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월트디즈니(디즈니) 영화의 공습이 심상치 않다.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중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벌써 4편이다. 한국 영화로 각각 1, 4위에 오른 ‘극한직업’(1620만 명)과 ‘기생충’(1000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2편은 모두 디즈니 영화다. 관객 1390만 명으로 2위에 오른 ‘어벤져스 : 엔드게임’과 7월 24일 현재 1100만 명을 넘겨 3위를 달리고 있는 ‘알라딘’이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제작한 마블스튜디오는 2009년 디즈니에 인수됐다. ‘알라딘’은 1993년 제작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긴 영화로 ‘지니’ 역을 맡은 윌 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중 한국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최고 흥행작이 됐다.

박스오피스 100억 달러 앞둔 디즈니

디즈니 영화의 흥행 몰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파도처럼 계속 몰아닥치고 있다. 소니와 마블스튜디오가 공동제작한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 760만 명, 마블스튜디오의 ‘캡틴 마블’이 580만 관객을 기록해 각각 흥행 순위 5, 6위를 지키고 있다. 디즈니가 2006년 인수한 픽사와 공동제작한 ‘토이 스토리 4’는 33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1994년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해 7월 17일 개봉한 ‘라이온 킹’은 일주일 만에 260만 관객을 사로잡으며 포효하고 있다. 

디즈니 영화의 이런 약진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트’는 올해 디즈니가 벌써 70억 달러(약 8조2460억 원)를 벌어들여 할리우드 스튜디오 중 최초로 한 해 100억 달러(약 11조7800억 원) 이상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7월 22일 보도했다. 역대 최대 박스오피스 수입은 2016년 디즈니가 기록한 76억 달러였다. 워너브라더스와 유니버설, 소니 같은 경쟁 스튜디오의 현재 박스오피스 성적은 하나같이 20억 달러 이하를 밑돌고 있다. 

디즈니는 이미 ‘어벤저스 : 엔드게임’만으로 27억9000만 달러(약 3조2900억 원)를 벌어들였다. 2008년 ‘아바타’가 세운 27억8000만 달러를 제치고 역대 흥행 수입 1위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그 뒤를 ‘캡틴 마블’(12억3000만 달러)이 탄탄히 받쳐주는 가운데 ‘알라딘’과 ‘토이 스토리 4’ 역시 각각 10억 달러 안팎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7월 19일 북미에서도 개봉한 ‘라이온 킹’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5억3100만 달러(약 6266억8620만 원)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역시 10억 달러 돌파가 가시권이다. 공동투자작인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역시 10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2013년 흥행 돌풍의 재림을 노리는 ‘겨울왕국2’(11월 개봉 예정)와 스타워즈 새 3부작의 최종편인 ‘스타워즈 : 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12월 개봉 예정)까지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한 루커스필름은 2012년 디즈니 사단에 합류됐다. 올해 3월엔 21세기폭스까지 편입돼 더욱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게 됐다. 

디즈니의 자랑인 애니메이션과 원리가 비슷한 컴퓨터그래픽(CG)을 중시하는 슈퍼히어로물과 SF 전문 제작사를 인수합병한 것이 극대화된 효과를 낳은 것이다. 올해 말 출시할 새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의 콘텐츠 확보까지 겨냥한 과감한 투자가 거둔 눈부신 성과이기도 하다. 금융 전문업체 마켓워치의 7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이에 힘입어 올해 들어 지금까지 디즈니 주가는 약 27.5% 급등했다고 한다.

차별화 전략의 예외

디즈니 영화의 이런 눈부신 약진은 원작 스토리를 21세기 감각에 맞게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가미한 점이 컸다. 왕족 혈통이 흐르는 백인 남성 중심의 영웅서사인 스타워즈 연작의 주인공을 ‘듣보잡 혈통’의 흑발 여성과 제국군 졸병 출신 흑인 남성으로 과감하게 바꾼 새로운 3부작이 대표적이다. ‘캡틴 마블’ 역시 남성 중심 영웅서사의 주인공을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군분투한 여성으로 바꿔치는 결단을 보여줬다. ‘토이 스토리 4’의 경우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헌 장난감의 눈물겨운 충성심을 그려낸 전편과 달리, 스스로 주인 곁을 떠나 독립적 삶을 꾀하는 주체적인 장난감을 형상화했다. 아랍권을 무대로 한 실사영화 ‘알라딘’에도 남자 주인공이 아닌 자스민 공주가 술탄이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가미했다. 

