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월 4일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방 제재로 외국 투자 얼어붙은 러시아
중국 화물열차가 러시아와의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위키피디아]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동북 3성이 서서히 활기를 띠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미국 등 서방 제재로 외국 자본 투자가 완전히 얼어붙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의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잘 아는 중국은 러시아 극동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 3성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對)러시아 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쉬친 헤이룽장성 당서기는 3월 중·러 접경 도시 헤이허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늘려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며 “미국의 대러 제재에 따른 중·러 무역의 새로운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맞닿은 헤이허는 중국에서 ‘극동의 관문’으로 불리며, 시베리아에서 중국으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곳이다. 쉬 서기의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경제 지원을 제공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이 2차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러시아를 은밀하게 지원하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중국은 그동안 “각국 주권과 영토 보전이 존중돼야 한다”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이 없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엔 총회의 결의안 표결, 러시아의 인권침해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유엔 인권위원회 표결 등에서 모두 기권했다. 중국 국민도 대부분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러시아 제품 구매 열풍이 일면서 품절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러시아 국가관’에는 러시아 유명 과자 브랜드 알룐카 초콜릿을 비롯해 웨이퍼(웨하스), 젤리, 티백, 찻잎, 땅콩 캔디, 과일 잼, 생수, 와인, 세제 등이 ‘품절’로 표시돼 있다.
중국은 무엇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에너지 투자 및 교역을 크게 늘리는 방식으로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동북 3성의 경제발전도 도모하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은 1~4월 중국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60% 늘었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에 대한 수출량이 같은 기간 27% 줄어든 가운데 중국의 수입량은 크게 증가한 것이다. 가스프롬의 1~4월 전체 생산량은 1754억㎥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러시아는 2019년부터 가동 중인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을 통해 중국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총 수출량은 165억㎥다. 이 가운데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통한 수출은 2020년 41억㎥에서 지난해 100억㎥로 늘었다. 최종 설비까지 완공되는 2025년에는 연 380억㎥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35달러 싼 우랄산 원유
중국과 러시아 기술자들이 ‘시베리아 힘’ 가스관을 연결하고 있다. [가스프롬]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 수입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중국의 두 번째 석유 공급국이었다. 중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석유는 지난해 하루 평균 159만 배럴로 전체 수입의 15.5%를 차지했다. 중국은 인도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매입하고 있다. 중국 정유업체들은 서방의 제재 경고에도 시베리아에서 생산돼 송유관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코즈미노로 수송되는 원유를 선호하고 있다. 우랄산 원유는 현재 브렌트유에 비해 배럴당 35달러(약 4만4700원) 저렴해 중국 정유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에너지 조사기관 케이플러에 따르면 중국의 러시아 석유 및 석유제품 구매량은 5월 들어 하루 평균 8만6000배럴이나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이 앞으로 러시아 극동지역은 물론, 시베리아와 북극지역 유전 개발에도 적극 투자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유럽의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와 손절한 상황에서 중국 국유 에너지 기업들은 서방 제재를 피해 러시아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가속화로 북극과 시베리아 얼음이 녹으면 엄청난 에너지 자원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 3성을 러시아 북극지역과 북동항로에 진출할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위안화-루블화 경제시스템 본격 가동
중국은 이와 함께 러시아가 자국 제재에 참여하는 미국과 유럽 각국 등 48개 비우호국에 대해 원자재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자 내심 환영하고 있다. 러시아는 알루미늄(세계 3위), 니켈(세계 5위), 팔라듐(세계 1위) 등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핵심 광물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이다. 또한 물량이 부족한 석탄 수입 관세를 폐지하는 등 러시아로부터 석탄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의 두 번째 석탄 공급국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3월 러시아는 2억6200만t 석탄을 수출했다. 그중 중국이 25%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또 러시아의 광활한 극동지역에서 콩(대두)과 옥수수 등 곡물을 대거 재배해 수입할 계획이다. 중국은 병충해를 이유로 제한하던 러시아산 밀수입도 전면 개방했다.양국 교역 규모는 최근 들어 계속 늘어나고 있다. 3월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 규모는 116억7000만 달러(약 14조9000억 원)로 전년 동월 대비 12.8% 증가했다. 교역 규모는 지난해 1469억 달러(약 187조6650억 원)에서 2024년 2500억 달러(약 319조 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위안화-루블화 경제시스템을 본격 가동 중이며, 이 때문에 러시아 주요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됐음에도 양국 교역은 원활하게 이어지고 있다. 서방 제재 조치가 장기화할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 역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러시아는 정보기술(IT) 같은 하이테크 기술을 이제 중국에서만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승자’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재주를 부리는 곰(러시아) 덕분에 왕서방(중국)이 돈을 왕창 챙기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