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한국 생활이 보통의 탈북자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들고 온 엄청난 규모의 돈 때문이다. 한국에 온 후 관계기관의 합동심문을 받으며 두 달 남짓 안전가옥에 머문 그는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고가의 외제 승용차를 구매하는 등 강남 부유층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내 그의 것이 됐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살아온 A씨와 가족에게 서울에서의 삶이 딱히 새롭거나 불편할 것은 없었다. 정확한 규모는 본인만 알겠지만, 탈북자 사회에서는 그가 들고 온 자금 규모가 500만 달러(약 56억7000만 원) 안팎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금이전 협조해달라” 사전에 담판
10월 20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3년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 해외주재관이 4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3년 8명, 2014년 18명, 올해는 10월까지 20명으로 증가폭이 가파르다. 2009년 한 해 3000명에 육박했다 2014년 1400명 수준으로 떨어진 전체 탈북자 수의 감소 추세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얼굴을 드러낸 이는 한 명도 없다. 떠들썩한 기자회견도, 북한의 현실에 대한 규탄도 없다. 정부 당국이 중간간부 이상 관료 출신에게 제공해온 산하 연구기관 자리를 마다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거액의 도피자금을 마련해 서울행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이전 시기 탈북 관료들이 우발적인 이유로 정치적 망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들은 꼼꼼한 사전 계획과 준비 작업을 거쳐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한국을 택한 경우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탈북자 사회에서는 대략 최근 입국한 해외주재관 출신 중 절반가량은 수백만 달러 안팎의 비자금을 갖고 들어오는 것으로 추산한다.
궁금증은 하나로 모인다. 왜 최근 수년간 이런 사례가 늘고 있을까. 전문가들과 탈북자 사회에서 내놓는 해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외화벌이’에 대한 압박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마식령스키장을 비롯한 건설 프로젝트나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같은 초대형 행사 등 체제과시용 사업이 줄을 이으면서, 해외주재관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금을 모아 송금하라는 지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는 것. 거꾸로 말하면 이전에 비해 돈을 만지는 사람의 수가 늘었고, 한 사람이 관리하는 자금 규모도 커졌다는 의미다. ‘딴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개연성이 전례 없이 높아진 셈이다.
다른 하나는 김정은 체제의 구축과 함께 진행된 권력엘리트 지형도의 변화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권력자가 실각하는 바람에 측근에 해당하는 인사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시각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풍문에 가깝지만,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관리하던 비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이야기도 흔히 함께 거론되는 레퍼토리다. 차명계좌 등의 형식으로 그의 개인 금고지기 노릇을 하던 이들이 자금을 챙길 수 있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인 셈. 한 탈북 인사의 말이다.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나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 등 이전의 고위급 탈북자 상당수는 미국을 망명지로 택했다. 1997년 이한영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서울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그러나 망명 조건이 까다로운 미국은 개인자금을 들고 가기가 쉽지 않다. 횡령 등 범죄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물며 난민 신청을 해야 하는 중간간부급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얼마를 들고 들어오든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갖고 올수록 북한 체제에 타격이 될 것이므로 반기는 기색마저 역력하다.”
실제로 해외에서 생활하던 경우라 해도 거액의 자금을 한국까지 갖고 오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달러화나 유로화로 현금화하기도 어렵지만, 현지 세관의 감시를 피해 그 정도 돈을 갖고 비행기를 타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결국 대부분은 조세피난처 국가의 금융기관에 차명계좌를 만들어 입금한 다음 한국에 정착한 뒤 회수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이 역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서울 정착과 함께 여권 등 신분이 바뀌므로 본인임을 입증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서울이 미국보다 낫다”
이 때문에 적잖은 경우 한국 정보당국과 사전에 협의해 자금 이전 작업에 도움을 받는다는 게 탈북자 사회의 정설이다. 쉽게 말해 “내가 서울에 갈 테니 이러저러한 편의를 봐달라”고 미리 조건을 내걸어 담판한다는 것. 원래는 합동심문 과정에서 압수하게 돼 있는 북한 여권을 당분간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 전직 정보당국자는 “그러한 ‘협조’를 통해 더 많은 탈북자가 서울에 올 수 있다면 실적을 쌓아야 하는 해당 부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액을 들고 온 최근 탈북자들의 경우, 탈북자 단체의 활동이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국과의 접촉도 최소한 선에서만 유지한다는 것이다. 간섭도 마다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다. 당장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에서 일할 경우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평범한 출신의 다수 탈북자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편. ‘북에서는 관료로 잘 먹고 잘살고, 남에서는 들고 나온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탈북자 한 명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정착 지원금이나 포상금 규모는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소형 임대아파트 보증금이나 정착 초기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받는 생활자금, 자격증 취득에 대한 격려금 등을 모두 합쳐도 최대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관계당국에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제공되는 포상금 역시 1989~90년대에는 1억 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지만, 탈북자 수가 크게 늘어난 요즘에는 중간간부급의 경우 수백만 원 안팎에 그친다고 한다. 혈혈단신 맨몸으로 3년 전 서울에 왔다는 한 탈북 관료는 “역시 서울에서는 돈이 최고인 모양”이라며 씁쓸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