이와 달리 실사영화 ‘라이온 킹’은 원작에 가장 충실했다. 아프리카 프라이드랜드의 왕인 사자 무파사가 하이에나 무리와 결탁한 동생 스카의 음모로 살해된다. 무파사의 후계자인 새끼사자 심바는 자신의 실수로 아비가 희생됐다는 죄책감에 왕국을 떠나 방황한다. 심바의 죽마고우인 암사자 날라가 스카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심바를 찾아오고, 돌아온 심바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실제 동물을 등장시켜 촬영한 점을 빼면 거의 원작과 같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의 장면 장면을 실제 동물을 데리고 거의 똑같이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관객의 뜨거운 반응 역시 여기서 발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라이온 킹’ 역시 자연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바꿨더라면 ‘라이온 퀸’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 사자 무리(이를 영어로 pride라고 한다. 프라이드랜드라는 명칭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존재는 수사자가 아니라 암사자이기 때문이다.

수사자는 ‘씨내리+보디가드’ 불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월 22일자 ‘어떻게 ‘라이온 킹’은 실제 사자가족의 관계를 오도했나’라는 기사에서 크레이그 사포에 스미소니언 국립동물원 큐레이터의 입을 빌려 “사자 사회는 기본적으로 모권사회”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프라이드는 보통 대여섯 마리의 암사자와 두세 마리의 수사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새끼로 구성된다. 

여기서 주요한 결정은 주로 암사자의 우두머리가 결정하는데, 이는 보통 다른 암사자들의 엄마가 맡는다. 사냥과 새끼 키우기, 다른 암사자들로부터 프라이드의 영역 지키기, 그리고 어떤 수사자를 받아주느냐까지. 따라서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심바의 엄마 사라비가 실제 프라이드랜드를 다스리는 ‘라이온 퀸’으로 그려지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수사자의 역할은 짝짓기와 다른 수사자로부터 암사자, 새끼를 보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수사자는 대부분 3~4년 머물다 무리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객식구에 가깝다. 또 처음 서열을 정할 때를 제외하면 같은 프라이드 내 수사자끼리 싸우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파사와 스카가 권력암투를 벌인다거나 심바가 무리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일이 실제 자연계에선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영화 내용 중 현실과 가장 부합하는 것은 심바에 대한 무파사의 부성애다. 수사자는 자기 프라이드 내 새끼를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이 역시 암사자들의 전략적 성 선택의 산물이다. 암사자는 사람과 달리 배란기에 여러 개의 난자를 생산하기에 아빠가 다른 새끼사자를 한배에서 낳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수사자는 암사자가 낳은 새끼 중 누가 자기 새끼인지를 구별할 수 없어 프라이드 내의 새끼 모두에게 애정을 쏟는다는 것. 프라이드 영역 순찰을 돌고 온 수사자들이 영화에서처럼 ‘귀엽게’ 새끼사자를 핥거나, 이마를 비비거나, 나지막하게 가르랑대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라이온 킹’이 특별한 이유

물론 여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사자는 태어나고 2년 전후로 성체가 돼 발정기를 맞기에 수사자의 경우 무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게 쫓겨난 수사자는 1~2년간 방랑하다 다섯 살 전후에 새로운 프라이드에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수컷을 프라이드 밖으로 방출하는 것 역시 유전적 다원성 확보를 위한 성 선택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라이온 킹’이 확산시킨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영화에서 하이에나는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식충이로 그려진다. 썩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데다, 못생긴 외모와 기분 나쁜 울음소리 때문에 생긴 편견이다. 실제 하이에나는 지능지수가 높고 협동정신이 강하며 자기보다 약한 동물에겐 먹이도 나눠주는 의리의 동물이다. 게다가 비록 남루한 외모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을 씻는 청결한 동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디즈니는 왜 유독 ‘라이온 킹’에만 이런 차별화 전략을 적용하지 않은 것일까. 우선 동물이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의인극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토대로 만든 부자극을 모녀극으로 전환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에 기초한 작품이라 한번 손대기 시작하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었을 테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1989년 ‘인어공주’ 이후 디즈니가 선보인 뮤지컬 애니메이션 가운데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최고 히트작이기 때문이다. 작곡 엘튼 존, 작사 팀 라이스 콤비에 한스 치머의 곡까지 더해진 1994년 OST 앨범은 ‘할리우드 리포트’에 따르면 역대 애니메이션 OST 중 최고 판매량(1500만 장)을 기록했다(‘겨울왕국’의 경우 스트리밍 집계라 기준이 다르다). 

또한 199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돼 2014년 9월 ‘오페라의 유령’을 제치고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으며 현재도 브로드웨이에서 절찬리에 상연 중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7년 12월까지 ‘라이온 킹’이 뮤지컬로만 벌어들인 돈만 81억 달러(약 9조700억 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