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일본 참의원(상원의원에 해당) 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 연정으로 과반 의석(141석)을 확보했지만 개헌선(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60석) 확보에는 실패해 절반의 승리에 만족해야 했던 아베 신조 총리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정치인이 있다. 국내 정치적 포석을 위해 ‘한국 때리기’에 나선 아베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율에 균열을 가져올 ‘포스트 아베’ 정치의 포자(胞子)들이다. 


먼저 독특한 이력과 출중한 미모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2명의 40대 여성 정치인이 있다. 비키니 모델 출신으로 6명을 뽑는 도쿄도 선거구에서 4위로 당선한 시오무라 아야카(41·입헌민주당)와 아나운서 출신으로 집권 자민당 3선 의원인 아이치 지로 전 재무성 부대신(차관)을 꺾고 미야기현에서 당선한 이시가키 노리코(45·입헌민주당)다. 

서울시의원에 해당하는 도쿄 도의원으로 정치 경력을 쌓은 시오무라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다 남성의원들로부터 “너부터 결혼하고 애나 낳으라”는 야유 속에서 눈물의 연설을 이어가 여권(女權) 수호의 기수라는 이미지를 획득했다. 정치 초년병인 이시가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에서 ‘반핵’ 메시지와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9조 개정 전면 반대’를 내걸고 여당 중진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두 의원의 분전에 힘입어 2017년 10월 창당한 입헌민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32석을 얻어 공명당(28석)과 국민민주당(21석)을 제치고 제2당으로 뛰어올랐다. 과거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를 출현시킨 민주당 세력이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입헌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4월 창당된 신생정당 ‘레이와신센구미(令和新選組)’는 득표율 2%를 넘기며 2명의 비례대표를 당선시켜 정당 조건을 충족했다. 놀랍게도 2명 다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중증장애인이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ALS)을 앓고 있는 전직 기타리스트 후나고 야스히코(61)와 뇌성마비 여성장애인 기무라 에이코(54)다. 



참의원 역사상 최초로 돌보미의 도움 없이는 등원조차 어려운 중증장애인 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그나마 생후 8개월 무렵 보행기가 넘어져 장애인이 된 기무라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40대에 ALS가 발병한 후나고는 인공호흡기까지 단 상태에서 컴퓨터 센서를 치아로 조작하거나 눈으로 문자판을 응시하면 돌보미가 이를 캐치해 대독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최다득표하고도 낙선

두 사람은 당선 직후 모두 감격에 젖어 중증장애인의 활동을 국가가 보장하는 입법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후나고는 돌보미의 대독 형식으로 “약하게 보이지만 근성만은 남보다 2배니 사력을 다할 것” “이제부터가 승부”라는 절절한 출사표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최초로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비례대표로 당선한 이시카와 다이가(45·입헌민주당) 후보와 더불어 일본 정계에 비주류 아웃사이더 정치신인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정치인은 따로 있다. 현역 참의원으로 후나고와 기무라를 비례대표 1, 2순위로 밀어 우선 당선시키는 바람에 정작 자신은 역대 낙선인 중 최다득표인 99만여 표를 얻고도 비례대표 3순위라 낙선한 ‘천하의 바보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45) 레이와신센구미 대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종전 참의원 낙선인의 최다득표는 44만5000표였다. 

야마모토 대표는 일본 영화 ‘배틀로얄’(2000)과 ‘고’(2001), 그리고 한국 영화 ‘역도산’(2004)과 ‘마이웨이’(2011)에도 출연해 한국인에게도 낯익은 배우 출신 정치인이다. 열여섯 살에 연예계에 입문해 스타급은 아니지만 연기파 조연배우로 착실히 인기 경력을 쌓아온 그가 2011년 서른일곱 나이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었다. 사고 직후 원전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방치해온 일본 정부에 분노해 트위터에 ‘테러 국가를 거드는 일은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린 게 화근이 됐다. TV 드라마 출연이 취소됐고, 연예기획사에서도 쫓겨났다. 연예계에 입김이 센 정치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아예 탈원전 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2012년 정치 초년병이 겁 없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보수 우익의 얼굴마담 격인 이시하라 신타로에 도전했다 큰 표차로 낙선했으나 2013년 참의원 선거 당시 도쿄 선거구에서 당선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그의 행보는 보수적인 일본 정치권에서 돈키호테 저리 가라 할 만큼 파격의 연속이었다. 참의원이 된 직후인 2013년 10월 31일 헤이세이 일왕(아키히토) 부부가 고쿄(皇居·황거)에서 주최한 가든파티에 참석해 원전 피해의 실상을 알리는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일본 정치권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일왕의 정치 참여를 금기시하는 정치권의 금도를 깬 돌출행위라는 비판이 쇄도했고, 우익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헤이세이 일왕이 해당 편지를 읽지 않고 궁내청 직원에게 넘겨주는 기지를 발휘해 야마모토의 존재감만 부각되는 효과가 있었다.

