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광양제철소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전지판.
시장경제하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시장경제원리를 지구온난화 및 환경오염 방지에 반영한 것이 바로 배출권거래제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05년부터 현존 세계 최대 규모의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며, 비용 면에서 효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하고 있다. 기업 총배출량에 상한선을 두고, 배출상한치를 초과한 기업과 하회한 기업 간 배출권거래를 허용함으로써 상황에 맞게 최소 비용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 전체 환경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EU는 배출권거래제 체제 2차 거래기간(2008~2012년)의 배출총량을 1차 거래기간(2005~2007년) 대비 약 6.5% 줄였다. 3차 거래기간(2013~2020년)의 배출총량 역시 매년 1.74%씩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국가와 기업이 장기적인 감량계획을 세웠다. 이대로라면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1%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온실가스배출권 가격 급락
그러나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에 유럽 재정위기가 더해지면서 거래가격 폭락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시장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2005년 시작한 EU 배출권시장은 탄소저감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적정선인 15유로 이상을 유지했으나,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배출권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유럽국가 간 거래단위인 EUA(European Union Allowance) 가격이 2013년 2월 현재 4유로 정도다. 그 결과 녹색산업이 위축되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수요도 급감했다.
배출권시장 가격 추락은 녹색산업과 더불어 녹색경제로 가는 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카타르에서 열린 제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청정개발체제) 시장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안건을 제기했다. 2월부터 EU 등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항공 및 선박의 국제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며, 중국과 한국 등 개발도상국의 CER(Certified Emission Reduction·탄소배출권) 사용을 허용해 단계적으로 CDM 시장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EU의 배출권 할당과 세부 운영을 국가별로 분산 관리해왔으나, 제3차 거래기간부터는 EU 차원의 통합체계로 전환해 일관성, 투명성, 효율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녹색산업은 세상을 바꿀 ‘제4 물결’이다. 2020년이면 3조1000억 달러에 달하는 녹색산업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많은 나라가 녹색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시장 선점을 위해 사활을 건다. 특히 태양광, 조력, 지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2004~2009년 5년간 연평균 28.2% 성장했으며, 2020년에는 시장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규모다.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유럽에 재정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전 세계 시장은 2011년 이후 급격한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발표한 ‘2012 세계에너지전망’ 보고서는 신재생에너지가 2035년 전 세계 발전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녹색산업,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제4 물결’을 일으킬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가능성은 분명히 열려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녹색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많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특히 태양광산업) 등 녹색산업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하지만 유럽 경제위기와 산업 예측 부족으로 결과는 초라했다. 기대만 갖고 뛰어든 세계 시장은 냉정했다. 경기불황과 재정결손으로 많은 기업이 시장에서 하나둘 철수했다. 태양광산업 시장은 특히 처참하다.
이명박 정부는 태양광산업을 제2 반도체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태양광 붐’이 조성되고 과감한 투자를 진행한 기업에는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그렇게 잘나가던 태양광산업이 지금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폴리실리콘 업체 가운데 국내 1위인 OCI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곳이 없다. 태양광산업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 산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경제위기에 따른 수요와 공급 불균형으로 가격 추락 등이 잇따르고 산업 예측 및 대응 부재로 몸살을 앓는 실정이다.
녹색산업 핵심인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정책과 맞물려 있다. 저탄소산업이 지금은 유럽 재정위기 등 뜻하지 않은 걸림돌을 만나 고전하지만, 기후변화 대응 등 명분은 충분한 만큼 미래가 보장된 산업인 것이다.
녹색금융 육성 정책 시급
2012년 5월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17차 녹색성장위원회’에 참석해 안건보고를 듣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 확보다. 지난해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시장을 만들어가는 자립형 산업구조를 유도한다는 취지였으나 아직 경제성이 떨어지고 정부의 보급 확대가 저조해 걸음마 수준이다. 중국의 막대한 공세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품수출을 지양하면서 부가가치가 높고 파급 효과가 큰 시스템 수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내수 기반을 튼튼히 조성해야 한다.
초토화한 국내 신재생에너지산업을 회생시키는 수단으로 녹색금융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2015년부터 국내에도 탄소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되는 만큼, 에너지 다소비 기업은 생존을 위한 탄소자산관리 측면에서 녹색금융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녹색산업과 연관되는 녹색금융을 육성할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견실한 녹색산업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경제 상황에서 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도록, 배출권거래 참여자를 확대하는 계획과 함께 일련의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는 녹색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과거 잘못된 관행과 정책을 버리고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녹색산업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