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 증시가 ‘블랙먼데이’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더 좋지 않다.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을 앞두고 국내 주가가 반등 모멘텀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이자 투자자인 우황제 작가는 “당장 주가와 별개로 국내 기업들 실적은 지난 2년 동안 이어진 약세 구간을 뒤로하고 서서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번 실적 발표 시즌을 맞아 기업 펀더멘털에 착목해 주식투자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 작가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부터 주식투자 및 분석에 뛰어들어 삼성증권 모의투자대회 1위를 거머쥔 투자 전문가다. 분기마다 국내 증시 산업·기업을 면밀히 분석하는 게 그의 장기다. 실적 발표 시즌을 앞둔 9월 30일 우 작가를 만나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목할 섹터(sector)와 투자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증시 약세, 주된 원인은 금투세 이슈”
투자 전문가 우황제 작가. [지호영 기자]
“2022~2023년 국내 기업들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이에 앞서 실적 악화 전망에 주식시장 분위기가 일찌감치 안 좋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스피를 시작으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는 구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올해 초까지 실적 악화가 계속되다가 저점을 다지는 모습이다. 당장 주가와 별개로 기업 실적은 지난 2년의 약세 구간을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주의할 점은 실적이 개선된다고 바로 주가가 폭등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실적 악화가 마무리되고 바닥을 다지는 구간이 이어진다. 당연히 떨어지던 주가도 횡보한다. 그 후 실적 개선과 함께 주가도 상승세를 키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국내 기업들 실적이 개선 방향으로 바뀌었음에도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주식 수익률이나 밸류에이션이 전쟁 중인 국가 못지않게 안 좋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주된 원인은 역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이슈라고 본다. 금투세는 상위 1% 투자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금 규모가 막대하다. 금투세가 실제로 도입되면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과 기관, 외국인이 대거 투자 비중을 줄일 것이다. 이미 이들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우량 기업도 주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인기 있는 섹터도 기업 실적에 비해 밸류에이션이 낮은 편이다. 금투세가 실제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선제적으로 한국 주식 비율을 줄이는 매도세가 국내 주식시장을 억누르고 있다. 게다가 환율 상황도 국내 주식시장에 비우호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식투자를 단념해야 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금투세 이슈 같은 외부 요인은 기업 펀더멘털과 무관하다. 금융위기쯤 되는 리스크가 아닌, 금투세나 환율 같은 이슈는 투자 속도를 조정하는 정도의 변수라고 본다. 실적 같은 기업 펀더멘털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금은 주식 비중을 늘려갈 시기다. 다만 금투세 같은 외부 변수를 감안해 주식 비중을 서서히 늘려가는 전략은 필요하다.”
주식시장 저점을 확인할 지표가 있다면.
“기업의 전반적인 실적 흐름과 주식시장에 투자할 시점을 파악하는 데 참고할 만한 지표가 ROE(Return On Equity·자기자본이익률)다. 워런 버핏 같은 많은 가치투자자가 선호하는 지표로, 기업의 적정 밸류에이션을 산출하는 데 자주 쓰인다. 국내 주식시장 ROE는 대체로 4~10%를 오간다. 주식시장이 좋아지면 ROE가 점차 오르고 장세가 악화되면 다시 내려간다. 최근 코스피의 경우 ROE가 5% 밑으로 낮아졌다가 점점 반등하고 있다. 코스닥은 ROE가 1%까지 떨어졌다가 바닥을 다지는 중이다. 이 같은 ROE에 비춰 봐도 국내 주식시장 투자 비중을 늘려가기 시작해야 할 시기다. 다만 자산관리 관점에서 포트폴리오의 주식 비중을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서서히 늘릴 필요가 있다. 투자 종목도 특정 대장주를 풀매수하지 말고, 10~20개 항목에 걸쳐 월별 분할매수하는 게 현명하다.”
“실적 개선 초입 섹터 주목”
그렇다면 실적 사이클 측면에서 눈여겨볼 섹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실적이 개선되는 초입에 있는 섹터를 잘 보면 그 안에서 시간대별로 주목할 기업이 많다”는 게 우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실적 개선 조짐을 보이는 섹터로 화장품과 전자부품, 레거시 반도체를 꼽았다. 아직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년 즈음 투자를 고려할 만한 섹터로는 화학 산업을 지목했다. 각 섹터에 대한 우 작가의 분석이다.
