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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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마운자로, 뇌 중추신경계 작용으로 식욕 조절

[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식욕과 관련된 뉴런 활성 억제… 투약 중단하면 원 상태로 회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입력2025-12-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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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비만치료제 ‘위고비’. 노보노디스크 제공

    비만치료제 ‘위고비’. 노보노디스크 제공

    21세기 들어 우울증과 함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질병이 있다. 바로 비만이다. 한국 성인 10명 중 4명은 비만이고, 특히 중년 남성의 비만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그럼에도 우울증과 달리 비만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2년 전 신개념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세상에 나와 혁명적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크고 부작용은 적은(물론 개인차는 있다) 경쟁 제품 ‘마운자로’가 등장해 비만치료제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던 가격까지 떨어지는 추세다.

    배불러도 먹는다? 식욕 회로 이상

    ‘GLP-1 모방 약물’로 불리는 이들 비만치료제가 기존 치료제와 다른 점은 섭취한 음식의 영양분 흡수를 막는 게 아니라, 음식을 덜 먹게 해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들 비만치료제가 위를 거친 음식물들이 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를 늦추고, 이로 인해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면서 감량 효과를 낸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임상 데이터가 쌓이면서 식욕 자체를 줄여 음식을 덜 먹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이들 비만치료제는 장보다 뇌에 직접 작용하는 게 더 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들 비만치료제는 어떻게 식욕을 조절할까. 먼저 뇌의 식욕 회로부터 살펴보자. 식욕 회로의 핵심은 흥미롭게도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에 담겨 있다. 식욕은 음식 맛보다 몸의 상태(에너지 저하, 영양소 결핍 등)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배가 고프면(에너지가 떨어지면) 녹말 덩어리인 맨밥만 먹어도 배부를 때 돈이 아까워 억지로 먹는 고급 코스 요리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또 음식 맛은 영양성분에 대한 정보(당분은 달콤하게 느껴진다)다. 그러면 섭식의 목적은 몸이 필요한 만큼 영양분을 얻는 것이라서 음식을 먹을 때 맛이 주는 인상도 바뀌어야 한다. 충분히 먹은 뒤에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는 당기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식욕 중추’로 불리는 뇌 시상하부의 두 회로(식욕·포만)에 이상이 생기면 에너지가 충분해도 계속 배가 고프고 끊임없이 음식을 찾게 된다. 실제로 게놈에서 체질량지수(BMI)와 관련 있는 유전자를 찾아보니 대다수가 중추신경계, 특히 시상하부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비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식욕 중추와 관련된 뇌 유전자 변이 때문일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달 학술지 ‘셀’에는 찰스 주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팀이 식욕 회로의 더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밝혀낸 논문이 실렸다. 핵심은 뇌 변연계에 있는 종말줄침대핵(BNST)이다. 연구에 따르면 뇌 시상하부의 몸 상태 정보(배고픔)와 감각피질의 음식 정보(맛)가 이곳에 모여 섭식 행동을 결정한다. 일종의 섭식 실행 스위치인 셈이다. 종말줄침대핵에 있는 식욕 회로를 파괴하면 생쥐는 굶주려도 달콤한 먹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약물을 처리해 식욕 회로를 활성화하면 먹이는 물론, 플라스틱 알갱이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연구자들은 이를 ‘식욕 다이얼’이라고 불렀다. 라디오 볼륨(다이얼)을 조절하듯이 체내 영양 상태와 음식 맛에 따라 섭식 여부 및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비만치료제 장기적 해결책 아냐

    앞서 언급한 대로 위고비 등 신개념 비만치료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조절한다. 식욕과 관련된 뉴런 표면에 GLP-1 수용체가 있는데, 여기에 모방 약물이 달라붙어 억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종말줄침대핵을 이루는 뉴런 일부에도 표면에 GLP-1 수용체가 있다. 연구자들은 비만치료제가 이 뉴런을 억제해 식욕 다이얼을 돌리고 활성을 낮춰 음식을 덜 먹게 하는지 알아봤다. 위고비를 12일 동안 투약해 뉴런 활성을 억제하자 생쥐의 몸무게가 8%나 줄었다. 그러나 약을 끊자 원래대로 돌아갔다. 즉 위고비 투약을 중단하면 다이얼이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실린 케이시 하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팀의 연구는 신개념 비만치료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구팀은 본래 뇌 측좌핵에 전극을 꽂아 폭식 충동(저주파 활성)을 전기 신호로 차단하는 뇌자극 수술법을 임상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발견이 있었다. 임상 참가자 가운데 당뇨치료제로 마운자로를 투약하던 환자의 뇌파가 안정된 것이다. 연구팀은 마운자로 성분이 뇌 속 GLP-1 수용체와 반응해 폭식 신호를 차단했음을 확인했다. 효과도 강력했다. 환자는 4개월간 폭식 증세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5개월 차부터는 투약을 유지해도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마운자로 같은 약물이 뇌의 보상 회로에 작용해 폭식을 막을 수는 있지만, 내성 문제 탓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비만이 아닌 사람이 위고비(또는 마운자로) 처방을 받아 다이어트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원래는 처방받을 수 없음에도 당국이 규제에 손을 놓은 결과다. 이들 비만치료제는 식욕 회로는 물론, 보상 회로에도 작용해 다이얼을 돌린다. 날씬해지겠다는 욕심에 적절히 세팅된 다이얼을 약물로 돌린다는 것은 결코 몸에 이로울 수 없고, 자칫 다이얼을 망가뜨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 모처럼 우리에게 온 좋은 치료제를 유익하게만 쓰면 안 되는 것일까.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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