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러시아 위협… ‘준징병제’로 재무장 강화 나선 프랑스·독일

모병제 프랑스, 29년 만에 자발적 군복무 부활… 젊은 층은 복무 기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12-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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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은 11월 27일(현지 시간) 알프스 지역에 주둔 중인 제27산악보병여단을 방문해 내년 여름부터 자발적인 군복무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은 11월 27일(현지 시간) 알프스 지역에 주둔 중인 제27산악보병여단을 방문해 내년 여름부터 자발적인 군복무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프랑스는 냉전 종식으로 대규모 병력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인 1997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직업 군인 중심의 모병제를 택했다. 징병제란 국가가 일정 연령의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과해 군 복무를 하게 하는 제도다. 현재 프랑스군은 현역 군인 20만여 명과 예비군 4만7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프랑스에선 군사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면서 병역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후 유럽 각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회가 된다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까지 넘볼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심지어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프랑스가 유럽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나폴레옹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 시대가 어떻게 끝났는지 잊었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을 비난했다. 프랑스 황제 보나파르트 1세(1769~1821)는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서 모스크바까지 진출했으나 추위와 보급 실패로 크게 패배했고 이후 몰락의 계기가 됐다.

    돌아온 ‘루소포비아’

    두 정상의 설전은 유럽 각국에서 ‘루소포비아(Russophobia)’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루소포비아는 러시아의 관형사형 ‘Russo’에 ‘공포·혐오’를 뜻하는 ‘phobia’를 이어붙인 합성어다. 이 용어는 18~19세기 러시아 제국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돼 20세기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서방 각국의 러시아, 러시아인에 대한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을 일컫는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각국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사태가 됐고, 이후 이 용어가 회자됐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조치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방위비 증액과 미군 병력 축소를 추진한 것도 유럽 각국이 병역제도 개편에 나선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다. 마크롱 대통령은 11월 27일(이하 현지 시간) 알프스 지역에 주둔하는 제27산악보병여단을 방문해 내년 여름부터 자발적인 군복무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내용을 보면 18~19세 젊은 남녀가 자발적으로 10개월간 군에 복무할 경우 한 달간 기초 훈련을 거친 뒤 나머지 9개월은 군부대에 배치돼 현역 군인들과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지원자에게는 월 900~1000유로(약 154만∼171만 원) 급여가 지급되고, 대학생이 복무를 마치면 1년 치 학점이 부여된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여름에 첫 3000명을 선발하고 이후 매년 증원해 2030년에는 1만 명, 2035년에는 최대 5만 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다시 제국주의 강대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선택해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군 병력 증강을 결심했다”면서 “이런 상황에 프랑스는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사실상 ‘준(準)징병제’를 실시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대륙 전체가 큰 위험에 빠졌다”면서 “국방력 강화를 위해 도입하는 자원입대제도는 모든 유럽 국가가 임박한 위험에 대처하고 앞으로 함께 전진하게 하기 위한 프랑스의 선도적 움직임”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예비군 수도 2030년까지 10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프랑스 정부가 군 병력 확대에 나선 이유는 군사력 강화를 위해 숙련된 인력 보강이 최우선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발적 군복무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위협과 위험에 부응하는 국가 복무 청년, 예비역, 현역 군인으로 구성된 하이브리드 군대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복무 기피로 병력 부족 심화

    프랑스는 물론, 나토 유럽 회원국은 그동안 병력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병력 부족으로 30만 명 이상을 투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이 보유한 병력은 18만1000명으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인원보다 2만 명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징병제를 실시하기보다 자발적인 군복무제도를 선택한 이유는 젊은 층이 군복무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카미유 그랑 전 나토 사무차장은 “유럽 전체적으로 볼 때 해마다 군 병력이 감소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병력 감소는 군복무가 요즘 청년층의 생활방식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싱크탱크 로마국제문제연구소의 알렉산드로 마로네 연구원은 “젊은 세대는 여행, 해외 유학이나 해외 구직에 익숙하다”며 “ICT(정보통신기술) 등 기술 능력을 갖춘 사람은 민간 부문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젊은 층이 군복무를 기피하고 있다. 징병제를 실시할 경우 반발 등 정치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에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자발적인 군복무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원자가 모두 군복무를 하는 건 아니며, 군이 동기가 가장 충만한 자와 군 측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연방군 신병들이 9월 독일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사당 앞에서 입대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독일연방군 신병들이 9월 독일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사당 앞에서 입대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독일 10년 후 최소 26만 병력 목표

    독일 정부도 징병제 재도입의 전 단계로 볼 수 있는 새로운 병역제도를 추진한다. 독일 집권여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연정 파트너이자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은 수개월간 논의 끝에 새 병역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유럽이 당면한 심각한 안보 위기를 들어 징병제 재도입을 주장해온 CDU-CSU 연합과 “징병제는 안 된다”고 주장해온 SPD가 사실상 준징병제라는 새 제도를 도출해냈다. 새 제도는 2026년부터 18세가 되는 남녀 모두에게 군복무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남성은 본인 뜻과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답안지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여성은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답안지를 작성하면 된다. 이들 중 신체검사를 통과한 이는 군에 자원입대할 수 있다. 자원입대자의 군복무 기간은 최소 6개월이고, 연장할 수 있다. 월급 2600유로(약 444만 원)를 지급하며, 1년 이상 복무하면 운전면허 취득비용 지원 등 각종 혜택이 부여된다. 또 독일 정부는 2027년 7월부터 해마다 18세가 되는 남성 30여만 명 전원의 신체검사를 의무화하고 자원입대하는 신병이 부족한 경우 법률 개정을 거쳐 징병제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의 새 제도는 현행 모병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유사시 언제든 징병제로 전환할 수 있는 일종의 과도기 시스템이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폐지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위협이 고조되면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CDU·CSU·SPD 등 연립 정당들은 새 제도를 내용으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이를 연말까지 통과시킬 방침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향후 몇 년 안에 독일군을 유럽연합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군대로 만들고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독일 정부는 2035년까지 현역 병력을 25만5000∼27만 명, 예비군을 20만 명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미나 올랜더 영국 왕립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 중심에 있어 재래식 방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잠재력이 크다”며 “계획이 실현된다면 유럽 전체 안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독일 좌파 정당과 젊은 층은 징병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좌파정당 디 린케 지지층의 80%가 의무 징병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젊은 층 대다수도 “국가 방위가 중요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올해 독일의 양심적 병역거부 신청은 2011년 이후 최다치를 기록했다. 독일 기본법(헌법)에는 18세 이상 남성의 병역의 의무에 대한 신념과 양심에 따른 거부 권한, 민간 대체복무 등 징병제 때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연합에서 양대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사실상 준징병제를 통해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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