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로 ‘뜨고’ 女心 잡아서 ‘날고’](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2/14/200412140500014_1.jpg)
‘아침에 일어나 ○○비누로 세수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은 다음, ○○정수기 아줌마를 기다려 필터를 갈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다, 다림질하면서 영어공부하고, ○○카드로 쇼핑하고 저녁이면 파티에 가 드라마를 연출….’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이른바 ‘이영애의 하루’다. 이영애가 출연하는 TV 광고만 모아도 너끈하게 하루 일과가 채워진다. 올 한 해 20~30대 여성들은 화면 속 이영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왜 이영애가 광고모델의 여왕이 된 것일까. 물론 미모나 깨끗한 이미지 등 이영애 개인의 장점도 적잖게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젊은 여성이 당당한 소비주체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젊은 층만이 아니다. 여성들이 궁중을 쥐고 흔드는 사극 ‘여인천하’의 시청률은 40%를 뛰어넘었으며 ‘명성황후’의 인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최소 80만원 선인 김치냉장고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인가 하면, 임금님표 쌀 등을 먹을거리에서까지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여성이 소비주체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2001년의 가장 큰 트렌드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향을 적극 반영해 ‘여성 전용’을 내세운 상품들은 올해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대표적인 상품이 여성전용 카드와 이동전화 서비스. 특히 백화점 무이자 할부와 무료 영화관람, 성형수술 할인 혜택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성별 특화카드라는 신개념을 창출한 LG 레이디카드는 단일 카드로는 처음으로 회원 수 500만명을 넘겼다.
2.밑빠진 지갑 10대를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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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터넷의 최대 화제였던 아바타(Avata)의 인기를 주도한 것도 역시 10대였다. 사이버 공간의 또 다른 분신인 아바타는 유료 서비스인데도 네티즌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바타를 판매하는 네오위즈의 ‘세이클럽’은 올 들어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인터넷에서도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10대 후반이 아바타의 주 고객층을 이뤘던 것. 시민단체들은 “10대들의 소비성향이 이미 지나친 상황에서 10대 위주 신상품 출시는 이들의 소비성향을 더욱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무튼 ‘10대는 밑 빠진 지갑’이라는 마케팅 업계의 속설을 톡톡히 증명한 한 해였다.
3. 술은 역시 섞어 마셔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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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전통주 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전통주 시장의 사각지대였던 20∼30대 젊은 층이 이 시장에 합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올해 백세주 광고 모델이 ‘성공한 40대’의 이미지를 갖는 탤런트 김상중에서 ‘발랄한 30대’ 이미지의 송강호로 교체된 것만 보더라도 전통주 선호층의 연령대가 10년쯤 미끄러져 내려온 것은 분명한 듯하다.
소주 시장에서는 두산이 녹차 성분이 든 산(山)소주를 내놓아 ‘소주냐 아니냐’는 법적 논쟁에 휘말리면서도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고, 위스키 시장에서는 발렌타인을 연상시키는 롯데의 스카치 블루가 룸살롱 마담들의 호평을 얻으면서 양주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스카치 블루 역시 발렌타인과의 라벨 표절 논란으로 분쟁에 휩싸였지만 결과는 산소주와 마찬가지로 스카치 블루의 판정승이었다. 결국 직장인들의 입맛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주류 시장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으며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 셈이다. 제조업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오십세주 열풍에서 보듯 소비자 스스로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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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라는 테마를 내세워 올 한 해 가장 재미 본 제품은 단연 자일리톨껌이다. 자일리톨은 롯데에서 내놓은 껌의 상표인 동시에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충치 예방 성분. 자일리톨껌은 달지 않고 비만의 염려가 없다는 장점을 갖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올해 무려 1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지난 1월 4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껌 시장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9월 들어 105억원의 매출로 제과 시장 전체에서 단일 품목 100억원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자일리톨이 크게 성공한 것도 따지고 보면 치아건강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업계에서는 분석한다. 세계에서 충치 발생률이 가장 낮다는 핀란드인들을 내세워 TV 광고를 펼치면서 껌이라기보다는 치아건강용품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직장인들에게 아침식사 대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생식도 건강을 주제로 한 히트상품 중 하나였다. 생식은 발아현미, 보리, 검정콩과 각종 채소류나 해조류 등을 갈아 동결 건조해 만든 것이 대부분. 깔깔한 입 속에 밥숟갈을 넣는 것보다 훨씬 먹기 간편하고 건강식이라는 점에서 주부와 직장인들에게 함께 인기를 끈 제품이다.
