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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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 정부가 법 어겼다

현행법은 공익으로만 원형지 공급 가능 … 기업에 특혜, 법원칙 훼손 논란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03-04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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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수정안, 정부가 법 어겼다

    정운찬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1월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담긴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1월12일 낮 청와대 본관 인왕실. 박준영 전남지사를 제외한 15명의 시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 초청으로 오찬 간담회 참석차 속속 입장했다.

    “시도지사들이 협력해줘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덕담으로 시작한 간담회의 초반 레이스는 좋았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세종시 때문에 다른 지역이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기존 지역개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꺼내들자 분위기가 달라진 것. 이후 시도지사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세종시가 다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고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김범일 대구시장)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로 집중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는 세종시에서 검토하더라도 산업친화적인 것은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현장에서 하는 게 맞다.”(김관용 경북지사)

    수정안 3.3m2당 조성원가 62만원

    “광주의 경우 광산업 특화에 희망을 갖고 있는데 LG가 세종시에 투자를 한다고 해 우려가 상당히 많다.”(박광태 광주시장)

    “새만금 산업단지가 올해부터 분양에 들어가는데 세종시 땅값이 파격적으로 낮아져 많이 걱정하고 있다.”(김완주 전북지사)

    세종시 수정안으로 혁신·기업도시로 가야 할 기업과 공공기관이 세종시로 갈 것이라는,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혁신·기업도시와 산업단지 등의 분양가 인하를 뼈대로 한 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세종시 블랙홀 논란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2월 초 대정부 질문에서도, 2월24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자리에서도 여전히 그 인화력(引火力)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시도지사들은 왜 ‘세종시 블랙홀론’을 주장하는 걸까. 핵심은 법원칙을 훼손하며 기업 등에 준 낮은 땅값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이다.

    “한나라당이 3월 중 당론을 바꾸고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더라도 터무니없이 낮게 공급한 땅값은 현 정부에 엄청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정치권이 한나라당의 수정안 채택 여부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특혜 문제는 크게 불거지게 돼 있다. 두고 보라.”

    정부가 지난 1월11일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을 보면 세종시 입주 대기업과 대학이 부담해야 할 땅값은 개발비 포함 3.3㎡(1평)당 80만원 안팎이다. 정부는 “주변 산업단지와 비슷하다. 이 땅에는 사원주택이나 상가 등 생활편의 시설도 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50만㎡ 이상 큰 땅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과 대학에는 미개발 상태의 원형지(原型地)가 3.3㎡당 36만~40만원에 공급된다. 원형지는 주간선도로와 상하수도 같은 기초 인프라 외에 다른 시설은 제공되지 않아 땅값이 낮아진다. 해당 기업과 대학은 부지를 직접 조성하기 때문에 개발비를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 정부는 이 비용을 3.3㎡당 40만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과 연구소에는 50만㎡ 미만의 인프라 공사가 완비된 토지가 공급된다. 땅값은 중소기업이 3.3㎡당 50만~100만원, 연구소 등은 100만~230만원 선이다.

    삼성은 1100억, 웅진은 440억 차익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 땅에는 이미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삼성(165만㎡), 한화(60만㎡), 웅진(66만㎡), 롯데(6.6㎡) 등 대기업과 고려대, KAIST(각 100만㎡) 그리고 16개 국책연구기관(10만㎡)이 들어선다. 여기에 신설 기업에는 세제혜택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기존 원안을 바탕으로 발표한 세종시 조성원가는 3.3㎡당 227만원. 단순 비교하면 14조원의 재원을 들여 평당 227만원(토지 보상비는 평당 82만원)에 사들인 토지를 6분의 1 가격에 기업에 공급하는 결과가 된다. 야당 의원들이 “원형지 공급으로 이들 4개 기업은 1조7000억원가량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에 근거한다. LH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세종시 수정안, 정부가 법 어겼다
    “평당 227만원은 기존 계획대로 시행했을 경우 보상비용과 간선도로,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 설치비 등을 모두 포함한 가격이다. 발전방안(수정안)대로 하면 조성원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조성원가 산정은 개발계획과 실시계획이 수립돼야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수정안이 채택됐을 경우 조성원가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현재로선 산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간동아’가 국회 이정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세종시 원형지 분양계획 조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정안을 바탕으로 한 3.3㎡당 조성원가는 62만원으로 추정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LH공사의 협조를 얻어 분석한 이 자료에는 전체 토지수용 비용(4조5700억여 원)을 유상공급 토지면적(2434만여㎡)으로 나눴는데, 그 결과 3.3㎡당 61만9412원이 산출됐다.

    이를 감안해도 LH공사는 조성원가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원형지를 공급하게 돼 3.3㎡당 22만~23만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삼성은 1100억원, 웅진은 440억원, 한화는 400억원의 차익을 남기게 된다.

