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천연가스전. [Gazprom]
동시베리아의 영구 동토 밑에는 원유, 천연가스, 금, 다이아몬드, 주석, 니켈, 동, 알루미늄 같은 각종 자원이 매장돼 있다. 엄청나게 추운 날씨 때문에 이 지역의 자원은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묻혀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원유 21억t, 천연가스 10조4000억㎥, 석탄 251억t(이상 추정치) 등 에너지 자원이 묻혀 있다. 러시아 전체 에너지 자원 매장량의 20%에 달한다.
지구온난화의 수혜자 러시아
2014년 5월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putnik]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과 중국 국유기업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2014년 5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매년 380억㎥씩 중국에 30년간 공급한다는 내용으로 4000억 달러(약 466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갖고 두 회사의 계약 서명식을 직접 주재했다.
[Gazprom]
‘시베리아의 힘’
러시아 기술자들이 엄동설한에도 ‘시베리아의 힘(POS)-1’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공사를 하고 있다. [Gazprom]
중국은 2015년 6월부터 헤이허와 지린성 창링을 연결하는 728km의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해 올해 7월 개통했다. 그리고 내년 말 창링에서 허베이성 융칭까지 1100km, 2024년 융칭에서 상하이까지 1543km 파이프라인을 각각 연결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중국에 연 5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해 2022년 150억㎥, 2025년 380억㎥로 점차 공급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옛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프로젝트인 POS-1 파이프라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맹을 상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계 에너지 질서를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하면서 미국과 EU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제재 조치를 예상하고 시 주석을 설득해 ‘가스동맹’을 맺는 방안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지 2개월 만에 중국과 POS-1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는 그동안 셰일가스를 대량으로 개발해온 미국의 도전에 전전긍긍했다. 실제로 미국은 동유럽국가는 물론 서유럽국가에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자국의 셰일가스로 만든 LNG(액화천연가스)를 구입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등 천연가스를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을 마뜩잖게 생각해온 유럽국가들은 값이 비싸긴 해도 미국의 LNG를 도입해왔다.
중 · 러 가스동맹
중국이 러시아산 가스를 운반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왼쪽). 중국석유천연가스 집단공사(CNCP) 기술자들이 가스관을 점검하고 있다. [VCG, China Daily]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 세계 최대 가스 수입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청정연료인 가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은 202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225억㎥ 규모의 가스를 수입했으며, 대외의존도가 45%에 달한다. 따라서 중국으로선 안정적인 가스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 지도부는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미국의 LNG를 수입하기보다 러시아 PNG 도입을 택했다. 중국으로선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할 경우 자칫하면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는 만큼, 러시아 천연가스의 도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와 ‘가스동맹’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 LNG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러시아 PNG가 중국에 대량 공급되는 만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잃은 셈이 됐다.
중국이 러시아 POS-1을 통해 도입하는 가스는 연간 소비량의 13%, 연간 수입량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이 셰일 혁명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서 LNG 수출을 확대해오던 미국의 전략에 급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양국은 이와 함께 가스 대금 결제통화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화만 쓸 계획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에너지시장에서 달러화의 영향력도 약화하겠다는 의도다.
북극해 통과하는 ‘빙상 실크로드’
[GASEX]
러시아는 야말반도의 가스전에서 연간 1650만t의 LNG를 생산하고 이를 아시아 등에 수출할 계획이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기업 노바텍(지분 50.1%), 프랑스 토탈(20.0%),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20.0%), 중국 국영 투자 기금 ‘실크로드 펀드’(9.9%)가 각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연간 400만t의 LNG를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이 야말반도의 LNG를 들여오는 해상 루트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동항로다. 이 루트는 야말반도에서 러시아 연안 해역을 따라 베링해협을 통과한 뒤 동해를 거쳐 다롄항으로 운송되는 항로다. 이 항로를 이용하면 LNG를 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6일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이 앞으로 LNG 운반을 명분으로 북극해에도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북극권 개발을 위해 ‘빙상 실크로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은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양국 모두 미국의 제재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장하면서 세계 정치·무역·에너지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 교역액은 지난해 870억 달러(약 101조4100억 원)에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가스 수출입 확대로 2024년까지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에리카 다운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은 자칫하면 미국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