재취업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을 일하다 나온 차장, 부장들은 경력을 살려서 갈 데가 정말 없다.”
- 왜 40대가 회사 밖으로 내몰리나.
“기업이 경영이 어려워 비용 절감하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인건비다. 그러니까 월급 많은 순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과거에는 그 대상이 50대 이상 임원이었는데, 최근에는 40대 중간간부까지 내려온 것 같다.”
- 그러면 실직한 40대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나.
“최근 우리 센터를 찾은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부부는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 500만 원 가량 월급 받던 남편은 200~300만 원으로 눈높이를 낮춰 구직 중이고, 아내는 월 150만 원 가량 버는 마트 계산직으로 취업했다.”
- 50,60대보다 40대 실직자가 겪는 심리적 고충이 클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남성에게는 여전히 명함이 곧 자존심이다. ‘이제 나를 찾는 데가 없더라’ 하며 가족에게도 말 못하는 고충과 우울감을 털어놓는 분들이 많다. 이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이 절실하다.”
- 40대 일자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한다면.
“40대는 가정의 기둥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그 영향이 자녀와 조부모에게까지 미친다. 소시민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이들이 굳건하게 서야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노년층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20,30대에게도 ‘권고사직이 이제 곧 내 차례구나’ 하는 좌절감이 아닌, ‘오래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 40대 실업률이 높아지는 게 매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