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4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 공직 후보자 의혹을 정리한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동아DB]
5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이 한 말이다. 최근 민주당이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낸 것에 대한 답이다. 민주당 측은 “여야가 바뀌었다” “국민의힘을 신뢰하지 못하겠다” “당시 책임자의 월권이었다” 등 다양한 이유를 내세워 21대 국회 하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며 기존 여야 합의를 파기했다.
“국민의힘도 합의 뒤집지 않았나”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연일 법사위원장 임명에 관한 여야 합의 사안을 원점 재검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임 지도부가 임기 이후의 원내 구성을 합의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5월 9일 “국민의힘이 검찰개혁과 관련한 합의를 뒤집지 않았나. 자신들은 합의를 마음대로 뒤집어도 되고, 우리 당은 합의를 뒤집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좀 웃긴 얘기”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측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합의안을 파기한 일을 문제 삼은 것이다.법사위는 여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 심사한다. 일종의 ‘상원(上院)’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담당 상임위를 통과하더라고 법사위를 넘지 못하면 본회의로 넘어갈 수 없다.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다투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간 법사위원장 자리는 주로 야당이 차지하는 것이 관례였다. 다만 21대 국회 출범 당시 민주당이 이러한 관례를 깨 문제가 됐다. 국회 개원 때까지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 합의가 평행선을 달리자,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해버린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갈등은 지난해 7월 21일 두 정당 원내대표가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당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와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은 교섭단체 의석수에 따라 하되,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에서 맡는다”고 합의했다. 당시 원 구성도 18석의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에 11석, 국민의힘에 7석을 배분하는 것으로 재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최근 돌연 입장을 바꾸면서 여야가 다시금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다.
민주당의 태도 변화 중심에는 검수완박이 있다. 민주당은 올해까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법을 개정해 검찰이 가진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까지 완전히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수청법이 법사위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갈 경우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민주당 내에서 “중수청법 입법을 위해서라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도 최근 당원 게시판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사수하라” 등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연일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원내에서도 이 같은 의견에 호응하고 있다. 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5월 6일 언론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야당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원래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21대 국회 출범 당시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은 5월 7일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명단을 확정하며 중수청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원장으로는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을 선임했고, 당내 강경파 초선의원 모임 ‘처럼회’ 소속 인사들이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그간 ‘대여 투쟁’에 앞장서왔다(상자 기사 참조). 검수완박을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사개특위 위원 구성에서도 드러낸 것이다.
사개특위 입성 앞둔 ‘처럼회’
민주당의 폭주성 행보는 최소 6월 지방선거와 8월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여당과 강 대 강 국면을 연출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대선 패배 후 지도부 공백을 겪으면서 야당 역할에 대한 구심력이 떨어진 부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국민의힘도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당대표는 5월 6일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눈에 뵈는 게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본인들이 다수 의석이라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야 극한 대립에서 여당이 소수당이어도 동원할 수단은 많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 위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반지성주의’ 발언을 겨냥해 “야당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선언”이라고 발끈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작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협력, 소통, 통합은 한 번도 언급 안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은 5월 12일 기자들을 만나 “취임사에 통합 이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통합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과 민주당 측은 현재 내각 인사를 두고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5월 11일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회동했지만, 사안에 대한 이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고수하고 있다. 본회의 개최 직전 의원총회를 통해 인준 부결에 대한 당론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초대 총리 후보자 인준안을 부결할 경우 6·1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당내 일각에서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처참했다” “바보 같은…” 여야 불문 비판받는 ‘처럼회’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왼쪽)과 최강욱 의원. [동아DB]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5월 10일 밝힌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관전평이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사태에서 검수완박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저런 이들에게 휘둘려왔으니 한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강욱, 김남국 의원 등이 전날 열린 청문회에서 연달아 ‘헛발질’을 한 것을 비꼰 것이다. 최 의원은 ‘한◯◯’이라는 익명 표기(한국쓰리엠)를 한 후보자의 딸로 오해하고 청문회를 진행하다 웃음을 샀다. 김 의원 역시 ‘이모(某) 교수’를 이모(엄마의 자매)로 착각해 “한 후보자의 딸이 이모와 논문을 썼다”고 주장해 망신살이 뻗쳤다. 이수진 의원과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민형배 의원도 이날 크고 작은 실수로 구설에 올랐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청문회를 두고 “결정적인 한 방은커녕 약간의 잽도 없었다”고 총평했다.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마저 “바보 같은 민주당”이라고 평가했다.
처럼회는 ‘행동하는 의원 모임 처럼회’의 줄임말이다. 최강욱, 김용민, 김남국, 황운하 의원 등이 결성한 모임으로, 당초 공부 모임 성격이 강했다. 이후 초선의원들이 줄줄이 합류하며 민주당 내에서 세(勢)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선의원 모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민주당을 탈당했던 양향자 의원이 “지금 상황은 처럼회가 곧 민주당”이라고 말할 정도다.
국회 내 핵심 상임위원회 중 하나로 꼽히는 법제사법위원회에도 처럼회 소속 의원이 다수 배치됐다. 검수완박 국면을 진두지휘한 곳도 처럼회다. 다만 지나치게 강경 투쟁에 몰입하다 보니 청문회에서처럼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다. 당시 청문회에 참석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팩트를 다룬다기보다 감정을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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