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비찜, 나물, 전 등 명절 음식에 전통주 칵테일을 곁들인 상차림. 남희철 제공
쌀의 단맛, 증류주의 깔끔함
그동안 전통주는 주로 생산자 언어로 설명돼왔다. 주재료인 곡물과 누룩, 생산 지역, 도수 같은 정보들이다. 전통주의 정체성을 정리하는 데는 의미 있지만, 동시에 전통주를 ‘알아야 마실 수 있는 술’처럼 보이게 만든 측면도 있다. 괜히 잘못 골랐다간 무식해 보일 것 같은 술, 설명을 들어야만 선택할 수 있는 술. 그래서 식탁에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 소주나 맥주로 손이 간다.최근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전통주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런 전에는 이 술이 편해요.” “이 나물이랑은 이쪽이 더 잘 맞아요.” 술이 무엇인지보다, 언제 어떻게 마시면 좋은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설음식은 왜 전통주와 다시 만나야 할까. 설 상차림엔 공통점이 있다. 기름기, 발효, 간의 밀도다. 전은 바삭하지만 기름이 남고, 나물은 숙성된 풍미가 있으며, 국과 찜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무게감이 있다. 이런 음식들은 입안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필요로 한다. 설날 식탁에서는 특히 그렇다. 쌀을 기반으로 한 부드러운 단맛, 누룩에서 오는 은은한 산미, 증류주 특유의 깔끔한 마무리는 이런 상차림과 잘 맞는다. 전통주는 설음식의 결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식탁의 리듬을 완성한다.
문제는 전통주를 그대로 마셨을 때다. 도수는 애매하고, 단맛은 음식 위에서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전통주 칵테일이 해답이 된다. 약주는 그대로 마시면 단맛이 먼저 튀지만, 탄산과 시트러스를 더하면 동그랑땡이나 산적처럼 기름을 머금은 전 종류를 정리하는 술로 바뀐다. 증류식 소주는 토닉이나 허브를 만나면 갈비찜 또는 사태찜을 먹은 뒤 입안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고기의 여운은 남기고, 무게감은 덜어낸다. 탁주는 과일과 섞이면 시금치나물, 도라지무침, 냉채처럼 산뜻한 나물이나 생채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막걸리 특유의 부드러움이 과일 산미를 만나 훨씬 가벼워진다.
기름진 음식 뒤엔 전통주 칵테일
설에 전통주를 나눠 마시면 의미도 깊다. 술은 원래 식탁에서 대화를 잇는 매개체다.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관계의 긴장을 조금 낮춘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장치다.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을 식탁 한가운데 올려보자. 익숙하지만 색다른 맛에 이야기꽃도 자연스럽게 피어날 것이다.설 식탁에 어울리는 전통주 칵테일 3가지

재료(1잔 기준) 약주 60㎖, 탄산수 120㎖, 레몬 껍질 1조각
만드는 법
1 얼음을 채운 잔에 약주를 붓는다.
2 탄산수를 천천히 따라 넣는다.
3 레몬 껍질을 가볍게 짜 향만 더한 뒤 잔에 넣는다.
포인트
약주의 단맛은 줄고 산미와 청량감이 살아난다.
동그랑땡, 산적, 전류를 먹는 사이사이에 마시기 좋다.
레몬즙을 많이 넣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재료(1잔 기준) 증류식 소주 50㎖, 토닉워터 100㎖, 로즈메리 또는 타임 1줄기
만드는 법
1 얼음을 채운 잔에 증류식 소주를 붓는다.
2 토닉워터를 넣고 가볍게 한 번만 젓는다.
3 허브를 손으로 가볍게 눌러 향을 낸 뒤 넣는다.
포인트
곡물 향은 남고 알코올 무게감은 정리된다.
갈비찜, 사태찜, 떡국을 먹은 뒤에 특히 어울린다.
허브는 장식이 아니라, 향만 더하는 역할이다.

재료(1잔 기준) 탁주 120㎖, 오렌지 또는 유자 주스 60㎖
만드는 법
1 차가운 잔에 탁주를 따른다.
2 주스를 천천히 부어 자연스럽게 섞이게 한다.
3 따로 젓지 않는다.
포인트
탁주의 산미와 과일의 산뜻함이 만나 부담이 없다.
나물, 생채, 무침류와 잘 어울린다.
달게 느껴질 경우 주스 비율을 줄여 조절한다.
남희철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요리를 기준으로 콘텐츠와 공간의 감각을 설계한다. 브랜드 촬영, 매거진, 전시·팝업 현장에서 음식이 놓이는 맥락과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