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 ·  중 패권경쟁에 4不(불확실성, 불명확성, 불안정성, 불가예측성) 더 커져”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19-12-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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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국제전략은 미국의 힘 약화시켜 지역 강대국으로 만들려는 것

    • 미·중 무역마찰 합의? 갈등 종식 아닌 디커플링(decoupling) 향한 새로운 시작

    • 북은 레드라인 넘지 않고 관망할 것 … 우리도 ‘강대국 외교’ 펼쳐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새해벽두만 해도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평화 분위기는 일거에 금이 갔고,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도 성과는 없었다. 세밑을 맞는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북한과 미국, 중국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반도를 둘러싼 각축 구도를 좀 더 큰 시각에서 내려다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12월 18일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北, 중  ·  러와 손잡고 내부는 ‘자력부흥’ 꾀할 것

    12월 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일 북한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인 평안남도 양덕군의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끊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12월 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일 북한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인 평안남도 양덕군의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끊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결국 빈손으로 떠났다. 연말연초 북·미 사이에 뭔가 대타협 여지가 있다고 보나. 

    “극적인 변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북한은 내년 상반기까지 현 상황에 대한 ‘관리 모드’로 접어든 것 같다. 내년까지 4월 한국 총선, 7월 일본 도쿄올림픽, 11월 미국 대선이라는 큰 일정들이 있다. 북한은 일단 이런 상황을 관망하면서 자신들이 움직일 여지를 찾아가려는 중단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연말이나 새해를 전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또는 핵실험을 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레드라인을 넘을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본다. 한 번 레드라인을 넘으면 협상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너무 큰 부담이다. 중국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지지에 기초해 당분간 선을 넘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은 이어 “북한이 이미 선언한 ‘새로운 길’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비핵화라는 ‘진실의 순간’을 놓고 볼 때 북한은 자신들 용어로 미국과 셈법이 달랐다. 그들이 추구하던 단기 목표는 제재의 부분 해제였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가 상당히 진행된 후 접근하려 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였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계속 요구하는 이유는 한 번 풀면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불가역성 때문이다. 미국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 선언한 ‘새로운 길’은 우선 외부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제재 국면을 해소하겠다는 거다. 실제로 11월 랴오닝성 당서기가 평양을 방문해 인적 및 무역 왕래, 농업 교류, 민생 협력, 관광 협력 등 대북 맞춤형 4개 항에 합의했다. 또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나 북한 제재 문제에 유연하게 접근하자는 합의를 봤다.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그리는 한반도 공동계획의 일환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12월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요구 결의안 초안을 제출해 이를 실행에 옮긴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자력갱생을 더 강화하겠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요즘엔 ‘자력부흥’ ‘자력번영’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신년사에서 좀 더 구체화된 정책으로 나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건의 회담 제안에 침묵한 것도 그 연장선상인가. 

    “비건의 행보는 북한과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모멘텀을 만들어 국내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을 보여준 거다. 한국과도 메시지는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 결속을 다지고 경제적으로 숨 쉴 공간을 찾으면서 최대한 미국의 응수를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여 동안 벌어진 한반도 비핵화 게임에서 궁극적인 승자는 누구일까. 

    “승자는 없었던 것 같다. 우선 북한 입장에서는 정치적 합법성을 강화하기 위한 ‘뚜렷한 업적’이 필요한데 없었다. 게다가 하노이 회담 결렬은 ‘수령은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성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은 어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의 도발을 멈췄다고 자화자찬하는데. 

    “미국 역시 북한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외정책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북한을 관리해야 하는데 북한이 이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게 미국 국내 정치에 부담을 주는 구도가 됐다. 우리 역시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돌파구가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북미에 주력했던 외교가 한계에 다다른 거다. 어떤 형태로든 플랜B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게임은 각자 국가 이익을 둘러싼 갈등, 미래 북한의 모습을 보는 것에 대한 차이 속에서 승자 없는 게임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점차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승자(勝者) 없었던 한반도 비핵화 게임

    김정은이 왕따 신세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한 것은 북한 입장에서 성과 아닐까. 

