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노인단체 회원들이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계획하는 기초노령연금 안은 이렇다. 소득하위 70% 노인 가운데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20만 원을 받고, 국민연금에 가입한 경우 14만~20만 원을 차등적으로 받는다. 또한 소득상위 30% 노인 가운데 국민연금을 받지 않는 노인은 4만 원을 받고,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은 4만~10만 원을 받는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따로 운영하면 이 같은 연금 제공은 불가능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통합으로 실익을 찾기가 어렵다. 두 연금은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기초노령연금은 국가 예산에서 재원을 마련하고, 국민연금은 연금보험료로 재원을 마련한다. 재원 마련 방식이 다른데 무리하게 통합하면 혼선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재원을 전용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두 연금을 한 지붕 아래서 관리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언제든 깨질 수도 있다.
두 연금은 원칙적으로 그 급여 대상이 달라 통합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초노령연금은 전 국민 대상이 아니다. 소득 수준이 낮아 국민연금조차 가입할 수 없거나, 국민연금을 받아도 연금액이 낮아 그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빈곤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연금이다.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의 낮은 급여 수준을 보완하려는 보충적 연금이란 뜻이다. 예컨대, 국민연금 가입자 중에서도 월 23만 원밖에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생계비에 보태서 쓰게 한 연금이 기초노령연금이다.
원칙적으로 급여 대상도 달라
물론 기초노령연금 도입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노무현 정부 당시 ‘많이 내고 적게 받는 방식’으로 개혁됐다. 개혁 이전에는 연금보험료 불입 기간이 40년이고 소득 등급이 가장 높은 45등급인 가입자의 연금액은 월 150만 원 수준이었는데, 개혁 후에는 월 115만 원으로 낮아졌다. 이걸 보충하려는 장치가 기초노령연금이었다. 당시 빈곤층과 저소득층의 기초생계를 지원하는 연금으로 그 용처를 제한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도 그들의 기초생계가 유지되는 수준으로 연금액을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이것이 연금제도 원칙이다.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에서 놓친 것은 국민연금 등급 조정이었다. 이것은 중대한 실책이었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기능도 충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소득 수준을 현재 최저 1등급에서 최고 46등급으로 나눈 후 보험료를 징수하고 연금을 주는 구조로 설계했다. 현재 불합리하게도 최저 1등급 소득 수준은 23만 원이고, 46등급 소득 수준은 389만 원이다. 월소득이 389만 원 이상이면 국민연금 등급이 같다. 따라서 대기업 과장과 재벌총수 소득을 같은 선상에 놓고 연금보험료를 징수하고, 같은 수준의 연금급여를 준다. 이것이 현행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국민연금 등급체계는 1988년 출범 당시 최저 1등급 소득이 22만 원, 최고 45등급 소득이 360만 원이었다. 등급체계를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하는데도 20년이 넘도록 방치했다가 2010년에야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물가상승 반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2012년 하한액은 22만 원에서 23만 원으로, 상한액은 389만 원으로 조정하는 데 그쳤다. 이명박 정부는 그나마 20년간 방치해둔 등급 조정 길을 트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2013년까지 최저등급을 45만 원, 최고등급을 460만 원으로 상향조정하기로 해놓고 지키지 않고 떠났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등급 조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치겠다니 이해할 수 없다. 통합에 앞서 국민연금 손질이 먼저인데도 말이다.
1988년 출범 당시 최저 10분위 소득은 31만 원, 최고 10분위 소득은 208만 원 정도였다. 당시 국민연금의 최저 1등급 소득 22만 원과 최고 45등급 소득 360만 원은 그때의 10분위 소득 분포를 반영한 등급체계였다. 따라서 사회보험으로서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2012년 우리나라 최저 10분위 소득은 80만 원이 넘고, 최고 10분위는 870만 원 정도다.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려면 국민연금 등급체계에서 하한액과 상한액도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 정책의 원칙이다.
이 국민연금의 등급체계 조정에 대해 ‘진보 정부’라던 노무현 정부는 침묵했고, ‘보수 정부’라던 이명박 정부는 문제로 인식하고 조정하려고 애쓴 흔적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대해 다시 침묵하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 등급체계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그들의 소득을 떼어서 더 낮은 소득계층에게 재분배를 강요하는 제도다. 소득 수준이 200만 원에서 389만 원인 사람에게 소득 수준이 100만 원보다 낮은 사람을 지원하도록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제도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통합이라는 형식주의에 얽매이면 국민행복시대를 열 수 없다.
연금계층을 통합하는 것은 연금개혁의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금계층의 다양화가 세계 각국 연금 개혁의 공식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통합은 거꾸로 가는 개혁이기 때문이다. 연금계층 다양화를 전제로 연금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중층연금(multi-pillar pension) 도입은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중층구조에서 기초노령연금은 빈곤층과 저소득층, 국민연금은 전 국민, 퇴직연금은 임금근로자, 그리고 개인연금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칫 ‘국민불행연금’ 될라
우리도 중층구조 틀을 갖추고 최적 운영방식을 찾는 과제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최적 운영방식 탐색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에 다시 틀을 흔들겠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연금개혁은 원칙에 역행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 연금 특성상 현재의 잘못으로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10년, 20년 후 문제가 된다. 보장 수준이 지나치게 높으면 그리스 같은 국가 부도사태가 발생하고, 지나치게 낮으면 1980, 90년대 남미식 ‘노인 폭동’이 터질 수 있다. 우리나라 국가부채도 한계 상황이다. 공기업 부채 464조 원, 지방정부 부채 18조 원, 그리고 중앙정부 부채 774조 원을 합치면 총 1256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00% 수준이다.
지금은 국가부채를 늘이지 않고 복지를 확대하는 묘수를 찾을 때다. 그 묘수 가운데 하나가 중층연금구조다. 국가와 개인이 미래 세대 노후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지는 제도이고,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사적연금인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으로부터 조성한 기금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처럼 급하지 않은데도 공적연금을 건드려 국가 부담을 늘린다면 미래 세대에 부담만 안겨줄 뿐이다.
연금정책은 역사 심판을 받는다. 20년 뒤 국민행복연금이 ‘국민불행연금’이었다는 역사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더 신중하고 절제된 개혁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