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2017년 6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포옹하고 있다. [인도 총리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9월 22일 미국 프로풋볼(NFL) 휴스턴 텍슨스의 홈구장인 NRG 스타디움에서 인도계 미국인들을 격려하는 대규모 행사를 가졌다. 당시 행사는 교황을 제외하고 미국에 초청된 외국인 지도자가 개최한 최대 규모 집회였다. 인도계 미국인 5만여 명이 참석했던 이 행사에 모디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나타났다. 모디 총리는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진정한 친구”라면서 “미국 경제를 다시 강하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칭송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모디 총리는 인도를 위해 뛰어난 일을 하고 있는 위대한 지도자”라면서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 행사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인데도 불구하고 참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인도계 미국인 유권자 75% 힐러러 지지
모디 총리가 실리콘 밸리를 방문해 미국 IT 기업 CEO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PTI]
미국에는 인도에서 이민 온 인도계가 400만여 명이나 된다. 그중에서 35만여 명이 텍사스 주에 살고 있고, 특히 경제중심지인 휴스턴에는 15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텍사스 주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휴스턴은 민주당의 텃밭이다. 이곳의 인도계 미국인 유권자 중 75%는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경쟁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투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가 자국 교민들을 위한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려면 민주당 성향인 인도계의 표심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월 스트리트를 유대계가 꽉 잡고 있다면, 실리콘 밸리는 인도계가 주름잡고 있다. 미국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유수한 IT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들도 대부분 인도계다. 이들의 영향력은 유대계만큼 막강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해 인도계 미국인 CEO가 이끄는 상위 7개 IT 기업이 거둔 매출은 36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 운동 자금을 모금하는데도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4~25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해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브로맨스’(bromance,·남성들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인도 방문 목적은 무엇보다 대선을 앞두고 인도계의 표심을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주의 경제 중심지인 아메다바드를 방문할 예정이다. 아메다바드는 2017년 인도에서 처음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난 곳인 아메다바드는 인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들 중 하나다. 모디 총리는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구자라트주의 주지사를 세 번 연속 연임하면서 아메다바드를 공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곳에서 모디 총리와 함께 대규모 행사에 참석해 미국과 인도 양국의 밀월 관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미·인도 양국 무역협정 체결
미국과 인도 해군이 지난해 11월 인도양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DOD]
두 정상은 또 이번에 양국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부 대표단은 지난 1년 6개월간 워싱턴, 뉴델리, 뉴욕 등을 오가며 무역협상을 해왔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해왔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지난해 5월 인도의 최혜국지위를 박탈하고 관세를 물린 데 맞서 인도 정부가 사과·아몬드를 비롯한 28개 물품에 보복관세를 물리면서 양국의 무역협상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무역 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에 이어 인도와의 무역 협상까지 타결해 대선 전에 국민들에게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모디 총리도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맺는 것이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하다.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정책은 각종 투자 유치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지난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4.5%로 2013년 이후 분기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2017∼2018 회계연도 기준 6.1%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모디 총리는 또 힌두 민족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지만 무슬림들의 강력한 반발로 2곳의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모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동력 삼아 정치적 실패를 만회하고, 경제 분야에서도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알리사 에이레스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양국 간 무역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방문의 핵심”이라면서 “모디 총리에게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큰 틀에서 볼 때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에 맞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 추진하면서 인도를 비롯해 일본 호주 등과의 연대를 모색해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를 선언하고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을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후사인 하카니 전 주미 파키스탄대사는 “20세기 영국이 미국의 파트너로서 유럽에서 역할을 했던 것처럼 21세기 인도는 아시아에서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란 바이슈나브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인도는 중국의 인도양 진출 등 영향력 팽창에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도는 ‘앞마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도양뿐만 아니라 도카라(중국명 둥랑, 부탄명 도클람), 카슈미르 인근 라다크 등을 놓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인도는 또 그동안 중국의 파키스탄 군사지원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인도, 미국 최신예 무기 대거 구매 예정
인도가 구매할 미국의 MH-60R 시호크 헬기가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US Navy]
인도 정부는 미국과의 군사 협력 강화의 일환으로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무기를 대거 구매할 계획이다. 실제로 인도 정부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문에 맞춰 26억 달러(3조800억 원) 규모의 MH-60R 시호크 헬기 24대를 구매할 계획이다. MH-60R 시호크는 전 세계 해상작전헬기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호크는 길이 16.23m, 너비 2.36m, 높이 5.18m로 헬파이어 미사일과 어뢰 및 소나부이와 탐색레이더, 다중모드 레이드 등을 탑재하고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270㎞로 대잠수함 작전은 2.7시간, 대수상함전은 3.3시간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시호크는 물밑 최대 500m 깊이까지 탐지하고 최대 수색 반경 18.5㎞, 최대 유효탐지거리가 12.9㎞인 소나를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호크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잠수함의 인도양 진출을 우려해온 인도 해군으로선 안성맞춤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또 18억7000만 달러(2조2000억 원) 규모의 미국산 통합방공망시스템(IADWS)을 구매할 계획이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인도 정부의 통합방공망시스템 구입 요청을 승인했다.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인도에 첨단 무기 수출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인도를 내세워 중국의 군사력 확대를 어느 정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데니스 와일더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미국이 앞으로 인도에 첨단 전투기를 판매하는 등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국은 이와 함께 에너지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회사인 페트로네트 LNG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기간에 25억 달러(3조 원)에 달하는 수입 계약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페트로네트 LNG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진행되는 드리프트우드 LNG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민주주의 국가 간의 밀월관계는 중국에게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브로맨스’는 코로나 19 사태로 어려움에 직면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뒤통수를 치는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