    “중요한 부분은 경제다. 먹고사는 게 얼마나 나아졌는지 주민들 입장에서 체감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제재로 막혀 있어 한계를 느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유엔 제재 바깥의 민생, 관광 등으로 이 국면을 뚫어보겠다지만 북한 경제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 경제는 지금 상태라면 고난의 행군 시절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이른바 ‘부족의 경제’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관광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크게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삼지연, 양덕온천, 원산·갈마지구, 금강산을 엮어 돌파구를 찾으려 한 건데, 내수로는 안 되고 중국과 한국의 부유한 사람들을 유인해야 한다. 의지만 높았지 수요 창출 프로세스가 없는 상태에서 성과까지 없으니 답답할 거다. 이 추운 겨울에 연료를 포함해 막대한 유지 관리비도 큰 부담일 테고….” 

    미·중 갈등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1단계 합의를 했다고 하지만 너무 조용한 것 같다. 

    “합의했지만 이후 후속 조치들에서 새롭고 지루한 협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 모두 합의 내용에 대한 설명 방식이 다르다. 헌데 중요한 것은 미·중 무역마찰 합의가 갈등의 종식이 아니라 디커플링(decoupling)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이다.” 

    디커플링이라 하면 사전적으로는 ‘분리’ ‘비(非)동조화’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거다. 미국은 미국식대로, 중국은 중국식대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때리는 정책에서 매파와 비둘기파가 아니라, 매파와 초(超)매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막자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관련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가 끝나고 포스트 트럼프가 와도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에 대해 ‘위험한 국가’의 부상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질 테다. 중국도 미·중 갈등 국면을 ‘협력 속에서 부분적 갈등’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부분적 협력’으로 대응해갈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가치사슬을 지역 가치사슬로 돌리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내수시장을 강화하고 기술 자주화를 실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미·중 갈등을 ‘문명 간 충돌’로 보는 시각에 주목했다. 

    문명 간 충돌이라 한다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나 제도의 충돌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제도, 이념, 역사 인식까지 포괄하는 더 깊은 갈등의 골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미국 이기주의와 중국식 발전모델

    11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그람 공군기지에 마련된 연설 무대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바그람  =  AP 뉴시스]

    11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그람 공군기지에 마련된 연설 무대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바그람  =  AP 뉴시스]

    이 소장은 4월 29일 카이론 스키너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중국과 경쟁은 완전히 다른 문명 및 이데올로기와 싸움이다.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코카서스 인종(백인)이 아닌, 거대한 경쟁자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 대목을 예로 들었다. 

    “스키너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이 맞서온,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선 이론을 만든 마르크스도 서양 사람이었고 러시아도 범유럽문명권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백인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이념, 문명, 제도와 싸우고 있다는 거다. 중국도 이에 맞서 문명론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5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시아문명 대화대회를 시작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스키너의 발언이 나오고 2주 후 시 주석은 ‘자신의 인종과 문명을 다른 문명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 다른 문명을 개조하거나 대체하려 한다면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만큼 스키너의 발언이 미국 지도부에 넓게 퍼진 정서를 반영한다고 봤기 때문일 거다. 실제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미·중 관계를 문명 간 충돌로 보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중국의 대응전략은 뭔가. 

    “국제관계의 민주화, 다시 말해 다극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군사력·경제력을 키워 미국의 힘을 약화함으로써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이 아닌, 지역 강대국으로 만들어 같이 살자는 거다. 이런 생각이 ‘새로운 대국관계, 국제관계를 건설하자’ ‘문명 상생을 하자’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다른 나라에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 아닌가. 

    “미국 우선주의, 미국 이기주의로 보는 게 좋겠다. 트럼프는 미국이 그동안 표방해온 민주주의와 패권의 문법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이단적 정치인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 다자무역체제 등 미국이 스스로 만든 규칙과 질서를 깨가면서까지 미국을 최우선시하고 중국을 약화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중국이 개방과 공정 자유무역을 주장하니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구체적 요소는 뭔가. 

