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5

..

돈이 좋아 자기 피 파는 사람은 없다

[돈의 심리] 생명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존재하지만 돈이 부족한 게 근본 문제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4-09-01 09:00:0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게는 또 다른 베스트셀러가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샌델은 돈으로 거래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거래되는 현대 사회의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한다. 도덕, 사회정의, 시민의 덕성, 사람의 생명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경제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이런 분야는 시장경제와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돈으로 거래하면 안 되는데 실제 돈으로 거래되는 것들로 제시한 사례를 살펴보자.

    북극 원주민들이 그들만의 권리인 바다코끼리 사냥권을 사냥꾼들에게 돈을 받고 팔고 있다. [GETTYIMAGES]

    북극 원주민들이 그들만의 권리인 바다코끼리 사냥권을 사냥꾼들에게 돈을 받고 팔고 있다. [GETTYIMAGES]

    죄수도 돈 더 내면 좋은 감방으로 옮길 수 있어

    ①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응급환자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는 예약 순서에 따라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 더 빨리 진료해주는 시스템이 발달하고 있다. 전담의사제를 마련해 두고 고액을 지불한 고객은 최우선적으로 진료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은행, 항공사 등도 우수 고객에게 별도의 콜센터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정성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돈으로 순서를 살 수 있다.

    ② 일부 미국 교도소에서는 수감자가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더 깨끗하고 조용한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공공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경찰차가 상업광고를 단 채 운행되기도 한다. 사회정의를 담당하는 사법 분야도 돈의 영향을 받고 있다.

    ③ 검은코뿔소는 멸종위기 보호종이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5만 달러(약 2억 원)에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판다. 목장 주인이 검은코뿔소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몇 마리를 희생하면 그 돈으로 다른 검은코뿔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또 북극 지방에서 바다코끼리는 원주민인 이누이트(에스키모)만 사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누이트들이 6000달러(약 800만 원)에 바다코끼리를 사냥할 권리를 사냥꾼에게 팔고 있다.

    ④ 사람의 생명과 신체는 돈으로 거래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 임신하는 대리모임신, 피나 신장 등 장기를 판매하는 행위다. 또 사람의 몸에 문신을 새겨 광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생명이 상업화되고 있다.

    샌델의 말이 옳다. 교도소에서 돈을 내면 업그레이드 된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멸종위기종으로 보호 대상인 검은코뿔소, 바다코끼리를 돈을 받고 사냥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신체 거래는 말할 것도 없다. 이것들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이런 일들에는 시장경제가 적용되지 말아야 하고, 돈으로 거래하는 건 절대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여기서 문제라고 하는 것 대부분이 사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정부나 사회가 돈을 들이려 하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병원 예약 후에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종합병원은 몇 개월 후에나 예약이 가능한 경우가 다반사다. 전문의는 한정적인데 환자가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건 종합병원을 늘리고 병실, 수술실을 늘리고 전문의를 늘리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단, 일반병원과 의원은 증가하지만 상급종합병원과 전문의는 늘지 않는다. 수가가 낮고 수익성도 낮으며 투자 자본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 상관하지 말고 돈을 많이 쏟아부으면 해결될 문제다. 일반 콜센터도 응답 직원을 크게 늘리면 오래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려고 응답 직원을 충분히 두지 않아서 오래 기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애초에 돈을 많이 투입하면 좀 더 빠른 서비스를 받으려고 돈으로 순서를 살 필요도 없다.

    돈 만능주의 사회 문제점

    교도소에 있는 죄수가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건 분명 이상하다. 애초에 모든 감방을 다 쾌적하고 좋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전부 다 좋은 감방으로 만들 돈은 없고, 그래서 몇몇 감방만 좋게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경찰차에 상업광고를 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강한 경찰이 자기 차에 상업광고를 다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경찰에 돈이 없다 보니 상업광고를 부착해서라도 운영비를 마련하려 하는 것이다. 애초에 정부와 시민사회가 경찰에 충분한 돈을 줬다면 경찰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멸종위기 보호종인 검은코뿔소 사냥권을 돈을 받고 파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목장 주인이 검은코뿔소들을 먹여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 아닌가. 동물보호를 외치는 단체나 정부가 그 돈을 충분히 줬다면 검은코뿔소 사냥권을 돈 받고 판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냥권이 시장에 나왔을 때 정부나 동물보호단체가 15만 달러를 주고 그 사냥권을 샀다면 검은코뿔소가 사냥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돈보다 중요한 동물보호에 돈을 아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누이트의 바다코끼리 사냥권 판매도 마찬가지다. 이건 이누이트에게 바다코끼리만 먹고살라고 해서 발생한 일이다. 이누이트는 다른 것도 먹고 싶은데, 다른 걸 사서 먹을 만한 돈이 없다. 그러니 바다코끼리 사냥권을 팔아서 다른 걸 사려고 했다. 애초에 다른 걸 먹고살 돈이 충분했다면 바다코끼리 사냥권을 팔려고 안 했을 것이다. 돈을 벌려고 대리모가 되거나 피를 파는 건 분명 부도덕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리모가 되고, 피나 신장을 파는 게 돈을 중요시해서라며 비판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돈만 최고로 알아서 자기 신체 일부를 판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자기 신체를 파는 게 돈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일까.

    자기 피보다 돈을 더 좋아해서 피를 팔고, 그렇게 번 돈을 쌓아놓은 채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대리모가 그 돈을 받아 통장에 넣어두고, 큰 금액이 찍힌 통장을 들여다보며 좋아하나. 신장을 판 사람이 돈을 쌓아둔 채 그것을 즐기나. 그렇다면 분명 자신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장경제의 폐해이고, 돈 만능주의 사회의 문제점이다. 하지만 자기 신체를 팔아 돈을 번 사람이 돈을 쌓아두는 경우는 없다. 신체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은 돈 자체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 돈으로 자기 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 허삼관은 몇 번이나 자기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피를 판 이유는 돈이 좋아서, 돈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대흉년이 들었을 때 가족을 먹여 살릴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첫째 아들이 큰 병에 걸렸는데 그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서, 둘째 아들이 군대에 끌려갔는데 군대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피를 팔았다. 피냐 돈이냐가 아니다. 자기 피냐, 가족의 생명이냐의 문제다. 돈만을 목표로 자기 몸을 팔려는 사람은 없다. 자기 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위해 몸을 파는 것이다.

    결국 시스템 문제

    그리고 애초에 돈이 충분히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 몸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돈이 없고 다른 방법으로는 돈을 구할 수가 없어서 자기 몸을 판다. 지원이 충분하다면 몸을 파는 시장 자체가 만들어질 리 없다. 신체가 돈으로 거래될 수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외 다른 방법으로는 돈을 구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게 문제다.

    샌델은 도덕, 사회정의, 시민의 덕성, 사람의 생명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돈으로 사고파는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이 주장은 맞다. 어느 누구도 이런 분야에서 뭔가가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부분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문제가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나오는 문제는 사실 돈이 충분하면 아예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들이다. 이걸 보고 “돈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는 식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돈의 심리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