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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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커 프로젝트

프랑스 절대왕정의 미학을 ‘비움’과 ‘늘임’을 통해 한국화하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 | 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 = 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사진 제공  ·  조호건축

    입력2018-03-13 1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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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선]

    [남궁선]

    •장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133길 11
    •완공 2016년 2월
    •설계 이정훈   ·   조호건축
    •수상 201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아메리칸 건축상, 2017년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서울시 건축상


    [남궁선, 조영철 기자]

    [남궁선, 조영철 기자]

    1 세 종류의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루버를 활용해 건축에 독특한 아우라를 부여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플랫폼-엘)의 외관. 
    2 1층 정문을 장식한 기하학적 패턴. 이를 좌우로 팽팽하게 늘인 것이 플램폿‚엘 외관의 패턴 장식으로 변용됐다. 


    서울 논현동 서울세관 사거리에 위치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플랫폼-엘)는 독특한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건물 외곽을 외계 생명체의 근육질 같은 물질이 휘감고 있다.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루버(louver-비늘살)다. 희석한 산액에 담근 알루미늄에 전극을 흘려보내 은회색 내지 은백색의 산화피막을 입힌 뒤 가느다랗게 두를 수 있게 한 건축 소재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서로 색이 다른 3종의 루버가 뒤엉켜 동일한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 패턴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건물의 정체부터 파악해야 한다.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2, 3층의 미술관과 지하 2층의 공연장이 결합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그러면 그 앞에 붙은 ‘플랫폼-엘’은 뭘 뜻할까.

    [조호건축]

    [조호건축]

    루이 14세의 궁정화가 이스라엘 실베스트르가 1674년 그린 ‘라톤 분수대에서 바라본 베르사유 궁’(왼쪽). 베르사유 정원 건축에 적용된 기하학 패턴을 단계적으로 변용한 과정. 맨 오른쪽이 플랫폼-엘 외관에 적용된 패턴이다. 



    [남궁선]

    [남궁선]

    [조호건축]

    [조호건축]

     [김연재]

    [김연재]

    1 내부 중정에서 바라본 플랫폼-엘. 오른쪽 1층 열린 공간은 접이식 개폐가 가능한 철문이 열린 상태다. 
    2 플랫폼-엘의 투시도. 
    3 플랫폼-엘의 2~4층 벽면의 구름 무늬. 이스라엘 실베스트르의 그림 속 구름을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패널에 타공해 새겨 넣었다. 낮에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밤에는 내부조명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피혁 전문 패션브랜드 ‘루이까또즈(Louis Quatorze)’의 알파벳 첫머리글자인 엘(L)이다. 루이까또즈는 예술과 미를 사랑하며 프랑스 전성기를 열었던 루이 14세의 프랑스 칭호를 상표화한 프랑스 브랜드다. 2006년 한국지사(태진인터내셔날)가 프랑스 본사(크레시옹 드 베르사유)를 인수하면서 한국 브랜드가 됐다. 한국과 중국에서 매출이 본사 매출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름은 가장 프랑스적인데 실소유주는 한국이라는 아이러니한 간극을 메우고자 플랫폼-엘이 탄생했다. 브랜드에 걸맞은 예술과 미의 거점공간(플랫폼)을 본사가 있는 한국에도 마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기왕이면 가장 화려한 서울 강남 한복판에 짓기를 원했다. 루이까또즈의 최대 고객인 중국 고객을 겨냥한 포석이기도 했다.

    이는 건축가에게 이중의 숙제를 안겼다. 하나는 프랑스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으로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값이 비싸 약 684.6㎡(207평)밖에 안 되는 일반주거지(건폐율 60%, 용적률 150%)에 복합문화공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플랫폼-엘 외관의 패턴은 그런 치열한 건축적 고민의 산물이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기하학과 바로크 미학의 완성자로 불린다. 그래서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의 건축과 조경에는 4개의 원, 그 원의 중심을 연결한 사각형, 그 사각형과 원의 접점을 다시 연결한 팔각형 같은 기하학적 원리가 적용됐다.

