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1

..

‘제2의 희토류’ 카드로 은 수출 통제 꺼내든 중국

새해부터 은을 ‘전략 광물’로 지정… 트로이온스당 100달러 전망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1-06 14:45:0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은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 당 29.24달러(4만2000원)에서 77.92달러(11만2900원)로 166.48% 폭등했다. 뉴스1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은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 당 29.24달러(4만2000원)에서 77.92달러(11만2900원)로 166.48% 폭등했다. 뉴스1

    은은 그동안 ‘악마의 금속(Devil’s metal)’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가격 변동성과 투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은 금과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지만 투기세력의 매집에 따른 가격 급등락으로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안긴다는 의미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텍사스 석유 재벌의 후손인 넬슨과 허버트 헌트 형제가 1979년초 부터 1년간 무려 1억 트로이온스(1트로이온스는 31.103g)의 은을 사들였다가 파산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들 형제가 매입한 은은 당시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 규모였다. 이들 형제는 인플레이션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은이 오를 것으로 보고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은을 매집했다. 이들 형제는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해 은을 끊임없이 매입할 수 있었다. 확보한 은 가격이 오르면, 해당 은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다시 선물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은 가격은 1979년 초 트로이온스 당 6달러에서 1980년 초 48달러까지 폭등했다. 결국 미국 중앙은행(Fed)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1980년 3월 27일 시장에 개입했고, 은 가격은 하루 만에 50% 이상 폭락했다. 헌트 형제는 은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파산했다.

    늘어나는 수요에 1년에 2.7배 올랐다

    국제 은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은 가격은 1980년 세계 은 시장을 뒤흔들었던 헌트 형제의 투기로 기록된 사상 최고가인 48.70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은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 당 29.24달러(4만2000원)에서 77.92달러(11만2900원)로 166.48%나 폭등했다. 은값 상승세는 과거처럼 투기 세력의 매집에 따른 것이 아니다. 공급 부족과 산업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가격 상승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은이 첨단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활용되는 ‘전략 광물’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은 금속 중에서 전기전도율과 열전도율이 가장 뛰어나다. 이 때문에 은은 인공지능(AI)의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우주선 부품 및 의료기기 등 산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은 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은 생산량의 60%는 산업용으로 쓰이고 있다. 은은 태양광 패널 전극 소재로서 필수 금속으로 자리 잡으며 수요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1GW 전력을 생산할 만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면 은 200t가량이 필요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30년까지 세계 태양광 설비가 3배 늘어나면 은 수요는 지금의 2배가 된다고 내다봤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한 대당 25~30g의 은이 들어간다. AI 데이터센터에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에도 은이 사용된다.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회로와 부품에도 은이 필요하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인베스코의 폴 심스 상품 담당 상무는 “AI와 전기차의 확대 및 재생에너지 수요 증가가 더해지면서 은의 가치는 앞으로 계속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은 가격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 대부분은 중국 공급망에 의존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채굴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중국 장시성 간현의 한 희토류 광산에서 채굴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은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또 다른 원인은 급증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은 생산량은 연간 2만5000~2만7000t 수준이다. 은은 대부분 구리·아연 등 금속 광산의 부산물로 생산된다. 은 광산 개발은 10년 이상 소요되며, 최근 광산 투자가 저조한 데다 환경 규제 등으로 단기간 내 생산량 증대가 어렵다. 게다가 최근 10년 사이 중남미 지역에서 은 광산의 생산량이 줄면서 공급난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투자전문가인 피터 크라우스 미국 애퍼쳐 인베스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년간 품귀 현상으로 누적된 은 공급 부족량은 2만2680t으로, 전 세계 은 광산의 1년 치 생산량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지난해 전 세계 은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3660t에 달했다. 올해는 7000~8000t의 은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은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국 상무부는 1일 ‘2026년 수출 허가증 관리 대상 화물 목록’을 발표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수출을 통제해 오던 텅스텐, 안티몬과 함께 은도 통제한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2022부터 2024년까지 매년 은을 수출했다고 증명한 기업들만 은을 수출할 수 있다면서 2026년부터 2027년까지 2년간 은 수출을 허가받은 기업 44곳의 명단을 확정해 발표했다. 

    중국 상무부는 ‘자원과 환경보호’를 이유로 은의 수출을 통제한다고만 밝혔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새로 도입된 은 수출 통제로 수출허가를 받은 기업들은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면서 “수출 기업은 연간 80톤 이상 생산 능력과 3000만 달러(434억 원) 신용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은 수출 허가제를 시행하는 것은 중소 업체들을 배제하고 공급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사인 증권시보는 “정부의 새로운 은 수출 통제 정책은 은을 공식적으로 국가 전략자원 목록에 포함시켜 ‘일반 상품’에서 ‘전략 물자’로 지정한 조치”라면서 “앞으로 은 수출을 희토류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강력한 정제·가공 능력을 갖춘 주요 은 생산국이자 매장국 중 하나다. 중국의 지난해 은 생산량은 5910t으로 멕시코(6843톤)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의 지난해 1~11월 기록한 수출량은 4600t, 수입량은 220톤으로 교역량에서 23%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은 정제 능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의 많은 광산들이 은 정광을 채굴해 중국으로 운송해 제련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은의 대부분이 중국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정제 능력 91%를 자랑하는 희토류보다는 낮은 비중이지만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에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은은 많은 산업 공정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조치는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올해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도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 전력이 있다.

    “은 확보 경쟁 벌어질 것”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전략 및 핵심 광물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 등 각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협상 카드로 활용해 왔다. 중국 정부는 2023년에는 갈륨과 게르마늄, 2024년에는 안티몬, 지난해에는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 등 희토류로 수출 통제 범위를 넓히는 등 전략 및 핵심 광물들을 각국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해왔다. 중국이 이렇게 수출 통제 조치로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전략 광물과 핵심 광물들을 독점적으로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갈륨 생산량의 99%, 텅스텐의 83%, 비스무트의 81%를 차지하고 있다. 흑연과 텔루륨·규소·인듐·바나듐도 70% 이상의 점유율로 세계 1위다. 희토류의 경우 중국의 생산량은 세계 전체의 69%를 차지했고, 디스프로슘, 터븀 등 중(重)희토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97%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미국, 일본의 희토류 수입액 가운데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1%, 75%, 83%였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희토류를 최고의 협상 카드로 활용한 바 있다. 중국은 고율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강공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맞대응했다. 결국 중국이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으로부터 관세 인하와 첨단 기술 수출 통제 완화 조치라는 양보를 얻어내면서 사실상 무역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희토류를 무기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중국이 이번에는 은을 ‘제2의 희토류’ 카드로 꺼내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도 은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는 등 은의 공급 부족에 대비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자국 경제와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는 ‘핵심 광물’ 목록에 구리·우라늄 등과 함께 은을 추가로 포함시켰다. 인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브라질,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도 은을 공식 비축 또는 전략 광물로 포함시켰다. 미국 귀금속 제조·유통업체 스코츠 데일 민트의 조시 페어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이 은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은을 찾아야 한다”며 “앞으로 은 확보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은 가격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알리샤 가르시아 헤레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수출 허가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은 가격이 트로이온스당 100달러(14만4700원)에 달할 수도 있다”면서 “은이 제2의 희토류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