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국민권익위원회 평가 서울 서초구 청렴도 순위 추이.
과거 서초구가 꼴찌를 기록했던 결정적 이유는 민선 5기 시절 일어난 한 사회복지 공무원의 공금 횡령 사건과 관련 깊다. 또한 서초구 직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4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 즉흥적인 인사가 내부청렴도평가 순위를 낮춘 원인으로 작용했다. ‘깜짝’ 인사는 공직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업무 연속성을 해치고 문제해결 능력을 저하한다는 점에서 직원들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
서초구의 청렴도가 다시금 수직 상승하기 시작한 건 2014년 민선 6기 출범 이후부터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서 당시 현역 구청장과 경쟁해 당선한 조은희(57) 구청장은 취임 때 ‘청렴과 친절’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해마다 청렴도 순위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인사 청탁을 철저히 배제한 결과였다. 1월 22일 구청 집무실에서 만난 조 구청장은 ‘청렴도 1위’라는 타이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청렴도 순위 발표가 있던 날, 1위라는 사실보다 청렴도 꼴찌라는 오명을 벗고자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순간들이 떠올라 더 감격스러웠어요. 구민이 공무원에게 가장 바라는 게 청렴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구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공직자는 구민을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없죠. 청렴성을 확보하려면 모든 것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에 구청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을 공개했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구민의 의견을 수시로 청취했습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체인징 데이’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국·과장들이 자리를 바꿔 근무하는 제도로, 부서 간 업무를 교차 점검하다 보니 업무 투명성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한다. 조 구청장도 일일 복지관장으로 두 차례 근무한 바 있다.
또한 서초구는 매달 열던 전 직원 정례조례를 연 4회로 줄이는 등 각종 회의를 간소화하고,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청렴실천결의문’과 관련해 조례도 개정 중이다. 2014년부터 사무관 승진자에게 주고 있는 ‘청렴패’를 올해는 신규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수여했다. 청렴패에는 목민심서의 ‘청렴은 공직자의 본래 직무’라는 글귀를 담았다.
“ ‘햇볕’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직원 1300여 명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야 우리 구민도 행복해질 수 있죠. 이러한 선순환이 일어나려면 마음 깊은 곳에 청렴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해요.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청렴도 1위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직원들은 물론, 응원해주신 구민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구민이 진정 바라는 건 ‘청렴함’
2015년 서울 서초구가 처음 선보인 ‘서리풀 원두막’(왼쪽)은 현재 각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겨울에는 ‘서리풀 이글루’가 등장한다. [동아DB]
“이분 말씀이 어린이집마다 급식조리사에게 지급되는 수당이 다르고, 대체조리사를 두지 않은 어린이집의 경우 휴가도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구민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는 구민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돼요. 또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마음, 배려심 등이 점점 더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야말로 지난 3년 반 동안 구정활동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죠. 덕분에 집에서도 제가 성격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며 남편과 아들이 놀라요.(웃음)”
일각에서는 조 구청장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포용의 리더십’에 빗대 ‘무티’(Mutti·독일어로 ‘엄마’) 행정가라 부르기도 한다. 언론계 출신인 조 구청장은 대통령비서실 행사기획·문화관광비서관(1998~1999)을 지냈고,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1급, 2008~2010), 최초 여성 서울시 정무부시장(2010~2011)을 지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최초 여성 서초구청장으로 당선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구정을 이끌고 있다.
“ ‘엄마의 마음’은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행정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는 소소한 일에서부터 교육, 재테크 등 집안을 지탱해가는 큰일까지 다 신경 쓰잖아요. 구정활동도 마찬가지죠. 구민의 소소한 애로사항에 귀 기울이는 한편, 큰 비전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5년 여름 서초구에 ‘서리풀 원두막’이 처음 등장했다. 서리풀 원두막은 횡단보도 앞이나 교통섬 등에 세워진 우산 모양의 대형 그늘막으로, 무더운 여름철 따가운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당초 54개소로 시작한 서리풀 원두막은 설치와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모았고, 더 많이 만들어달라는 구민들의 요청에 현재는 총 120개소로 늘어났다.
한편 사업 초기에는 도로법상 적합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파라솔형 그늘막은 ‘도로의 부속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그늘막 설치와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서리풀 원두막’ 덕분에 서초구는 지난해 유럽연합(EU)과 영국 환경청 등이 공식 인정하는 유럽 최고 친환경상인 ‘그린애플어워즈(The Green Apple Awards)’를 수상했다. 또한 ‘2017 서울 창의상 혁신 시책부문 우수상’ ‘2017 서울시 자치구 행정우수사례 우수상’도 받아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다.
“올겨울에는 서리풀 원두막이 ‘트리’로 깜짝 변신했어요. 동절기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안정성과 실용성 등을 검토해 ‘서리풀 트리’가 최종 선정됐죠. 트리 설치비용은 개당 25만~170만 원 들었는데, 전액 행정우수사례 등 각종 수상 인센티브로 받은 시상금으로 충당했어요. 앞으로도 서리풀 원두막처럼 작지만 큰 감동을 주는 생활밀착형 행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해요.”
