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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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기조연설로 투자자 실망시킨 젠슨 황

‘블랙웰’ 잇는 차세대 AI 칩 ‘루빈’ 언급 전무… 엔비디아 주가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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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5-01-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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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젠슨 황의 입’이었다. 2017년, 2019년 이후 6년 만에 CES 연단에 오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과 관련해 어떤 혁신적인 구상을 내놓을지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장장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기조연설에 대한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여러 신기술을 공개하며 장기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당장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 등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엔비디아 주가는 1월 7일(현지 시간) 153.13달러로 신고가를 기록한 뒤 8% 넘는 하락폭을 나타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힘을 싣는 황 CEO의 발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도 출렁였다.

    “이게 바로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차세대 제품군 ‘지포스 RTX 50 시리즈’(RTX 50)입니다. 이 GPU는 그야말로 괴물입니다. 920억 개 트랜지스터, 4000테라플롭(초당 4000조 개 신경망 연산), 4페타플롭(초당 4000조 번 부동소수점 연산)의 AI 성능을 자랑합니다. 전작인 에이다 기반 제품군(RTX 40 시리즈) 대비 3배 향상된 성능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CES 2025’ 기조 연설에서 블랙웰 기반 ‘지포스 RTX 50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GettyImages]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CES 2025’ 기조 연설에서 블랙웰 기반 ‘지포스 RTX 50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GettyImages]

    젠슨 황 “AI 대중화 이끌겠다”

    황 CEO는 기조연설 초반 상당 시간을 RTX 50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RTX 50은 엔비디아가 새롭게 선보이는 PC용 GPU로, 최신 AI 칩 블랙웰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상위 모델 순서대로 RTX 5090·5080·5070 Ti·5070으로 구분되며, 이 중 RTX 5070 가격은 전작 같은 급 모델(RTX 4090 1599달러)의 3분의 1 수준인 549달러(약 80만 원)다. 가격 장벽을 낮춰 AI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황 CEO는 “AI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지포스가 AI를 전 세계에 선보이고 대중화했는데, 이제 다시 AI가 지포스를 혁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연설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AI 대중화’였다. 황 CEO는 로봇·자율주행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하며 “AI의 다음 개척지는 물리적 AI”라고 말했다. 코스모스는 가상현실에 다양한 상황 시나리오를 생성한 뒤, 로봇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에 반복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플랫폼이다. 통상 오랜 시간이 걸리는 로봇 훈련 과정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GPT로 대표되는 AI 언어모델의 ‘문장 생성’을 넘어 물리적 역학을 이해하고 ‘행동’을 수행하는 AI 로봇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밖에 황 CEO는 개인용 AI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디지츠’도 공개했다. 지금까지 AI 개발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빅테크의 영역이었으나, 앞으로는 이들이 가진 슈퍼컴퓨터를 AI 연구자나 학생 등 개인이 책상에 올려놓고 쓸 수 있을 정도로 경량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메모리에 악재성 발언도

    다만 이 같은 황 CEO 연설은 미래에 방점을 뒀고, 현안 비중은 적었다. 당초 블랙웰 뒤를 이을 차세대 AI 칩 루빈에 대한 소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아무런 언급이 없자 “루빈 출시가 2026년이 아닌 2025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그간의 소문도 없던 일이 됐다. 이와 관련해 코디 애크리 벤치마크리서치 애널리스트는 “황 CEO의 연설은 다소 심심했다”며 “예상대로 AI 산업 현황과 방향성에 대해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흥미로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을 여럿 발표했지만 많은 투자자는 블랙웰과 루빈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더 기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 CEO의 기조연설은 한국 메모리 기업 주가를 급락시키는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RTX 50에 마이크론 메모리가 탑재된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밝혔다. 이후 기자간담회에서는 한국 메모리 기업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래픽 D램(GDDR)을 만드느냐”고 반문해 파장을 낳았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의식” “팀 아메리카 동맹 강화” 등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고, 1월 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하락 전환했다. 그러다 1월 8일(현지 시간) 황 CEO가 공식 입장을 통해 “RTX 50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메모리도 사용된다”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날 황 CEO를 만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GPU에 어떤 회사 칩이 들어가는지 그 디테일까지 황 CEO가 외울 수는 없다”며 “나도 우리 제품에 어떤 솔루션을 쓰는지 전부 알지 못한다”고 두둔했다.

    이와 관련해 이주완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는 “CES가 민감한 얘기를 나누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잘 넘어갔지만, 세계 최초로 GDDR7을 개발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분명 뼈아픈 대목”이라며 “황 CEO가 공개 석상에서 마이크론을 콕 짚어 언급한 것은 마이크론 GDDR7 성능이 확인됐기 때문일 테고, 이후에도 삼성전자 GDDR7이 들어간다고 했지 가장 고사양 모델에 들어간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결함이 설계에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점,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등 삼성 쪽 인물을 전혀 안 만나고 있다는 점 등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이지 않다”면서 “SK하이닉스의 경우도 HBM 이외에 SKC 유리기판 탑재 등은 황 CEO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었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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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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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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