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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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몰락

단기 성과 집착하며 R&D 인력 대량 해고 후 경쟁력 추락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4-10-1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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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인텔은 최고 기술 기업이었다. ‘Intel Inside’라는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인텔은 PC(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다. PC 구매 시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사용 여부가 PC 품질을 보증하는 지표로 여겨질 정도였다. 실제로 1990년대 인텔은 PC용 CPU 시장에서 90% 이상 점유율을 기록했고, 1997년에는 연간 매출 250억 달러(약 33조6000억 원) 이상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텔은 모든 사업 영역에서 위기를 겪으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CPU 시장에서는 AMD가 인텔 CPU와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전력 소모나 발열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CPU를 내놓으며 인텔의 주요 고객을 빼앗아갔다. 이에 줄곧 90% 이상을 차지하던 인텔의 PC용 CPU 시장점유율은 2005~2006년 80% 초반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할 때는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에도 뒤처져 퀄컴에 시장 1위를 내줬다.

    인텔은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도 실패하면서 반도체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프로세서 판매 부진에 더해 삼성전자와 TSMC가 성장함에 따라 2021년부터 파운드리 사업에서 매년 50억 달러(약 6조7200억 원)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2023년에는 영업손실이 70억 달러(약 9조4000억 원)까지 커졌으며 올해 상반기 누적 적자는 53억 달러에 달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해 독립성을 강화하고 구글과 아마존은 물론 엔비디아, AMD의 칩셋을 생산하겠다고 나섰다. 50년 넘게 내부 조직으로 뒀던 파운드리 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한 것은 그만큼 파운드리 사업 부진이 인텔 실적에 끼치는 악영향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68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미국 인텔 본사. [뉴시스]

    1968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미국 인텔 본사. [뉴시스]

    CPU만 집중하다 AI 혁신 기회 놓쳐

    인텔이 겪는 위기의 근원으로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는 AI(인공지능)를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AI 기술은 인텔 같은 전통 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AI의 성장을 발판 삼아 고도로 성장 중인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이 엔비디아와 TSMC, SK하이닉스다. 엔비디아는 본래 그래픽카드로 사용되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AI 연산 처리의 핵심 칩으로 발전시켜 AI 시장의 주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통해 AI 칩의 파운드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 증가를 기회로 삼아 HBM(고대역폭메모리) 개발에 집중해 AI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다. 반면 인텔은 AI 칩셋 시장에 경쟁 기업보다 한발 늦게 뛰어들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GPU가 AI 모델 구축과 훈련에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인텔은 오랫동안 CPU 중심의 전략을 고수했다. 뒤늦게 AI 시장에서 입지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사들과 격차를 좁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0월 주가 2020년 초 대비 70% 하락

    10월 첫째 주 기준 인텔 주가는 22달러(약 3만 원)대로, 최고점이던 2020년 초 대비 70% 가까이 하락했다. 최근에는 인텔이 퀄컴에 인수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두 회사의 전략적 초점이 달라 합병이 현실화되더라도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지만, 인텔과 퀄컴의 합병 관련 풍문은 인텔 위상이 그만큼 추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인텔의 몰락 과정은 급변하는 시장에서 기술 혁신을 지속하지 못하고 기존 경쟁력에 안주하는 기업이 얼마나 쉽게 쇠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텔이 기술 혁신에 뒤처진 주된 이유는 2010년부터 연구개발(R&D) 인력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해 경쟁사로 핵심 인력들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2013년 수장 자리에 앉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서 2016년 인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여 명을 해고했다. 이때 인텔을 떠난 R&D 인력이 경쟁사인 AMD 등으로 이직하자 인텔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했다. 보수적 경영과 잘못된 투자 결정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시장 주도권을 경쟁자들에게 내준 노키아, 코닥, 블랙베리, GE 같은 기업과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텔의 추락은 장기적 성공을 위해 기업이 기술과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하게 한다. AI 혁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들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기술적 역량을 키워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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