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9월 15일 이른바 ‘반도체 겨울론’을 제기하며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당시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낮췄고, SK하이닉스 목표주가 역시 26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하향했다. 한 달여가 지난 10월 3일 두 회사의 상황은 엇갈렸다. 삼성전자 주가는 보고서 발표 직후 대비 4.8% 하락한 반면, SK하이닉스 주가는 도리어 3.9% 상승한 것이다. SK하이닉스 주가는 목표주가인 12만 원보다 위에 머무르고 있다. 반도체 겨울론이 기업별로 차별화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왼쪽)와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을 무대로 맞붙고 있다. [각 사 제공]
566일 만에 장중 ‘5만전자’
반도체 겨울론 여파가 시장에서는 기업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가 주가 방어에 선전하고 있는 반면, 해당 분야에서 1위 자리를 내준 삼성전자는 연이어 주가가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10월 2일 장중 ‘6만전자’가 붕괴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5만 원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3월 16일 이후 566일 만이다.
반도체 겨울론에 대한 공포는 ‘메모리 업황 풍향계’로 불리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이후 줄어드는 분위기다. 마이크론은 9월 26일 4분기(6~8월) 실적 발표에서 어닝서프라이즈 소식을 알렸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고대역폭메모리(HBM)는 2025년 물량까지 완판됐다”며 “HBM 수급 상황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의 우려와 달리 AI 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액은 136억 달러(약 18조 원)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다만 ‘레거시 반도체’만으로 반도체 겨울론의 우려를 정면 돌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빅테크 기업과 각국 정부를 중심으로 AI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관련 시장에 투심(投心)이 이어질 전망이지만, 그 외 분야는 경기 둔화 우려를 온전히 불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관측되고 있다. 10월 3일 기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11조2313억 원으로 한 달 사이 17.8% 하락했으나, AI 반도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3.5% 하락하는 데 그쳤다. 양사에 대한 적정주가 컨센서스 하락폭 역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컸다(표 참조).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내년 D램 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DS(반도체)부문 이익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주가는 이미 메모리 다운사이클 진입을 반영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AI 성장성 우려 지나쳐”
전문가들은 반도체 겨울론을 돌파하기 위한 핵심 열쇠로 ‘AI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꼽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HBM 등 AI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전망이고 비메모리 반도체 역시 중요한 시기인데, 삼성전자는 두 분야 모두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해 경기가 둔화되면 직격탄을 맞는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사업부(파운드리 및 시스템LSI)가 3분기에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력 조정에 나선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0월 1일(현지 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지역 인력의 10%를 해고하는 등 글로벌 인력 감축 계획을 집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일상적인 인력 조정”이라는 삼성전자 측 설명에도 시장은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국계 증권사 맥쿼리는 9월 25일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하며 목표주가도 12만5000원에서 6만4000원으로 낮췄다. 맥쿼리는 “상황에 따라 (삼성전자가) D램 1위 공급업체 타이틀을 잃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HBM 1위 굳히기에 돌입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3월 5세대 HBM인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한 데 이어, 지난달 현존 최고 사양인 HBM3E 12단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제품은 연내 고객사에 납품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HBM3E 8단·12단 제품의 엔비디아 승인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는 AI 성장성에 대한 우려를 지나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AI 서버 투자 및 HBM의 성장 속도 둔화를 고려하더라도 내년 실적 개선 우려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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