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9

..

밀주에서 탄생한 오크통 숙성 위스키

[명욱의 술기로운 세계사] 세금 징수인 피하려 동굴 속 오크통에 숨겼더니 맛과 향 부드러워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10-09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위스키는 유럽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을 침공한 십자군전쟁에서 유래됐다. 이들은 이슬람 지역의 연금술을 접하면서 증류 기법을 배웠고, 이것이 위스키 제조로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에서 오늘날 위스키가, 프랑스와 동유럽에서 각각 코냑과 보드카가 발전한 것이다. 위스키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세금’이다.

    위스키를 관에 보관한 이유

    위스키를 오크통에 보관하면 호박색을 띠면서 맛과 향이 부드러워진다. [GETTYIMAGES]

    위스키를 오크통에 보관하면 호박색을 띠면서 맛과 향이 부드러워진다. [GETTYIMAGES]

    과거 위스키는 사치재였다. 보리를 끓여서 발효, 증류해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보리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로도 700㎖ 몰트위스키 1병을 만드는 데 보리 1.4㎏이 들어간다. 술을 만들려고 보리 1.4㎏을 사용한다는 것은 당시로는 지나친 사치였다. 결국 영국은 16세기 후반 금주령을 내렸고, 이 조치는 1644년까지 이어졌다. 이때 스코틀랜드 정부는 위스키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즉 스카치위스키가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때는 1707년이다. 당시 해외 식민 정책을 펼쳤던 스코틀랜드는 자금 문제로 잉글랜드와 통합을 선택했다. 그 결과 스카치위스키 수요가 크게 늘었고, 양국은 증류주에 대한 과세액을 통일하는 등 관련 정책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은 크고 작은 전쟁을 많이 치르고 있던 탓에 세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맥아, 증류기, 증류액을 모두 과세 대상으로 정해버렸다.

    보리에 세금을 많이 매기다 보니 여타 잡곡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밀, 호밀, 옥수수 등으로 위스키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보리를 주재료로 하는 몰트위스키 외에도 다양한 잡곡이 들어간 그레인위스키가 등장했고, 나아가 둘을 섞은 블랜디드위스키도 탄생했다. 시바스 리갈, 조니 워커, 밸런타인, 로얄살루트 등 유명 블랜디드위스키는 여기서 기원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한 시도들이 오늘날의 위스키를 만든 셈이다.

    세금 여파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밀주가 많이 생겼고, 이는 위스키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당시 밀주업자는 다리 밑, 지하실 등 다양한 장소에 증류주를 숨겼다. 증류기의 증기는 굴뚝을 통해 몰래 내보냈고, 술을 옮길 때는 관을 사용했다. 숨겨놓은 위스키를 감추려고 겉면에 양 살충제(sheep dip)라고 써놓기도 했다. 오늘날 살충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sheep dip’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현재 동일한 이름의 위스키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기도 하다.

    위스키를 오크통에 숙성시키게 된 계기 역시 밀주 문화와 관련 있다. 세금 징수인을 피해 인적이 드문 산속에 위스키를 보관하다 보니,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오크통에 위스키를 숨겼다. 이 과정에서 동굴 속 오크통에 저장해둔 위스키를 뒤늦게 발견한 일이 있었는데, 투명했던 위스키가 호박색으로 바뀌면서 맛과 향이 부드러워졌다. 덕분에 위스키 제조업자는 숙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는 오크통 숙성 위스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주류판 뒤흔든 병충해

    프랑스 포도밭이 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에 초토화되면서 위스키가 주류 시장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GETTYIMAGES]

    프랑스 포도밭이 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에 초토화되면서 위스키가 주류 시장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GETTYIMAGES]

    당초 정부와 밀주 제조업자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정부는 위스키 제조자들에게도 가혹한 제재를 가했으며, 증류소에 갑자기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에 위스키 제조자들 역시 세무 공무원에게 술을 주고 세금을 줄이는 등 꼼수를 쓰면서 대응했다.

    정부와 위스키 제조자의 관계는 19세기 들어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1823년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영국 조지 4세가 우연찮게 위스키 밀주를 마셨는데 맛이 무척 좋아 위스키 제조 관련 규제를 낮춘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 증류소다. 이처럼 최초로 면허를 취득한 합법적인 위스키 증류소도 불과 2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정부 도움에도 위스키는 주류 시장에서 중심부로 도약하지 못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 위스키의 운명이 뒤바뀐다. 위스키의 라이벌로 꼽히는 코냑이 생산 문제를 겪게 된 것이다. 1863년 유럽에서는 포도나무 해충인 필록세라가 발견됐는데, 이 해충은 프랑스 포도밭의 75%를 파괴해 프랑스 포도의 씨를 말려버렸다. 필록세라 여파로 와인은 물론, 와인을 증류한 코냑 산업 역시 위기를 맞았다.

    애당초 와인과 코냑의 원재료인 포도는 저장성이 좋지 않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수확 후 특정 시기 안에 술로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를 지녔다. 보리 같은 곡물은 저장성이 좋았고,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술을 만들 수 있었다. 와인은 포도로만 제조하지만, 위스키는 보리 외에 밀과 쌀, 감자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해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결국 포도밭이 병충해로 휘청거리면서 코냑 산업이 흔들렸고, 동시에 위스키가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