좌충우돌 돈키호테 정치인

2015년 9월 18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안보법 강행 처리에 맞서 ‘우보(牛步·소걸음) 필리버스터’로 다시금 유명 인사가 됐다. 전날 ‘자민당이 죽은 날’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그는 이날 염주와 상복 차림으로 투표함을 향해 6분 동안이나 극단적으로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투표 지연 행위를 마친 뒤 아베 총리를 향해 참배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제 자민당이 죽었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오늘은 분향한 것”이라는 게 그의 변이었다. 

여러 돌출행동에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조소가 일자 그는 반(反)아베 세력의 연합을 끌어내기 위해 좌충우돌했다. 구태 정치인의 대표 격인 오자와 이치로와 손잡고 군소정당 자유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오자와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희망의 당’과 합당해 국민민주당을 만들자 박차고 나와 다시 홀로서기에 나섰다. 고이케 지사의 역사수정주의적 언행을 지적한 그는 “결국 근본은 아베 총리와 같다는 점에서 독(毒)으로 독을 제어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 탈당의 변이었다. 

주류 정치권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던 그가 그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4월 창당한 레이와신센구미다. 레이와는 5월 1일 즉위한 새 일왕(나루히토)의 연호고, 신센구미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 교토 치안을 담당했던 방첩·경호 부대를 뜻한다.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을 맹세했기에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존왕파에 대한 무차별 테러로 악명을 떨쳤지만, 야마모토의 출세작인 동명의 NHK 드라마(2004)를 통해 결국 입신출세에 실패한 역사의 패자였지만 최후 순간까지 결사항전하며 의리를 지켰다는 서민영웅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사실 레이와신센구미는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신센구미는 메이지유신을 주도하며 일왕을 내세웠던 존왕파의 대척점에 있는 막부파였다. 그런데 새로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를 앞세워 당명으로 삼은 것이다.

레이와신센구미의 함의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엿보인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레이와 시대를 새롭게 이끌어갈 조직(정당)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겠다는 암시다. 역사적으로 신센구미의 최대 적이 조슈번 출신 무사들이었는데, 아베 총리가 대대로 물려받은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이 그 조슈번에 해당한다. 신센구미가 맹활약하던 1864년 4월 ‘이케다야 사건’과 6월 ‘금문의 변’의 상대가 주로 교토에 불을 지르고 막부로부터 일왕을 빼돌리려는 조슈번 출신 무사들이었다. 따라서 레이와신센구미에는 레이와 시대 조슈번 출신인 아베 총리를 격퇴하기 위한 결사대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레이와신센구미의 공약은 아베 총리 정책의 대척점에 서 있다. 평화헌법 수호, 원전 폐기,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시간당 1500엔(약 1만6300원)은 물론, 아베 정부가 20%까지 올리려는 소비세 인상에 대해 아예 소비세 철폐를 주장한다. 부족한 재원은 법인세를 올려 충당하자는 것으로, 이는 일본공산당의 소비세 동결 공약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사실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야마모토 대표나 레이와신센구미는 TV와 주요 신문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비주류 신생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장애인, 편의점 점주, 싱글맘 같은 비주류 인물을 비례대표로 내세우고 일본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만 충실한 아베 정부의 실정을 맹비판하는 거리유세에 집중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야마모토 대표가 전국을 돌며 이를 진두지휘했다.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게 말이 되느냐! 살고 싶게 해줘야지! 뭘로? 정치로!”라고 울먹이며 외치는 그의 연설에 유세 현장은 수천 명의 사람으로 넘쳐났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런 거리유세 소액기금 모금 활동으로 3개월 만에 43억 원을 거둬들였고, 자원 봉사자도 3500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그 자신은 낙선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 야마모토 다로라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어느 시대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주변 눈치 안 보는 바보들”이라는 그의 말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낙선할 게 뻔한 부산에서 출마를 감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언행이다. 이 때문에 무능한 야당이 사분오열한 탓에 7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아베에 대항할 확실한 구심점이 조성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희망 섞인 성급한 관측일 뿐이다. 

야마모토 대표의 눈은 이제 중의원(일본 하원) 선거를 향하고 있다. 선거유세를 하면서 “3년 안에 정권을 가져 오겠다”고 말한 야마모토는 중의원 차기 총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나갈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개헌선 확보를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7월 25일자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일본 참의원은 임기 6년에 3년마다 선거를 통해 절반을 뽑고 임기가 보장된다. 반면 임기 4년의 중의원은 총리의 제청으로 언제든 해산될 수 있으며, 총선 실시도 가능하다. 마지막 중의원 선거는 2017년 10월 실시돼 의회 해산이 없으면 2021년 10월까지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