    “62만원이라는 조성원가도 조성비와 기반시설 설치비, 일반 관리비 등의 항목이 빠졌다. LH공사 측에서 정책처 실무자에게 이들 항목을 (계산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조성원가가 높게 나와 특혜 논란이 일까봐 그러는 것이다. 이를 고려해 아무리 낮게 잡아도 기업 등은 원형지 공급으로 5538억원의 특혜를 받는 것이다.”

    이정현 의원실 관계자는 “시세차익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기업은 땅장사 하고, 땅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는 ‘2중 장사’를 할 게 뻔하다. 손 안 짚고 헤엄치기다. 토지 장기임대 같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는 전국 10개 혁신도시와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혁신도시에 공급되는 용지의 3.3㎡당 분양가(1월6일 현재)는 울산 297만원, 대구 284만원, 강원 193만원 등으로 96만~297만원에 이른다.

    혁신도시가 조성 중인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혁신도시건설촉진 국회의원모임’이 “세종시로 이전하는 기업과 연구소, 대학에 값싼 토지와 무차별적인 세제혜택으로 10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의 건설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 정부가 법 어겼다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 공사 현장과 전망대 내부 모습(작은 사진).

    문제는 또 있다. 현행 행복도시건설특별법과 시행령에는 ‘필요한 경우 국가기관, 지자체 또는 공기업에 한해 원형지를 공급하도록’ 돼 있다. 원형지 공급은 공익을 위해서만 기능할 수 있게 규정한 것. 법 개정 없이 법령에 규정되지 않은 개별 기업에 원형지를 공급하고 나선 것은 법 위반이 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토지공급 지침에 따르면 사업 주체가 국가·지자체·공익기관이고 공공성이 클수록 토지 공급가격은 낮아지고 그 반대의 경우 감정가 이상 혹은 시장가격으로 공급하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라 초중학교는 조성원가의 50%에, 임대주택과 고등학교는 60~70%에, 공공청사와 연구시설 등은 조성원가에 공급하도록 돼 있다. 이를 감안하면 조성원가를 62만원으로 잡을 경우, 대기업에게는 고등학교에 토지를 공급하는 기준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월4일 국회에서 열린 ‘세종시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에서 세종대 변창흠 교수(행정학과)가 “세종시 수정안대로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간기업에 수의계약을 통해 조성원가의 6분의 1 수준으로 토지를 공급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원칙과 기준을 스스로 흔드는 꼴이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51909;중소기업·#51909;연구소 순으로 공급되는 토지 가격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세종시 수정안, 정부가 법 어겼다
    “주변 산업단지와 비교는 난센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엄격하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동안 지켜온 토지공급 지침과는 상반된다. 그런데 MOU는 투자 의향을 밝힌 체결이고, 또 법을 개정할 예정이어서 우리도 고개를 갸웃한다”고 말했다.

    세제혜택도 마찬가지. 혁신도시에 신설하는 기업에 대해 조세감면이라는 인센티브를 주지 않은 것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방분산 효과를 직접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혜택을 줄 이유가 없었던 것. 변 교수는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세종시 신설 기업에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면 지방산업단지나 기업도시, 지방도시 기업 신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발에 정운찬 국무총리는 2월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인근 산업단지 분양가와 비슷하다. 인센티브를 준 것일 뿐 특혜가 아니다”라며 재차 강조했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눈 가리고 아웅’ 격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세종시의 녹지율(52.9%)과 산업단지 평균 녹지율(10~13%)은 5배가량 차이가 난다. 그리고 세종시에는 전국 어디서나 2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갖춰진다. 여기에 고품격 도시기반 시설이 공급되는데, 이러한 도시를 산업단지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국회 관계자의 말이다.

    “5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금강과 미호천이 흐르는 세종시는 서울로 치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남 아파트다.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크기의 초대형 중앙공원과 국립수목원, 호수공원 등이 들어선다. 그런 곳을 산업단지 분양가와 비교하는 자체가 난센스다. 나도 여당 사람이지만 참 낯간지러웠다.”

    이는 국토해양부 관계자도 인정한다.

    “관점의 문제다. 산업단지와 조성원가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혁신도시는 일종의 신도시로 산업단지와 차이가 크다. 다만 혁신도시를 꿈의 도시로 만들 필요는 없다. 따라서 녹지나 공원면적을 다소 줄이고 가처분 용지를 늘려 토지공급가를 낮출 수는 있다.”

    정부의 뜻대로 세종시 수정안이 4월 국회를 통과해도, 2020년까지 세종시를 집중 개발한다고 해도,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통해 법과 원칙을 훼손했고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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