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철원군 6사단 청성부대 장병들이 비무장지대(DMZ) 철책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해상에서 지상으로 옮겨간 충돌?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이 군 당국으로부터 보고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MDL 내부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모두 6건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가운데 5건이 지난해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 2010년 10월 29일 북한군 GP(감시초소)에서 우리 측 GP에 기관총 2발을 사격한 것을 끝으로 3년 8개월간 잠잠했던 휴전선은 2014년 6월 2차례, 10월
3차례, 11월 1차례 등 집중적인 총격전을 이어갔다. 각각의 총격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휴전선을 둘러싼 남북한의 충돌이 이 시점을 계기로 눈에 띄게 잦아졌다는 뜻이다.
특히 유엔사 군정위는 대부분의 총격전에서 남측이 첫 사격을 가한 사실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한 실무조사 작업을 진행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이를 근거로 한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군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취지의 지적 사항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벌어진 총격전이 모두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자 남측이 이에 대응해 경고사격을 가하는 패턴으로 진행됐음은 군 당국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권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 10월 교전은 북한군의 오발에 남측이 같은 수준의 대응사격 2발을 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나, 지난해 6월 이후 총격전은 모두 남측 GP에서 첫 사격을 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서해 NLL에서 벌어진 남북 간 교전과 비교해도 사뭇 흐름이 다르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로 한정해 살펴보면 북측은 2011년 8월과 2014년 3, 5월에 남측 해상이나 우리 측 고속함 인근에 해안포 등으로 포격을 가했고 한국군이 대응사격을 가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유일한 예외는 2014년 7월 북측 경비정이 NLL을 넘어오자 한국군 고속함이 경고사격을 가해 교전이 벌어진 경우 정도다.
비무장지대 철책선 내부에 있는 군사분계선 푯말.
이러한 긴장 고조는 비무장지대 철책선 내부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푯말이 대부분 부식돼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려워진 것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이 때문에 남북한 병사들이 철책선 내부에서 순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군사분계선에 접근하거나 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 총격전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군 당국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북한군이 사전통보 없이 군사분계선으로 접근하는 일이 반복되고, 아군의 경고방송에도 지속적으로 남하해 군사분계선을 침범했으므로 사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고사격은 북한 측 병력에 대한 조준사격이 아니며, 군사분계선 침범 행위를 중단하거나 철수할 기회를 주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라는 취지다. 한국군은 현재 북한 측이 군사분계선 수십m 이내에 진입하면 1차 경고방송을 하고, 분계선까지 근접하면 2차 경고방송, 분계선을 넘으면 3차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가하는 대응수칙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사의 거듭되는 문제 제기
이러한 북측의 군사분계선 월선은 남측의 대응태세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일 개연성이 높지만, 최근까지 휴전선 전방부대에서 근무한 전 · 현직 군 당국자들은 앞서 설명한 대로 군사분계선 식별이 어려워진 것 역시 반복되는 총격전의 배경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진짜 군사분계선’이 어디인지에 대해 양측이 서로 다른 기준을 갖고 있고, 이 때문에 한쪽은 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넘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유엔사 군정위가 한국군의 대응태세에 대해 반복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한국군 당국자들은 월터 샤프나 제임스 서먼 전임 사령관 시기에는 한국군 측의 대응태세를 자위권 차원에서 수긍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2013년 스캐퍼로티 사령관 부임 이후 특히 유엔사 측의 정전협정 위반 감시활동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고 말한다. 경고방송 직후 사격을 진행하는 남측의 대응방식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오히려 경고사격을 받은 후에도 대응사격에 임하지 않고 퇴각하는 북측이 충돌을 피하려는 태도에 가깝다는 게 유엔사 측의 상황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유엔사 측은 남측의 사격량이 과도하다는 견해도 여러 차례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6월 12일 경고사격 당시 K-3 경기관총 30발, 10월 18일 K-3 43발과 고속유탄기관총 K-6 10발, 10월 19일 K-6발과 K-3 30발, 11월 10일 K-2 3발과 K-3 20발 등 통상의 경고사격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다는 게 유엔사 군정위 측 시각이다. 이전까지 1~2발 점(點) 사격으로 진행되던 한국군의 경고사격이 기관총 연사 형태로 바뀐 것은 정전협정 등에 규정된 ‘비례성의 원칙’과 거리가 멀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유엔사 측 판단은 2010년 천안함 · 연평도 사건 이후 한층 강화된 한국군의 대응태세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2011년 3월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최전방을 순시하면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쏠지 말지 묻지 말고 먼저 조치하고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고, 이후 이러한 기조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끊임없이 재확인됐다. 주한미군 당국자를 포함한 유엔사 측이 한국군의 이러한 현장 대응 기조가 불필요한 확전(擴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유엔사 군정위는 지난해 8월 진행된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기간에도 한국군이 가동한 북핵 선제무력화 작전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다. 당시 유엔사 측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징후가 있을 경우 북측 주요 관련 시설을 일거에 파괴한다는 한국군의 ‘킬체인(Kill Chain)’ 개념이 사실상 선제공격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우리 측에 통보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법이 없다
2014년 10월 11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이 경기 연천군 중면사무소와 인근 군부대를 방문해 대북전단을 향해 발사된 북한군 고사총 탄두가 떨어진 우리 측 지역을 조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휴전선 전방의 한국군 부대는 유엔사 군정위 감시단과 숨바꼭질 아닌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미 구축해놓은 참호를 감시단 방문 일정에 맞춰 메웠다가 끝난 뒤 다시 파는가 하면, 전방에 배치한 박격포 등 중화기를 후방으로 빼뒀다가 재반입하는 등 불필요한 작업이 거듭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측이 휴전선 전방부대에 82mm 박격포를 먼저 반입했기 때문에 우리 측도 중화기 반입이 불가피하지만, 북측 지역에서의 유엔사 활동이 무력화되는 바람에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행위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다.
결국 급증하고 있는 휴전선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남북 합의하에 군사분계선 경계 표식을 다시 구축하고 중화기 반입과 진지 구축 등 정전협정 위반사항을 되돌리는 작업을 진행해야 옳지만,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간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 사안을 관심 깊게 추적해온 권은희 의원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북 간 교전이 증가하면 불필요한 긴장이 고조될 수 있으므로, 우리 군은 한미 간 국지도발대응 계획에 따라 교전수칙을 준수하되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려는 북측 의도에 말려들지 않도록 세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