    “1단계 합의 후속 조치에 대한 해석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양국 간 시각차가 있다. 중국은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쇼핑리스트를 만들어 미국 측 요구를 들어줄 참이다. 규범과 제도 변경 요구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외상(外商)투자법을 시행해 유연하게 해나가겠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준다든지, 기술 이전을 강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중지한다든지, 자국 기업에 퍼주던 국가보조금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낮춘다든지, 거래 관행을 좀 더 개방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거다. 그런데 미국은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국 산업정책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중지하라는 건데, 중국은 이를 ‘발전권’, 즉 발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중국의 산업정책은 국가가 시장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중국 체제 스스로가 선택할 문제라 보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4월 ‘치우스(求是)’라는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기관지에 무려 6년 전인 2013년 1월 시 주석의 공산당중앙위원회 연설 내용이 실렸다. 당시에는 비공개였는데 무역전쟁이 한창인 이제야 공개된 것이다. 장자와 루쉰의 소설을 인용한 내용으로, 어렵더라도 중국은 중국의 길을 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대하는 태도가 단지 임기응변이 아니라, 정책과 철학을 기반으로 준비된 시진핑 집권 시나리오에서 나왔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중국은 국력 면에서 과연 미국에 맞설 수 있을까. 

    “플로(flow) 측면에선 강하지만 축적, 즉 스톡(stock) 면에선 아직 약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에너지안보 질서에도 취약하고 매력적인 소프트파워도 없다. 중위 인구도 정상 분포가 아니다. 과학혁신을 추동하는 산학협력도 부족하다. 미국을 능가할 슈퍼 파워가 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러나 미·소(美· 蘇) 냉전 시절 소련 국력이 미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양극체제를 형성한 것을 감안한다면 패권경쟁이 국력이 비슷해야 되는 건 아니다. 향후 국제질서에서 미·중 사이에 강력한 라이벌 체제가 심화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중 갈등을 미·소 냉전과 비교해 ‘비(非)냉전형 양극체제’라 부를 수도 있을 거다. 두 나라는 특히 중국 땅에서 멀수록 협력하고 가까울수록 경쟁할 텐데, 주 무대가 아시아가 될 공산이 크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가 패권전쟁 또는 대리경쟁의 무대라 할 수 있다.”

    비(非)냉전형 양극체제

    빌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고 미·중 패권경쟁을 다룬 책 ‘예정된 전쟁’을 펴낸 국제정치학 스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미·중은 미·소와 달리 국제 경제체제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상호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운) 극단적인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핵과 미사일의 상호확증파괴도 가볍게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쟁)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미·중 디커플링이 장기화한다면 한국의 좌표 설정이 중요해 보인다. 

    “경제와 외교 측면으로 나눠 말하고 싶다. 중국은 조선업 일부, 반도체 일부, 화학 부문 등 몇 개 업종을 빼고는 한국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한국이 중국과 맞서려면 밸류체인이 긴 것, 즉 반도체처럼 공정이 길고 복잡해 전체를 카피(copy)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혁신이 이뤄져야 하는데, 중장기 전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무역 면에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동남아로 시장 다변화 전략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중국을 대체하는 시장이 되기는 어렵다. 현재 중국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고, 대개 소비 폭발이 1만 달러부터 시작된다고 보니 이제부터 시작인 이런 최대 시장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중국에서 1등과 베트남에서 1등은 전략적 목표가 다르다. 일본처럼 원(중국) 플러스 원(다른 지역) 전략을 참고할 만하다.” 

    원 플러스 원 전략이라면?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이라는 큰 틀에서 중국에 하나를 투자하면 다른 지역에도 하나를 투자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대(對)중국 무역과 안보 의존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일본은 이런 큰 그림을 갖고 움직인다는 거다. 한국도 대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 전략도 서비스, 금융 개방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중국의 밸류체인에 어떻게 진입할 것인지로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외교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나. 