서초구는 재정건전성 면에서도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242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자체 재정분석’에서 서울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가’등급을 받은 것. 지난 3년간 주민·교수·세무사 등 재정전문가 26명으로 구성된 ‘알뜰살림추진단’을 운영하며 유사 중복 사업을 통폐합하고, 판공비 및 행사·축제 비용을 줄여 총 1257억 원 예산을 절감한 덕분이다.
“흔히 서초구 하면 부자동네라 가용예산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2008년부터 재산세 공동과세가 시행되면서 매년 600억 원 이상을 서울시에 내고 있어요. 서초구민 인당 세금 부담액은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4번째로 높은 반면, 세출 혜택은 최하위권인 22위입니다. 그만큼 실제 살림은 팍팍한 실정이죠. 구민에게 필요한 사업을 제때 시행하기 위해서는 알뜰하게 재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주부가 가계부를 쓰듯이 세금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도록 해야죠.”
‘생활밀착형 행정의 결정판, 서리풀 원두막
서초구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서리풀 터널이 조은희 구청장의 남다른 추진력 덕분에 드디어 2019년 1월 개통될 예정이다. [동아DB]
서리풀 터널 사업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옛 땅에 서초역과 내방역을 잇는 터널을 만들고, 터널 위에 3만2000㎡ 규모의 대규모 공공문화복합센터를 건립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해당 땅은 아파트를 짓고 싶어 하는 국방부와 문화공간 확충을 원하는 서초구의 의견 대립으로 수십 년간 개발이 묶여 있었다.
하지만 조 구청장은 취임 1주일 만에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터널과 땅을 분리해 진행하는 ‘투 트랙 작전’을 구상해낸 것. 교통체증 해소 차원에서 터널부터 뚫고 대지 사용 방안은 차후에 다시 논의하자는 생각이었다. 조 구청장은 그길로 곧장 정보사로 달려가 정보사령관을 만났고, 1주일 후에는 국방부 차관을 만나 양측의 협의를 이끌어냈다. 2019년 1월 개통 예정인 서리풀 터널은 금융기관이 밀집한 테헤란로를 서쪽으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어 서초구는 물론, 동작구에서도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또한 ‘서초의 구룡마을’로 불리던 마지막 판자촌인 방배동 성뒤마을은 2022년 1200여 가구가 들어서는 친환경 전원단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성뒤마을은 무허가 건축물 179개 동이 무분별하게 난립한 곳이지만 자연녹지지역을 보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논리로 여태 개발이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제2의 우면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친환경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조 구청장은 서울시를 설득해 2015년 5월 서울시의 공영개발을 이끌어냈다. 조 구청장은 “서울시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서초구가 서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한 모범 사례가 됐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방배동 511번지 일대, 일명 국회단지는 1970년대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토지 소유주들과 매매협상에 실패하면서 도로, 상하수도 등 생활기반 시설이 없는 상태로 불법 가건물 등이 들어서 지난 40년 동안 무허가 난립지로 방치됐던 곳이다. 이곳 역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 구청장은 단지 내 도로와 땅을 공동소유한 200여 명을 일일이 만나 설득한 끝에 최근 땅 주인들로부터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향후 3~4년 내 국회단지 일대 3만2172㎡는 네덜란드풍 전원주택마을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수십 년 묵은 숙원사업을 해결했다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덕분에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복손 구청장’ ‘깜찍한 불도저’라는 애칭도 얻었어요.(웃음) 노인정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만 보다, 그 나름 굵직한 사안들을 해결하는 걸 보고 지어주신 별명이죠. 해묵은 갈등을 비교적 쉽게 풀 수 있던 비결은 ‘역지사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무조건 내 주장만 펼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거죠. 최대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결국 길이 찾아지더라고요. 중요한 사업일수록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해묵은 과제 해결해 ‘복손 구청장’ 애칭 얻어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은 2014년부터 사무관, 서기관 승진자에게 ‘청렴패’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서초구청]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현재 ‘도로법’ 개정과 ‘도로 공간의 입체적 활용에 관한 법률’(입체도로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들이 개정 및 제정되면 경부고속도로 지상부를 입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고, 개발 방법에 따라 세금을 들이지 않고서도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을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서초구의 생각이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은 통행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착한 사업’이에요.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에서 ‘경부고속도로 상부를 활용한 청계산역 복합환승센터 계획안’이 우수상을 받았는데, 이 자체가 경부고속도로의 개편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서울시의 예비타당성 조사에 포함되는 것을 목표로 또 한 번 열심히 달려볼 생각이에요.”
이 외에도 서초구는 ‘양재 R&CD 특구 지정 사업’을 통해 해당 지역을 글로벌 기업과 인재 육성, 4차 산업혁명 육성의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스케일의 현안들을 실현하고자 조 구청장은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계획이다.
“신년사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우리 서초가 올해 조짐이 참 좋아요.(웃음) 지금까지 모든 일이 잘 풀린 덕분에 축적된 에너지로 올해는 한 단계 더 뛰어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끓는 물에 비유하자면 현재 서초구는 99도까지 올라와 있어요. 여기에 1도만 더해지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진짜 ‘끓는 물’이 되죠. 앞으로 마지막 1도를 높여 더 나은 서초, 100년 서초의 미래를 열어가는 구청장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