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에 위치한 구리 광산. [GettyImages]
카모아카쿨라 광산은 세계 2위 규모로, 지난해 구리 40만t을 생산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의 북쪽 국경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며, 캐나다 광산회사 아이반호와 중국 광산회사 쯔진이 소유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구리 매장량 세계 2위(1억5000만t), 코발트 매장량 세계 1위(600만t)다. 이런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거대한 구리 매장지는 이른바 ‘구리벨트(copper belt)’로 불린다.
AI발(發) 전력 전쟁 시대 핵심 자원 구리
구리는 전기차를 비롯해 AI 산업,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리튬이온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필수 원자재다. 전기와 열이 잘 통하고(전도성), 가공이 쉬우며(연성), 부식에도 강한(내식성) 금속이다. ‘21세기 석유’라는 말을 듣는 구리는 향후 30년간 인류가 지난 역사 동안 사용했던 양과 같은 양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제광물 전문가들은 2033년 전 세계 구리 소비량이 32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대당 구리 사용량은 90㎏으로 내연차(15㎏)에 비해 6배나 많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선 기존보다 5배 많은 구리가 사용된다. 게다가 AI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구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1㎿(메가와트)에 구리 27t이 쓰인다.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며 실물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구리가 AI발(發) 전력 전쟁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꼽히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미국 골드만삭스의 제프 커리 원자재 리서치 글로벌 수석은 “구리는 21세기에 석유만큼이나 중요한 원자재가 될 것”이라면서 “2040년 친환경 목적으로 사용되는 구리 양은 2023년 대비 47%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채의 덫’으로 구리벨트 선점한 중국
미국과 중국이 이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구리벨트에 자리한 구리 광산을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먼저 선점에 성공한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구리 광산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이들 국가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추진 명목으로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차관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중국으로부터 빌린 빚을 상환하지 못하자 그 대신 광산 운영권을 확보한 것이다. 말 그대로 중국이 쳐놓은 ‘부채의 덫(debt trap)’에 빠진 셈이다. 실제로 잠비아의 대외 부채 173억 달러(약 23조1000억 원) 중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 중국에 진 빚이다. 잠비아는 이를 갚지 못해 2020년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미국은 유럽연합 회원국과 함께 잠비아의 부채 부담을 줄여줄 것을 중국에 압박하는 동시에 IMF를 통한 구제금융(23억 달러·약 3조 원) 지원에도 나섰다. 특히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4월 잠비아를 사상 처음으로 방문해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은 또 콩고민주공화국과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투자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이 우위였던 구리벨트에 대한 지배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내륙국이다. 이들 국가가 구리와 코발트 등을 수출하려면 철도를 통해 대서양이나 인도양에 면한 국가의 항구까지 수송해야 한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유럽연합 등과 공동으로 앙골라, 잠비아, 콩고민주공화국을 연결하는 길이 1300㎞의 철도 정비 프로젝트인 ‘로비토 회랑(Lobito Corridor)’을 적극 추진해왔다(지도 참조). 로비토는 대서양에 면한 앙골라의 항구다.
로비토 회랑 프로젝트
앙골라 열차가 벵겔라 철도 노선을 지나 로비토 항구로 향하고 있다. [앙골라 정부]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프라 차관을 들여온 앙골라가 중국 대신 미국을 선택한 것은 일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것은 지정학적 판도를 바꾸는 지역 투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컨소시엄은 30년간 구리, 망간, 코발트 등 광물 수백만t을 로비토 항구로 운반할 계획이다. 미국은 17억 달러(약 2조270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도록 2억5000만 달러(약 334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후 앙골라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수출입은행은 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열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앙골라가 미국산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9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빌려줬고, 지난해 9월에는 미국의 교량 엔지니어링 회사 아크로우가 앙골라에 철교를 판매할 수 있도록 3억6000만 달러(약 4810억 원) 대출 보증을 승인했다. 미국 정부는 앙골라군과 함께 항공기, 탱크를 포함한 미국산 무기 수출을 위한 협상도 벌이고 있으며,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이 최근 앙골라를 방문하는 등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로비토 회랑 프로젝트에 따른 철도 정비는 올해 말 끝날 예정이다. 구리 첫 선적은 연말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있을 계획이다.
잠비아도 코볼드 메탈스의 대형 구리 광산 발견을 계기로 미국 등 서방 투자를 유치해 구리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 잠비아 정부는 2027년까지 연간 구리 생산량을 늘려 100만t을 생산하고, 2032년까지 300만t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잠비아 정부는 이를 위해 300억 달러(약 40조 원)의 외국 투자 유치가 필요한데 이를 미국과 캐나다, 유럽 각국으로부터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광산 기업들도 이에 뒤질세라 잠비아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유색광업집단유한공사(CNMC)는 향후 5년간 13억 달러(약 1조7300억 원)를 잠비아에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中도 구리벨트-탄자니아 연결 철도 현대화 약속
타자라 철도 노선을 따라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가고 있는 잠비아 열차. [잠비아 정부]
하지만 시속 60㎞밖에 되지 않는 타자라 철도는 건설한 지 오래돼 노후화됐을 뿐 아니라, 컴퓨터 제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상당히 낡은 채로 방치된 철도역들도 있다. 중국 기술팀은 최근 이 철도 노선 전체를 점검하고 현대화하는 데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를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탄자니아 정부에 일대일로 프로젝트 일환으로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과 중국은 구리벨트를 차지하려고 이처럼 노선이 다른 철도망을 구축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