    “미·중 디커플링이 심해질수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변도의 외교는 힘들어진다. 화웨이 사태나 인도태평양전략 참여 문제,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문제 등에서 보듯, 중국 측 압박이 고조될 수 있다. 사실 한국과 중국의 양자 갈등은 별로 없다. 영토나 역사 문제는 수면 아래 있고, 경제경쟁이야 원래부터 있었다. 결국 한중 문제는 북한, 북핵,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 일본 문제 등 대부분 외생 변수에서 비롯된 거다. 미·중 패권의 경쟁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는 문제라 난도가 높고 풀기도 어렵다. 동맹에 편승하는 것이 제일 쉽겠지만, 어느 한쪽에만 서는 일변도 외교는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동맹을 버리고 한중 전략적 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하나의 플랫폼에 놓고 연동해 사고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정말 어려운 숙제다. 

    “쉽게 말하면 ‘시진핑을 만날 때는 트럼프가 어떻게 생각할까, 트럼프를 만날 때는 시진핑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자는 거다. 한중관계, 남북관계도 판이 변하는 국제질서, 지역질서와 깊이 연동해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 방식에서 남북미를 먼저 해결하고 중국,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단계론적 접근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한중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한때 추진했던 종전선언의 틀도 남북과 미국을 중심으로 먼저 해결하고 나중에 중국, 러시아, 일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것 아니었나. 북한 문제는 초기부터 중국, 러시아, 일본을 포함한 복합적인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남북관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노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돌파 이후 상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적인 동력을 부여하며 국제협력 하에서 이를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미  ·  중 경쟁 ‘게임 체인저’, 4차 산업혁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17일 산둥함 취역식에 참석해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직접 산둥함에 올라 의장대를 사열하고 인민해방군기를 함장에게 수여했다.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17일 산둥함 취역식에 참석해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직접 산둥함에 올라 의장대를 사열하고 인민해방군기를 함장에게 수여했다.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그는 “이제 우리도 강대국 외교를 해야 한다”며 “북한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강대국 짬(틈)에 끼어 있는 게 아니라, 올라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략적 요충지론’도 그래서 나온 거다. 북한 외교는 철저하게 미국을 상대하고 중국을 상대한다. 한국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는 하지만, 강대국 간 파워 게임에 역할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무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강대국들에 끼어 있으니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살길을 먼저 스스로 세우자는 거다. 이제 우리도 남이 그려놓은 지도 위에서 팽이처럼 사고할 것이 아니라 지도를 직접 그려나가는 매핑 파워(mapping power)를 갖는 게 중요하다.” 

    매핑 파워는커녕 외교적 고립만 강화된 것 같다. 

    “한국적 외교, 즉 언뜻 떠오르는 외교정책의 준칙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유연성도 중요하지만, 원칙이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걸 제대로 못 해온 건 국내 정치와도 관련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스윙 폭이 너무 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에 대한 신뢰와 합의라는 자산이 쌓이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넘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관성 있게 가는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지적 자원을 총동원해 국가대전략을 짤 때다.” 

    마지막으로 중국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에 관해 묻고 싶다. 

    “이미 6G까지 생각하고 있고,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GPS(위성항법장치) 통신망 베이더우(北斗)를 갖고 있다. AI(인공지능) 상용화나 빅데이터 활용은 시간이 갈수록 깊고 넓어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군사적 경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중국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결합’이다. 5G, 빅데이터, AI, 양자컴퓨터, GPS 등을 하나로 묶는 거다.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11월 11일 광군제 하루 매출이 50조 원에 달했다. 주문 건수가 15억 건이었는데, 어떻게 사흘 만에 모두 배달이 가능했을까. 어디서 언제 어떤 물건들이 팔릴지 예측해 동네 물류센터에 물건들을 미리 갖다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 지난해 국무원 안에 이민국까지 만들어 과학기술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민정책이 없었는데 벽을 허문 거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 원천 기술과 핵심 기술, 미래 기술의 전통적 위계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미·중 간 기술 지도도 새로운 형태로 바꿔놓을 거다. 결국 과학기술과 혁신을 추동하는 산업정책이 미·중 경쟁의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중국의 미국 추격은 굉장히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미·중 간) 불확실성, 불명확성, 불안정성, 불가예측성이라는 4불(不)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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