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막대그래프가 종(鐘) 모양을 보이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참 많다. 진지한 과학자들은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려고 똑같은 실험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번 측정되는 값을 모아 막대그래프를 그려도 측정값이 ‘그래프 1’과 마찬가지로 종 모양이 된다. 또 난이도 조절이 잘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점수 분포도 종 모양이다.
막대그래프가 종 모양이 되는 걸 통계학에서는 정규(normal)확률분포라고 한다. 웬만큼 평범한(normal) 통계량은 이런 종 모양 막대그래프로 그려진다는 뜻이다. ‘그래프 1’ 자료를 이용해 계산하니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키 평균값은 약 173cm다. 평균보다 키가 2배 큰 사람은 물론이고 평균 키의 1.5배인 260cm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독자가 키가 2.2m(평균 키의 1.3배 정도)인 사람을 봤다면 자신 있게 “우리나라에 겨우 몇 명밖에 없는, 정말 진짜 대단히 아주 키가 큰 사람을 봤다”고 얘기해도 된다.
월급쟁이의 월급 통장은 유리마냥 투명하다. 우리나라 사람의 연소득을 막대그래프로 그리면 어떤 모양이 될까. 요즘 평균 연봉은 30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걸로 안다. 만약 연소득 막대그래프가 ‘그래프 1’ 같은 종 모양이라면, 키가 평균 키의 2배인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봉이 평균 값 3000만 원의 2배인 6000만 원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야 한다. 또 만약 평균 연봉의 1.3배인 4000만 원을 받는 사람을 보면 자신 있게 “우리나라에 겨우 몇 명밖에 없는, 수입이 정말 진짜 대단히 아주 많은 사람을 봤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봉이 1억 원 넘는 사람이 수두룩한 걸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신문기사에 딸려 있는 자료를 이용해 그려본 우리나라 직장인 연소득 막대그래프(그래프 2) 모양은 키 막대그래프와 많이 다르다. 딱 봐도 종 모양이 아니다.
척도가 없는 소득 분포
이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우리 국민의 평균 연소득은 2600만 원 정도다. 그런데 연봉 6억 원이 넘는 사람도 1만 명당 1.6명 정도 있으니, 키로 따지면 키가 웬만한 아파트 높이인 40m 정도 되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지만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연소득을 키로 바꿔 얘기하면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큰 경우에 해당한다. 키가 보통 사람의 2배가 되는 사람은 지구 위에 단 한 명도 없는데, 소득은 일반인의 1000배인 사람도 있다. 신문을 보니 어느 전 회장님의 구치소 노역 일당이 보통 사람의 1만 배에 해당하는 5억 원이라고 한다. 키와 소득의 막대그래프 모양은 이처럼 많이 다르다.
소득 분포를 그린 막대그래프 모양에 대해 과학자들은 “척도가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척도’는 사물을 잴 때 사용하는 ‘잣대’라는 뜻으로, 소피스트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을 때의 바로 그 ‘척도’다. 사람의 소득처럼 잣대가 없는 막대그래프에서는 1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그래프 위의 소득을 하나 고른다 해도 그것이 많은지 적은지를 얘기하기 힘들다. 그보다 얼마든지 많거나 적은 소득을 갖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원래 ‘잣대 없는 확률분포’는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정의되는 개념이다. 확률분포함수의 가로축을 잣대를 바꿔 늘리거나 줄여도 확률분포함수 꼴이 변하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의미다.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좀 아는 척을 하려면 “사람들의 소득 확률분포는 잣대 변환에 대해 불변(不變)이기 때문에 잣대가 없다”고 말하면 된다.
이처럼 잣대 없는 막대그래프 모양을 갖는 것도 우리 주위에는 참 많다. 소득 분포는 물론, 기업 하나하나의 매출액 분포, 인터넷 홈페이지 방문자 수 등도 잣대가 없다. 이뿐 아니라 후보가 난립하는 선거에서 각 후보자 득표 수도 잣대가 없고, 과학자 개개인이 출판한 논문 수도 잣대가 없으며, 논문이 다른 논문에서 인용되는 횟수도 잣대가 없다. 또 각 도시에 몇 명이 사는지, 장편 소설 한 편에 각 단어가 몇 번씩 나오는지 등도 잣대가 없다. ‘80-20법칙’(‘주간동아’ 895호 필자 글 참조)을 정확히 만족시키는 막대그래프 모양도 잣대 없는 확률분포의 한 예다.
