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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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CES에서 엔비디아가 픽한 국내 스타트업 ‘에이로봇’

아모레퍼시픽·HD현대중공업 등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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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6-01-28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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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로봇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4’(왼쪽)와 ‘앨리스 M1’이 1월 16일 경기 안산에 있는 에이로봇 사무실에서 물통과 상자를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이상윤

    에이로봇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4’(왼쪽)와 ‘앨리스 M1’이 1월 16일 경기 안산에 있는 에이로봇 사무실에서 물통과 상자를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이상윤

    “2024년 CES(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전시회)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을 하는 동안 황 CEO 뒤로 보이는 화면에 휴머노이드 로봇 9대가 떴다. 2025년 CES 기조연설에는 15대가 나타났다. 2년 연속 국내 기업이 만든 로봇은 단 1대도 없었다. 이때부터 내 목표는 우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를 황 CEO 기조연설에 세우는 것이었다. 올해 이 꿈이 이뤄졌다.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좋다.”

    1월 16일 경기 안산 에이로봇(AeiROBOT) 사무실에서 만난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가 황 CEO의 ‘CES 2026’ 기조연설에서 소개된 것에 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황 CEO는 1월 5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조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Isaac)’과 파운데이션 모델 ‘그루트(GRooT)’를 활용한 로봇들이 담긴 영상을 상영했다. 현대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등이 포함된 가운데 앨리스는 두 발로 좁은 공간에 들어가 선박을 용접하는 모습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립스틱도 인식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에이로봇과 엔비디아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5월 대만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에 에이로봇을 초청했다. 엔비디아 공식 발표 자료에서 에이로봇을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그루트’ 우수 활용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GTC에서 전 세계 16개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을 선정해 별도 로봇 전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에이로봇이 유일한 한국 기업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InnoVEX 2025 피치 콘테스트 엔비디아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에이로봇은 2018년 설립돼 지난해 7월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회사다. 2028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두 다리 대신 바퀴로 움직이는 세미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M1’을 아모레퍼시픽, HL만도, SK텔레콤 등 산업 현장에 투입해 ‘개념 실증’(Proof of Concept·PoC)을 진행했다. PoC란 신제품이 현장에서 실제로 쓰일 것인지 판단하는 단계로, 실용성이 확인되면 본격적인 제품 공급이 시작된다.



    아모레퍼시픽은 PoC 일환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온 화장품을 집어 들어 상자 안에 넣는 작업에 앨리스 M1을 투입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5개 달린 로봇을 썼으나 손가락 3개짜리면 충분하다는 피드백을 에이로봇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화장품 시장 특성상 로봇이 집어야 할 상품 모양은 계속 변한다. 앨리스는 엔비디아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그루트를 적용한 덕에 처음 보는 모양의 화장품도 어느 제품인지 대략 추론할 수 있다. 앨리스가 인식해야 할 물건이 새로 생길 때마다 매번 관련 데이터를 학습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이로봇 연구원은 “사람이 패키지가 새로운 립스틱을 봐도 적당한 길이의 막대 모양을 갖추고 있다면 이것도 립스틱이겠거니 유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에이로봇은 조선과 건설 현장에 특화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목표로 하는 정부 사업 ‘맥스’(M.AX·Manufacturing AX) 수주에도 성공했다. 올해부터 앨리스 M1을 비롯해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4’,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앨리스 5’에 대한 PoC를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에서 본격화할 예정이다. 화재 감시 및 진압 등 비교적 쉬운 작업부터 용접처럼 고난도 공정까지 다양한 작업 현장에 투입된다.

    이미 국내 조선소에는 사람 대신 용접을 하는 로봇이 도입돼 있다. 이들 로봇은 AI 학습과 추론이 아닌, 교시 기반 로봇이다. 사람이 지정한 경로대로만 움직이는 것이다. 용접 경로가 정해진 교시 기반 로봇은 용접이 어느 정도 돼 있는지와 상관없이 항상 시작점과 끝점을 잇는다. 하지만 AI가 적용된 앨리스는 본체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지점까지 용접이 끝났는지 확인하고 그 지점부터 용접을 시작할 수 있다. 또 기존에는 작업 장소로 사람이 로봇을 옮겨놔야 했지만 앨리스는 “3번 독(Dock)에 있는 2번 작업대에 가서 용접 작업을 마무리하고 와”라는 명령을 받으면 2번 작업대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스스로 유추해낸다.

