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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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교육 경쟁 빼닮은 AI 투자 전쟁

[김성효의 주식탐사대] 뒤처지지 않으려는 빅테크 불안이 한국 반도체에 수혜

  • 김성효 글로벌사이버대 재테크·자산관리학과 교수

    입력2026-03-18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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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가 뒤처질까 불안해 학원에 보내듯이, 미국 빅테크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밀릴까 두려워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자녀가 뒤처질까 불안해 학원에 보내듯이, 미국 빅테크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밀릴까 두려워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지금 미국 증시는 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빅테크 기업이 앞다퉈 “인공지능(AI)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전쟁 불확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현금이 부족하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끌어온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불안이다.

    경쟁사가 AI 인프라에 500억 달러(약 73조8200억 원)를 쓴다고 하면 우리는 600억 달러는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저 회사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싹쓸이한다는데 우리는 GPU 확보를 이만큼만 해도 충분할까 하는 초조함, 지금 뒤처지면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 이미 수십 년간 반복돼온 풍경과 닮아 있다. 바로 사교육이다.

    불안 먹고 자라는 빅테크의 AI 투자

    옆집 아이가 영어, 수학, 코딩, 논술, 피아노 등 학원 5개를 다닌다는데 우리 집 아이는 3개만 다니면 괜히 불안하다. 당장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어도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 학원비가 가계소득을 잠식해도 멈추기 어렵다. 혹시라도 뒤처질까 봐. 그렇게 한국 사교육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불안이 사업을 키운 셈이다.

    지금 미국 빅테크끼리 벌이는 AI 투자 전쟁이 정확히 그렇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밀리면 검색, 클라우드, 광고, 소셜미디어 주도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기업을 몰아붙인다. 투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익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도, 당장 현금흐름이 빠듯해도 “지금 안 하면 끝”이라는 분위기가 지배한다. 미국판 K-사교육 스타일의 투자 열풍이다.

    그렇다면 이 열풍의 최대 수혜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학원이다. AI 시대 학원은 반도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막대한 연산 능력과 초고속 메모리가 필요하다. 반도체 기업을 학원에 비유한다면 GPU는 강사, HBM(고대역폭메모리)은 교재이자 인강이라고 할 수 있다. 학원 수강생이 많을수록 교재와 인강 판매가 폭증하듯이,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메모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빅테크가 1조 원을 더 투자하든, 10조 원을 더 투자하든 금액의 상당 부분은 서버와 반도체 구매로 흘러간다. 이는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매출로 연결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한다. 사교육 열풍이 불면 살림살이는 팍팍해진다. 학원비에 돈을 쓰느라 가정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반대로 학원은 돈을 번다. 지금 미국 증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빅테크의 과도한 AI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각 기업의 이익률 둔화, 현금흐름 악화, 밸류에이션 부담이 거론된다. “이렇게까지 써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그 순간 빅테크 주가는 주춤한다.

    반면 한국 반도체 기업은 다르다. 그들은 AI 전장에 서 있는 참여자가 아니라, 그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상인이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엔비디아가 더 많이 팔아도, 다른 클라우드 기업이 추격해도 서버가 더 깔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학부모가 A 학원을 가든, B 학원을 가든 교재 출판사는 웃는 것과 같은 이치다.

    AI 전쟁에선 탄약 파는 기업이 돈 벌어

    미국-이란 전쟁으로 최근 코스피가 흔들리긴 했어도, 한국 반도체 기업은 연초부터 3월 9일까지 수익률만 살펴본다면 미국 빅테크에 비해 상승률이 훨씬 높았다. 엔비디아가 6% 하락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35% 상승했다. 시장은 본능적으로 안다. 과열 경쟁 비용을 지불하는 쪽과 그 비용을 매출로 흡수하는 쪽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의 사교육 열풍과 닮은 AI 투자가 지속되는 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자는 전쟁과 무관하게 수혜를 받는다.

    물론 이 구조가 영원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교육 시장도 어느 순간 조정이 온다. 출산율이 낮아지거나, 입시 제도 변화가 생기거나, 과열이 식으면 학원도 타격을 받는다. AI 투자 역시 언젠가는 속도 조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국면에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불안이 투자를 만들고, 투자가 인프라를 만들며, 인프라는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심리로 움직인다. 한국 학부모를 움직였던 그 심리가 이제는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불안의 에너지는 태평양을 건너 한국 메모리 공장으로 흘러들어간다.

    AI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빅테크의 손익계산서는 무거워질지 몰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주 잔고는 두둑해진다. 사교육 열풍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리는 학부모도, 학생도 아닌 학원이었다.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전쟁 한가운데에 선 기업보다 전쟁에 필요한 탄약을 파는 기업이 더 조용히, 더 확실하게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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