우리 사회에서 한 사람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수를 세어봐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대부분의 사회 연결망 구조도 잣대가 없다.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잣대 없는 사회 연결망에는 친구가 엄청 많은 사람이 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보통 사람보다 돈을 1000배 더 버는 부자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친구가 많은 이른바 ‘마당발’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가 입고 나온 옷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천송이가 수많은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종의 마당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천송이의 영향력이 ‘별그대’에 폭 빠졌던 필자 아내와 아이들을 통해, 아쉽지만 ‘별그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필자에게도 미쳤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아직 ‘별그대’에 대해 듣지 못했던 사람은 또 필자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보가 마당발 친구, 그 친구의 친구들과 같은 식으로 몇 단계 만에 수많은 사람에게 파급되는 ‘연결망 효과’의 힘은 정말 크다. 다양한 기업이 이를 이용해 마케팅을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발생한 국가정보원(국정원) 인터넷 댓글 사건도 이런 연결망 효과를 이용해 여론을 움직여 보려고 한 시도였다. 국정원 직원들은 한 아이디로 올린 글을 다른 아이디로 인용하고, 그걸 또 다른 아이디로 다른 곳에 퍼 나르는 일을 반복하면서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처럼 호도하려 했다. 특정 뉴스가 실시간 뉴스 검색 상위에 오르면 뉴스 내용보다 상위에 올랐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그 뉴스를 보게 되고,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에 오른 책은 바로 그 이유로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들이 열심히 퍼 나른 이런 글이 마당발에게 전해지고, 마당발이 그 내용을 중요하고 진실한 것으로 오인해 다시 퍼뜨리게 되면 파급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카사노바를 찾는 기발한 방법
잣대 없는 연결망의 대표 사례인 인터넷 구조. 밝은색으로 표시한 것이 연결선이 많은 중요한 연결망 노드다. 노드는 대부분 연결선이 한두 개에 불과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연결선을 가진 노드도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TV 광고를 통해 성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 수가 100명이 넘는 사람은 내일 아침 9시까지 서울역 앞에 모이라고 할까. 그래 봤자 누가 거기 가겠는가. 이 예방약을 효율적으로 나눠주는 정말 단순하지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먼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서울역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그 예방약을 나눠주자. 단, 단서를 하나 붙이는 거다.
생물체도 잣대 없는 연결망 구성
“죄송하지만 직접 그 약을 사용하지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상대방에게 드리세요.”
이 방법이 효과적인 이유가 있다. 카사노바는 극소수라 서울역 앞에서 직접 그 약을 받아갈 확률이 낮다. 그러나 카사노바와 성관계를 맺는 상대방은 워낙 많으니, 그 많은 상대방 중 하나가 서울역 앞에서 그 약을 받아갈 확률은 상당히 높은 것이다. 마구잡이로 나눠줘도 그렇게 받아간 약이 그날 밤 카사노바에게 전달될 개연성이 아주 높다는 말이다.
정하웅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는 생물체 세포 내 대사작용에 관여하는 구성성분도 이처럼 잣대 없는 연결망을 만든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대사작용의 생화학적 내용에 대해 배운 바 없고, 심지어 대사에 관여하는 생화학적 물질들의 영어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물리학자라도 연결망이라는 개념 틀을 이용하면 중요한 생물학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 논문이다(개인적으로 정 교수와 친해서 하는 말이다. 필자나 그나 생물학 지식은 도토리 키 재기다).
정 교수는 앞선 논문에서 연결망 구조만 잘 살펴봐도 대사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즉 ‘마당발’ 단백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필자도 한 연구를 통해 큰 연결망에서 어떤 사람을 찾으려면 친구 중 가장 친구가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그 사람의 친구 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식으로 계속하는 게 좋다는 결과를 낸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잣대 없는 연결망을 이용한 것이다.
많은 연결망은 잣대가 없어 소수지만 엄청난 수의 친구를 가진 마당발이 분명히 존재한다. 연결망 구성원 가운데 필자처럼 줏대 없는 대다수 사람은 친구가 하는 얘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TV 광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사람도 친한 친구가 “써보니 좋더라” 한 마디 하면 망설이지 않고 해당 제품을 사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잣대 없는 연결망의 줏대 없는 구성원들이여, 이제 친구가 리트위트해준 얘기도 쉽게 믿지 말길. 염치없는 국정원 직원이 퍼뜨린 소문일 수 있으니까. 아니면 트위터의 그 친구가 진짜 내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친구의 개인정보가 털려 엉뚱한 사람이 친구 행세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우리나라의 이런 온갖 종류의 황당한 현실도 도대체 비교할 잣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