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위)과 노원구 상계동 일대 아파트 단지. [뉴스1]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지호영 기자]
“처음부터 아무 조치 말지…”
실거주 2년 요건 철회 후 시장 반응은?“규제가 법제화되면 아파트 단지 재건축은 대부분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실거주자 비율이 30%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실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대로 현금 청산당할 것이 뻔한데 누가 조합 설립에 찬성하겠나. 1년 동안 말도 많고 탈만 많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는 편이 좋을 뻔했다. 규제 일변도이던 정부가 한 발 물러서자 시장은 호재로 받아들인다. 규제 사정권에서 벗어난 30년 이상 재건축 단지 가격대가 심상찮다.”
전세 물량도 늘었다고.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워낙 낡아 전세가가 낮은 편이었다. 집주인의 보유 목적도 높은 임대 수익이 아니라 향후 재건축을 통한 가치 상승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임대료를 무리하게 높일 필요가 없다. 2년 실거주 요건 법제화가 예고되자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정말 재산이 많은 경우 전입신고만 한 채 입주하지 않은 집주인도 있었다. 이게 무슨 자원 낭비인가. 법제화를 철회하자 강남권 중심으로 전세 물량이 제법 나오고 전세가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규제 순기능은 없었을까.
“순기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정책에서 실거주 여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본래 살던 주민이 아닌 투자자를 모두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규제는 주택 공급, 특히 전세 물량 확보 차원에서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재건축 지역은?
“강남은 어찌됐든 강남이다. 강남권에 살거나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지 않겠나. 20억~30억 원가량 되는 매입자금도 있는데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은 당연히 있다. 실거주 못 할 이유가 없으니 장기적 관점에서 재건축 단지에 주목하는 이가 여전히 많다. 강북으로 눈을 돌리면 양천구 목동이나 노원구 상계동·중계동 등 노후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이 규제 완화 수혜지역이다.”
“산 넘어도 산”
자세히 설명해달라.
“공인중개사나 부동산 전문가는 대부분 재건축 리스크를 제대로 짚어주지 않는다. 그 탓에 상당수가 ‘1차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된다’며 여러 재건축 단지를 투자 물망에 올리는데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2차 안전진단은 몹시 까다롭다. 재건축 전망이 좋은 곳도 정비 절차가 시작돼 입주까지 넉넉히 잡아 15년가량 걸린다는 생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런 배경을 무시한 ‘묻지 마’ 식 투자는 금물이다.”
2차 안전진단이 까다로운 이유는?
“2차 안전진단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안전관리원이 전담한다. 각각 기타공공기관, 준정부기관이라 정부 입김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 ‘재건축할 정도로 아파트 안전성이 낮지 않다’고 결론 내리기 쉽지 않겠나. 국토교통부(국토부) 고시(告示)에 따라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의 항목별 배점 비율이 정해져 있는데, 건물 내구력을 평가하는 구조안전성(50%) 비율이 가장 높다(그 외 건축 마감 및 설비노후도 25%, 주거환경 15%, 비용 편익 10% 순). 이번 정부 들어 2018년 구조안전성 비율을 대폭 높였다(노무현 정부 50%, 이명박 정부 40%, 박근혜 정부 20%). ‘당장 무너지지 않으니 재건축할 필요 없다’는 식 아니겠는가. 법률이 아닌 고시이므로 국토부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지만 정권 차원에서 재건축 규제를 풀 생각이 없으니 요원하다.”
안전성이 재건축 기준이어야 하지 않나.
“아직은 안전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이 낭비일 수 있다. 다만 현 정부의 엄격한 안전진단을 ‘규제를 위한 규제’로 판단하는 이유가 있다. 1988년 내진설계 의무 적용 규정이 도입되기 전 지은 국내 건축물 절대 다수가 지진에 무방비 상태다. 1988년 이전에 지은 서울 시내 고층 아파트 단지도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아직 안전하다’는 이유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므로 정부가 재건축을 권해도 부족하다. 내진설계가 도입되지 않은 노후 아파트에서 계속 불안하게 살라는 말인가. 일부 주민은 ‘서울에 지진이 나 아파트가 무너져야 정신 차릴 것이냐’고 토로하기도 한다. 정부가 내세운 안전 기준의 모순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재건축 규제를 완화한다면 그나마 가능성 높은 곳이 내진설계 의무화 전에 지은 노후 아파트다. 이 경우 마찬가지로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중계동 부동산시장을 주시할 만하다.”
“규제 또 불발 가능성”
김 소장은 재건축·재개발시장의 또 다른 화두로 ‘전매 금지 조기화’를 꼽았다. 6월 9일 국토부와 서울시는 ‘주택정책 협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 강화 등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대책이 뼈대다. 현행 도정법 제39조(‘조합원의 자격’)에 따라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재개발 전매는 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부터 금지된다(인포그래픽 참조). 국토부와 서울시가 규제 시기를 안전진단 통과 후(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후(재개발)로 각각 앞당기겠다고 밝힌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투기세력을 배제하겠다는 취지다.이미 추진되고 있는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대상인가.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재개발 지역도 소급 적용할지가 관건이다. 물론 서울시는 소급 입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6월 24일 보도자료). 다만 ‘법령이 개정되더라도 무조건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시도지사가 기준일을 정하면 그다음 날부터 (규제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사실상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차라리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은 재건축 단지에 투자해야 하나.
“안전진단이 극히 까다로운 것을 감안하면 규제 대상이더라도 이미 통과된 곳에 주목하는 편이 낫다. 다만 국토부와 서울시는 9월 도정법을 개정해 조합원 지위 양도를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현실화할지 두고 봐야 한다. 2년 실거주 요건 법제화가 무산된 것처럼 불발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국회의 도정법 개정 결과를 보고 논해도 늦지 않다.”
재개발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당장은 제한적이다. 재개발의 경우 가장 안전한 선택은 2018년 1월 24일 이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곳이다. 그 후 신청한 지역은 현행 규제로도 전매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동대문구 이문1·3구역과 휘경3구역, 흑석3·9구역, 노량진 2·6구역 등을 주목할 수 있다. 경기도에선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광명11·12구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매거진동아 유튜브 채널에서 김제경 소장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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