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 15K, F - 4D 편대가 독도 상공을 초계비행하며 변함없는 대한민국 영공 수호자다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제공 · 공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 무력 대결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월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를 방문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국방부]
이 훈련의 상대는 당연히 중국이다. 이 훈련에 미국은 로널드레이건 항모전단과 와스프 강습상륙전단 등 2개의 전단을 참가시켰고, 호주는 캔버라 강습상륙전단을, 일본은 헬기항모인 ‘이세’함과 대형상륙함인 오오스미급 상륙함 ‘구니사키’함을 참가시켰다.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중국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호주 북부지역에서 이런 대규모 훈련을 진행하니, 중국의 심기가 편하지 않을 것이다.
또 유럽에서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동원해 ‘Rapid Forge’라는 이름의 훈련을 하고 있는데, 훈련 장소가 러시아를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위치다.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과 발트해에서 합동훈련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은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A를 모스크바 코앞까지 이동 배치시켰다. 미 공군은 7월 19일부터 Rapid Forge 훈련의 일환으로 폴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주요 공군기지에 F-35A 스텔스 전투기와 F-15E 스트라이크이글 전폭기, MC-130J 특수전수송기 등을 배치했다. 이들 중 F-15E 전폭기와 MC-130J 특수전수송기는 러시아 제2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30km 떨어진 에스토니아 ‘아마리’ 공군기지에 배치했으며, F-35A 스텔스 전투기와 M-130J 수송기는 모스크바에서 700여km 떨어진 라트비아 ‘리엘바레드’ 공군기지에 배치해 러시아를 긴장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는 가만있나. 그게 아니다. 7월 28일 러시아 해군 창설 323주년을 기념하고자 러시아 정부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4대 함대 가운데 하나인 발틱함대가 있는 발트해에서 중국 등 우방국 해군 군함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해상 열병식을 준비 중이다. 발트해에서 NATO 해군 군함들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덴만에서 대(對)해적 작전을 펼쳤던 052C급 이지스함인 ‘시안’함을 발트해로 보내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시안함은 수에즈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들어가 프랑스 해군의 총본산인 툴롱항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이베리아반도를 돌고 도버해협을 지나 흑해와 발트해로 진입했다. 특히 도버해협을 통과할 때는 영국 영해 안으로 들어가 항해함으로써 영국 해군이 밀착마크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도발이었다.
3대 전략폭격기 중 맏형 격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를 침범한 TU-95MS 폭격기는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폭격기 중 맏형 격이다(왼쪽). 역시 KADIZ를 침범한 H-6K 폭격기는 중국 공군 폭격기 중 가장 최신 개량형이다. [위키피디아, AP=뉴시스]
또 중국이 동원한 H-6K 폭격기는 중국 공군 폭격기 중 가장 최신 개량형으로, 난징 근교의 제10폭격기사단 예하 제29폭격기연대 소속 기체들이다. 이 중국 폭격기 역시 사정거리 2500km의 CJ-10 핵순항미사일 6발을 장착할 수 있는데, 만약 핵공격을 염두에 둔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동원한 이번 4대의 폭격기는 핵미사일 28발을 쏠 수 있는 가공할 능력의 무기다.
한 가지 작은 이유와 두 가지 큰 이유
이런 무기들을 동원해 우리 영공을 침범했으니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강력한 폭격기들이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이 아니고 비무장의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넘어온 것이라 그다지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A-50은 모스크바 근교 주코프스키기지에 주둔하는 제144조기경보기연대 소속의 기체인데, 이를 반대편인 극동지역의 아무르주 우크라인카기지로 보내 폭격기를 지휘하게 했다. A-50은 무장하지 않았지만, 이번 비행의 임무가 핵폭격기 4대를 지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무장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그러면 러시아와 중국이 이런 도발을 한 이유가 뭘까. 한 가지 작은 이유와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작은 이유는 러시아 해군 창설 323주년을 맞는 행사 주간에 한 도발임을 염두에 두면 답이 나온다. 러시아 해군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패배한 전쟁이 바로 러일전쟁이다. 발틱함대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대한해협에서 일본 해군에게 처참히 뭉개진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하던 중 최후의 일격을 당한 곳이 바로 독도와 울릉도 근방이다. 그 전투에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 당시 일본이 운용하던 독도 레이더 기지다. 지금은 비록 일본이 지배하고 있지 않고 레이더 기지도 없지만, 100여 년 전 치욕의 현장을 한 번쯤은 돌아보고 싶었다고 본다. 마침 이곳은 현재 한국과 일본이 분쟁 중인 지역이라 직접적으로 책임질 일도 적고, 핑계를 대기도 수월하다.
큰 이유 가운데 첫 번째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태평양에서 다국적 훈련을 통한 대중(對中) 압박과 유럽에서 NATO 훈련, 미 공군 전투기들의 발트3국 전진 배치 등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거의 준동맹이라 해도 좋을 밀착관계에 있다는 것을 미국 측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방부와 외교부는 중국과 전방위적인 군사협력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 협정은 9월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협정에는 고강도 연합군사훈련과 초계비행 실시 등의 내용이 포함되는데, 이번 비행이 바로 그 협정안을 예행연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점은 이번 도발과 비슷한 유형의 사례가 재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어쩌면 정례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 대령 출신이자 군사전문가인 드미트리 트레닌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장은 “러시아와 중국 간 새 군사협정이 체결되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공동정찰이 주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는데, 이는 이번 영공 침범 같은 사안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처음 발생한 이번 사태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면서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한국 떼어놓기 전법에 휘말릴 위험
[뉴시스]
러시아와 중국도 한국 정부가 일본과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영토분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과 북방 4개 도서를 두고 영토분쟁 중이고, 중국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독도 상공을 침범해 한국의 반응을 유도했고, 일본도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처음에 A-50의 항법장치 문제로 경로를 벗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너무 군색한 거짓말이다. A-50은 러시아가 보유한 모든 군용기 가운데 첨단장비가 가장 많이 탑재됐는데, 초보적인 항법장치가 고장을 일으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러시아 측은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독도를 한국 영토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독도는 국제적으로 분쟁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국제명칭도 독도(Dokdo)가 아니라 리앙쿠르암초(Liancourt Rocks)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반일감정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그에 대한 반발로 홋카이도 북방 4개 도서와 센카쿠열도가 일본령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예상대로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반발은 없고, 오히려 일본만 비난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러시아가 바라던 바다. 바로 한국을 해양세력에서 떼어내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특성상 이번 도발의 끝에 러시아는 남지 않고 반일만 남으리라는 점을 알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 간 새로운 군사협정으로 이런 일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처음에 입장 정리를 잘해야 한다. 만약 끝까지 독도를 한국 영공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홋카이도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강하게 풍길 필요가 있다. 그런 단호한 자세야말로 한국을 한미일 해양세력에서 떼어내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미국 등 우리의 동맹과 우방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은 한국과 일본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이 모습을 지켜봤으며, 한국과 일본의 대응들을 가까이서 봤다. 대한민국 생존과 발전의 필요조건인 한미동맹이 주변 적성국의 공작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 정부는 국익보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우리 국민을 잘살게 해주고 우리나라를 든든히 지켜달라고 선출해준 정부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이 이상의 반일감정 조성은 그만두고, 주변국에게 당당히 우리의 뜻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