①화장품
“국내 화장품 산업의 실적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 악화됐다. 기존에 화장품 기업들이 ‘몰빵’한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이 늘면서 올해 들어 화장품업계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이런 전망을 듣고 곧장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대장주를 풀매수하고 있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화장품 산업 실적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게 바로 이들 기업이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중국시장 의존도가 컸기 때문이다. 최근 화장품 섹터의 주가 흐름을 보면 대장주일수록 흐름이 부진한 반면, 일반 투자자에게 생소한 기업들 실적이 오히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미국, 일본 시장을 공략해 매출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②전자부품
“스마트폰이나 디지털기기에 들어가는 전자부품 산업도 지난 2년 동안 실적이 크게 나빴다. 스마트폰 등 주요 제품의 판매 증가세가 꺾이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실적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관련 기업들의 실적 감소세가 완만해지면서 바닥을 다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이 섹터에선 규모가 작은 업체보다 대기업이 유리한 편이다. 단일 품목을 특정 기업에만 공급하기보다 다양한 제품을 여러 업체에 납품하는 삼성전기, LG이노텍 등이 대표 기업이다.”
③레거시 반도체
“과거와 달리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인공지능(AI)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에 국한해 실적과 주가가 대폭 올랐다. 하지만 낸드플래시 등 이른바 레거시 반도체 관련주의 하락 사이클도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상승세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 지표가 나타나고 있기에 슬슬 주목할 시점이다. 최근 미국에선 엔비디아 외에도 장비업체, 소재업체 혹은 레거시 반도체 설계 기업을 중심으로 실적 상승 조짐이 보인다. 한국도 파츠 기업 가운데 서서히 실적 반등 움직임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다만 AI 관련주를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의 센티멘털(투자심리)이 부정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레거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여유 있게 시장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④화학
“실적 악화가 장기화된 대표적인 섹터가 화학 산업이다. 관련 기업은 매출액 기준으로 1년 이상,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2년 넘게 실적 악화가 이어졌다. 최근 들어 실적 하락이 둔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하락이 끝나고 횡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시점이 화학 산업을 공부할 때다. 이번 사이클에서 주의할 점은 글로벌 화학업계의 경쟁 심화다. 국내 화학 기업들은 앞으로 중국 기업들과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중동 기업들과 경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간 정유에 집중하던 중동 화학 기업들이 에틸렌 등 일부 완제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화학 대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는 범용제품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화학 산업에선 대기업보다 에폭시, 스판덱스 등 전문성이 필요한 틈새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섹터 흐름까지 감안한다면 화장품 용기(容器)를 생산하는 화학 업체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종목 발굴 프로세스 중요”
우 작가는 개인투자자에게 “기업 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 종목을 발굴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괜찮은’ 종목을 찾자마자 곧장 매수하는 상당수 개인투자자의 방식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상당수 개인투자자가 새로운 종목을 찾으면 곧장 매수한다. 종목 발굴 절차 없이 사실상 매수만 있는 투자 방식이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기업 분석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종목의 적정 가치를 따지고 매수 타이밍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주식시장에 약 2500개 종목이 상장돼 있다. 주식시장 호황기에도 유의미한 수익을 올리는 종목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 투자자가 바라는 정도의 수익률을 내는 종목은 10% 정도라고 봐야 한다. 나는 분기마다 2500여 개 기업 모두를 비교 분석해 상위 10%에 들 것만 추려낸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자기 주관에 갇히지 않고 더 좋은 종목으로 점프할 수 있다. 일단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거나 악화일로인 기업은 당장 볼 필요가 없다. 2010년대 이후 코스피에서 실적이 증가한 기업은 연평균 10% 이상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실적이 감소한 기업은 2~4%에 그쳤다. 따라서 실적이 증가하기 시작한 기업을 추리고, 그중에서도 장기적으로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큰 종목을 다시금 추려야 한다. 실적 발표 시즌이 끝나면 이들 종목을 다시 분석해 실제 매수 대상을 정하면 된다. 이번 실적 발표를 계기로 이 같은 작업을 해보길 권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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