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 A 씨의 말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올수록 시위가 과격해진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경찰은 선고 당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헌재 인근 주유소를 임시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어떤 선고 결과가 나오든 흥분한 시민들이 휘발유 또는 경유를 탈취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태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자 탄핵 찬반 세력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이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주유소 임시 폐쇄 검토다. 헌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재동주유소도 3월 12일 오전 기자가 찾았을 때 긴장감이 느껴졌다. 종로경찰서 거리 모퉁이에 터를 잡은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운영해온 서울 4대문 안 장수(長壽) 주유소로 꼽힌다. 주유비가 저렴한데다 기름 품질도 좋아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신차를 산 뒤 재동주유소만 찾는다는 단골도 있을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 임시 폐쇄를 검토 중인 서울 종로구 재동주유소. [윤채원 기자]](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d3/89/66/67d38966115fd2738276.jpg)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 임시 폐쇄를 검토 중인 서울 종로구 재동주유소. [윤채원 기자]
품질 좋아 자동차 마니아 입소문
재동주유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등을 고려해 임시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인근에서 5년째 자영업을 하는 B 씨는 “주유소가 헌재 바로 옆이라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걱정된다”며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가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 헌재가 가루가 될 것’이라고 얘기할 때부터 우리 가게도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 근처 공사장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헌재 정문에서 100m 거리에 있는 한 공사장에선 공구 등을 공사장 안쪽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아직 탄핵심판 선고일 주유소·공사장의 공식 임시 폐쇄 지침은 없지만, 경찰이 연장이나 빠루(끝이 구부러진 쇠막대) 등은 치워달라고 했다는 게 현장 인부의 설명이다.
헌재 앞 200m 거리는 현재 차벽으로 둘러싸였으나 시위대까지 막지는 못했다. 3월 12일 이른 아침부터 시위자 50여 명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쳤다. 헌재 바로 앞 인도에는 돗자리를 깔고 노숙 농성을 이어가는 시위자도 10여 명 있었다. 현행법상 1인 시위를 제외하고 헌재 100m 내 집회와 시위는 금지된다. 이 때문에 헌재 앞 도로를 달리며 구호에 맞춰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행렬도 눈에 띄었다.
![헌법재판소 인근 공사장 앞에 차벽이 세워져 있다. [윤채원 기자]](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d3/89/95/67d389952707d2738276.jpg)
헌법재판소 인근 공사장 앞에 차벽이 세워져 있다. [윤채원 기자]
헌재 내부 평면도도 공유
탄핵 반대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선고 당일 폭력 사태를 시사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3월 12일 디시인사이드 ‘미국정치 갤러리’(미정갤)에선 “헌재 앞 필수템: 헬멧” “슬슬 헬멧 사야 될 시기가 온 것 같네” 같은 게시 글이 올라왔다. 탄핵 찬성 측의 헌재 앞 시위 예고에 맞서 호신용품을 챙기자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헌재 내부 폭동 모의 게시 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2월 7일 미정갤에서는 헌재 건물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내부 구조가 담긴 평면도가 공유됐다. 차벽을 넘기 위한 철제 사다리,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준비한다는 글도 이어졌다. 경찰 검문을 피하려면 근처 북촌을 찾아온 관광객이라고 둘러대라는 꼼수도 공유했다.
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모의 시나리오가 실제 헌재 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헌재 근처 안전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선고 당일 특별범죄 예방 강화구역으로 선포될 안국역~헌재 일대에는 주유소 1곳과 공사장 2곳 등이 있다. 선고 결과에 실망한 시민이 위험물질이나 도구 등을 탈취해 헌재에 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에도 소요 사태가 일어난 바 있다. 당시 헌재 인근에서 박 대통령 파면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버스를 탈취했고, 결국 사망자 4명이 발생했다.
경찰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 헌재 주변의 대규모 인파를 관리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충돌을 막고자 주유소·공사장 등에 시위대 접근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헌재 인근 종로구·중구 일대를 8개 구역으로 나눠 특별범죄 예방 강화구역으로 선포하겠다면서 “헌재 100m 이내 구역을 진공 상태로 만들겠다”고 예고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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