한편 건강에 대한 관심은 올해 마라톤 인구의 폭발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라톤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현재 국내 풀 코스 마라톤 인구는 약 2만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내년 3월 경주에서 열리는 동아국제마라톤의 경우 지난 12월10일∼11일 이틀간 참가접수를 받자 37시간 만에 무려 1만2000명이라는 기록적인 인원이 신청해 참가자 접수가 조기 마감되는 ‘사태’를 빚었다.
마라톤 열풍에는 엉뚱하게도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의 역할도 한몫 단단히 했다. 요시카 피셔 장관은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뒤 112kg이던 몸무게를 75kg으로 줄여 달리기의 위대한 효과를 입증해 보였다. 그의 달리기는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인생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와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자기 개혁의 과정이었다. 피셔 장관의 달리기 경험담을 담은 책 ‘나는 달린다’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하던 날 아침까지도 남산 순환도로를 달리던 피셔 장관의 모습은 한국 사람들에게 달리기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70년대 카터 방한 당시 불었던 조깅 바람과 맞먹는 마라톤 열풍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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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국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스몰카지노가 강원도 정선에 문을 연 이후 도박 열풍은 도를 넘어 계속 이어졌다. 정선군 고한읍 인근에는 쪽박 찬 원정 도박꾼들의 승용차를 저당 잡아 주는 전당포들이 넘쳐나고 스스로 자신의 카지노 출입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중독증 환자들마저 속출했지만 한탕 노리는 대박 행렬은 1년 내내 그칠 줄 몰랐다.
복권이나 카지노 열풍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경륜 같은 도박성 레저 역시 현실에 지친 서민들이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유혹이었다. 경륜장이 있는 올림픽공원 주변이 미어터지는 것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넥타이 맨 중년에서부터 아이 업은 가정주부까지…. 경륜장의 하루 매출액은 170억∼180억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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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의 선두주자는 플래시 에니메이션인 ‘마시마로’. ‘엽기토끼’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마시마로는 엉덩이로 복숭아를 만드는가 하면, 머리로 맥주병을 깨고 막힌 양변기를 뚫으며 달 속의 옥토끼 흉내를 내는 등 ‘일인다역’을 해내며 TV CF모델로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붙은 엽기 선풍은 올해 들어 장르를 불문하고 퍼져나갔다. 엽기만화, 엽기광고, 엽기개그, 엽기캐릭터 등 엽기의 인기를 등에 업은 상품들이 쏟아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대박을 터뜨렸고 엽기가수 싸이, 이재수, 자두 등이 히트했다.
엽기의 사전적 의미는 ‘기괴하고 이상한 일에 유난히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국어사전의 정의와 달리 기존 상식을 통쾌하게 비틀고 파괴하는 문화적 취향으로 엽기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엽기문화’는 곧 ‘B급 문화’ 또는 ‘언더 문화’인 셈이다. 엽기는 아직도 다양하고 전위적인 문화의 첨병인 동시에, 젊은 세대를 겨냥하는 마케팅 전략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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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또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이 어느 해보다 활발했다. 할리우드에서 ‘조폭 마누라’와 ‘달마야 놀자’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갔고 영화배우 박중훈이 조너선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다. 또 신은경은 한미 합작영화 ‘뷰티풀 라이프’에서 앤디 가르시아와 함께 캐스팅됐고 이 밖에 다국적 영화 10여편도 이미 제작에 들어갔다. 올해 한국 영화 수출액은 사상 처음 1000만 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문화산업이 돈 버는 효자상품이라는 사실을 영화가 증명해 준 셈이다.
반면, 작품성은 뒷전으로 돌리고 흥행 가능성만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현재의 제작 환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우리 문화는 싹쓸이 문화다. 조폭 영화가 뜨면 모두들 조폭 영화로 우르르 몰려가는 영화판이 대표적인 경우다”고 현재 상황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