    VR 기기만 착용하면 로봇 학습 가능

    1월 16일 경기 안산 에이로봇 사무실에서 진행된 ‘앨리스 M1’과 ‘앨리스 4’의 시연 영상 바로가기.

    1월 16일 경기 안산 에이로봇 사무실에서 진행된 ‘앨리스 M1’과 ‘앨리스 4’의 시연 영상 바로가기.

    기자는 1월 16일 에이로봇 사무실에서 앨리스 M1과 앨리스 4의 시연을 직접 봤다. 앨리스 M1이 물통이 든 상자를 선반에서 꺼내 앨리스 4에게 전달하면 앨리스 4는 전달받은 물통을 다른 상자로 옮겨 담았다(QR 참조). 앨리스 4는 가만히 있다가 앨리스 M1이 상자를 앞에 가져다 두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앨리스 4가 정해진 시각에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설정된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찍은 비전(vision)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자를 스스로 인식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앨리스 M1 역시 비전 데이터를 사용해 선반에 상자가 삐뚤게 놓여 있음을 확인하고 삐뚤어진 각도만큼 스스로 몸을 돌려 선반으로 다가갔다.

    앨리스를 학습시키려면 가상현실(VR) 기기 1대와 에이로봇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만 있으면 된다. 사람이 VR 기기를 쓰고 물통을 쳐다보면서 한 상자에서 다른 상자로 옮기는 행동을 수행하면 앨리스가 VR 기기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보고 사람의 손동작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학습이 이뤄진다. 사람 손이나 팔에 별다른 기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대규모 통신장비를 설치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산업 현장에서 학습 데이터를 얻기가 훨씬 수월하다. 앨리스를 투입하고자 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VR 기기를 착용한 상태로 작업을 수행하기만 하면 학습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다.

    에이로봇은 앨리스 M1 가격을 6000만 원 중반대로 책정했다. 6 자유도를 가진 로봇 손 한 쌍과 엔비디아 내장 컴퓨터 ‘AGX 오린(Orin)’이 포함된 가격이다. 앨리스 4는 7000만 원 정도다. 휴머노이드 로봇 가격을 1억 원 밑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 국내 기업은 아직 에이로봇을 포함해 2곳뿐이다. 엄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평균 월급이 월 270만 원이고, 앨리스 가격은 외국인 근로자 2년 치 연봉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내년부터 앨리스 판매를 통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하는 게 로봇의 존재 목적”
    엄윤설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은 올 수밖에 없는 미래”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홍태식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홍태식 

    영어로 ‘로봇 1대’를 뜻하는 회사 이름 ‘에이로봇’은 “로봇 1대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내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인간 신체에 맞춰 모든 물건이 디자인된 세상에서 인간의 일을 대신할 로봇은 인간 모양을 한 휴머노이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회사 설립 때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목표로 했다.

    학사 전공이 공예다.

    “과거에는 일찍부터 로봇공학을 공부하지 않은 게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을 전공한 게 강점이라고 느낀다. 로봇도 결국 상품이다. 사람들 마음에 들어야 팔린다. 순수미술을 하면서 작품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고 내 의도를 전달하는 법을 익혔다. 이 경험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로봇을 만드는 데 경쟁력이 됐다.”

    이제 막 열리려는 시장에서 스타트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은.

    “2028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용화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3년에 재난 현장처럼 조성된 환경에서 로봇이 과제를 수행하는 ‘로보틱스 챌린지’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로봇들이 3대 정도만 제외하고 모두 휴머노이드형이었다. 그런데 DARPA가 손대는 기술은 약 15년 뒤 상용화되는 역사가 반복됐다. 196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달 착륙에 최초로 성공하기 전 1950년대부터 DARPA가 NASA에 자금을 댔다. 인터넷도 1990년대 중후반 상용화되기 전 1980년대에 DARPA가 인터넷 전신 ‘알파넷’을 만들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인당 1대씩 도입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영화 ‘로봇 앤 프랭크’에 치매 노인을 24시간 보조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온다.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2035년 전후로 일반 가정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널리 쓰이게 될 것이라고 본다. 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로봇을 사적인 공간에 들여놓는다는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이 깨지는 데 일정 시간이 필요해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

    “로봇도 기계라 항상 오작동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작동을 관리하는 수단은 기술이 아니라 법과 제도다. 자동차도 급발진이 생기고 이 경우 보험 처리한다. 로봇이 빨래하다가 세탁기를 고장 내면 보험 청구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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