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계엄령 사태가 나중에 사회 교과서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역사 공부도 할 겸 엄마를 따라 나왔다. 대통령이 전쟁이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오늘 사람들이 모인 걸로 알고 있다. 20만 명(사전 신고된 집회 참가 인원)이라는 숫자가 체감될 정도로 사람이 많다.”(집회 참여 시민 10세 유모 군)
1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설명한 집회 참여 이유다. 윤 대통령이 3일 계엄령을 선포한 뒤 맞은 첫 번째 주말인 이날 국회의사당 일대에는 한때 경찰 추산 최대 15만9000명이 모여 “윤석열은 퇴진하라”, “국민의힘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주최 측 추산 집회 참여 인원은 100만 명이다.
“계엄 역사 반복 안 돼”
1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탄핵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게 되자 상심한 듯 머리를 감싸고 있다. [조영철 기자]
시민들 중에는 기자와 대화 도중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광주가 고향이라고 밝힌 전모 씨(47·여)는 “3일 늦은 밤 계엄이 선포된 것을 보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생각났다”며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났던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10살 딸. 15살 아들과 집회에 나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동생과 함께 집회에 나온 김모 씨(24·여)는 “부모님이 집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집에서 뉴스만 보고 있으면 나중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나왔다”며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 추산 15만9000명 모여
1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시민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집회 대열에서는 여러 색의 불빛을 내는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 팬덤의 응원봉을 들고 있던 송모 씨(29·여)는 “어느 정치인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말한 것을 보고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응원봉을 흔드는 집회 대열을 바라보고 있던 강모 씨(26·여)는 “사람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니 페스티벌에 온 것 같다”며 “집회는 위험한 줄 알고 그동안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오지 못했는데 이런 분위기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참여할 걸 후회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탄핵 불발에 시민들 분노
1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 [조영철 기자]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여당 국회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탄핵안 표결이 마무리되지 않자, 오후 9시가 넘어서 집회에 새롭게 합류하는 시민도 있었다. 저녁 8시에 집회 대열에 합류했다는 박모 씨(30)는 “원래는 집회에 올 생각이 없었는데 여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집에서 뉴스로 보고 빠르게 준비해 나왔다”고 말했다.
오후 9시 26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정족수 미달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불성립했음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자,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광판을 통해 본회의장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일제히 탄식했다. 일부 시민들은 체감온도 영하 4도의 추위에도 “집에 안 가”, “안 추우니까 투표 종료하지 말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장모 씨(24·여)는 집회 퇴장 행렬에서 만난 기자에게 “오후 12시부터 한 시간가량 여의도에서 윤석열 퇴진 구호를 외치다가 3시에 인천으로 돌아가 대학교 기말시험을 치른 뒤 다시 여의도로 돌아와 지금까지 남아 있었는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얻지 못해 허탈하다”며 “탄핵이 될 때까지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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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비상계엄 내란 아니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맞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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