    [문정식]

    [문정식]

    [남궁선]

    [남궁선]

    1 파티 공간으로 바뀐 플랫폼-엘의 중정. 
    2 플랫폼-엘 내부공간에서 바라본 창. 타공된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패널로 된 창과 일반 창의 이중으로 돼 있다. 



    프랑스 건축사이기도 한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는 원, 사각형, 팔각형으로 이뤄진 이 절대왕정의 기하학적 패턴을 한국적 지형에 맞게 변용했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시설이 밀집한 만큼, 패턴은 반대로 수평적으로 무한 확장했다. 그래서 원과 사각형, 팔각형이 모두 가로가 긴 3겹의 마름모꼴 형태로 팽팽한 긴장감과 역동성을 지닌 패턴으로 재탄생했다. 그렇게 변형하기 전의 기하학 패턴은 접이식으로 개폐가 가능한 1층 철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렇다면 좁은 공간에 복합문화공간을 짓는 숙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플랫폼-엘을 밖에서 보면 장방형의 빌딩 같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텅 비어 있다. 강남 일대 주택가에서 건물 밖에 만드는 주차장용 자투리공간을 내부화하면서 이를 여러 공간을 연결하는 중정(中庭)으로 변용했다. 

    원래 호프집이 있던 지형을 본떠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중정은 1층 루이까또즈 플래그십 스토어와 카페의 앞마당이자 미술관과 공연장, 사무공간, 강의실(4층)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대형 야외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야외극장 기능까지 한다. 멍석을 어떻게 까느냐에 따라 다양한 공간으로 변용이 가능한 한옥 마당이 따로 없다. 

    그 대신 주차장과 172석 규모의 공연장을 짓기 위해 지하 20m까지 파고들었다. 공연장엔 한쪽 벽면의 수직이동이 가능한 ‘무빙 월 시스템’과 수납형 이동 객석을 설치했다. 수납형 이동 객석을 밀어넣고 복도 쪽 벽면을 개방하면 패션쇼가 가능한 공간이 열린다.

    [조영철 기자, 남궁선]

    [조영철 기자, 남궁선]

    1 평소엔 감춰져 있다 시사가 필요할 때만 올라오도록 설치된 중정의 야외 스크린. 
    2 수납형 이동객석을 접어 넣은 상태의 공연장 ‘플랫폼 라이브’. 오른쪽 벽의 들어간 부분에 수직으로 이동해 개폐가 가능한 ‘무빙 월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3 수납형 이동 객석을 펼친 상태의 ‘플랫폼 라이브’. 최대 172석까지 나온다.
    4 플랫폼-엘 2, 3층은 갤러리다. 


    서양 건축은 텅 빈 공간에 뭔가를 짓고 구획한다는 점에서 ‘채움’을 중시한다. 하지만 플랫폼-엘은 역설적으로 ‘비움’을 통해 다목적 공간을 창조해내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동양적이다. 이 역시 ‘프랑스적인 것’에 한국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플랫폼-엘의 설립 목적에 부합한다. 이정훈 대표는 “플랫폼-엘이 요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채워 넣기 위해 역설적으로 비우는 방식을 찾음으로써 더 많은 공간적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플랫폼-엘에는 이곳이 미술관이기도함을 알리는 비밀 하나가 숨어 있다. 세 방향의 외벽을 따라 구축된 공간의 2~4층은 모두 중정 방향으로 테라스가 설치돼 있다. 그 벽면은 은백색이 감도는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패널로 싸여 있고 테라스 난간은 샌드블러스트 처리된 강화유리로 돼 있다. 그런데 거기에 흐릿한 무늬가 어른거린다. 밤이 돼 조명이 비치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정체를 알기 어렵다. 

    정답은 구름이다. 불특정 구름이 아니다. 루이 14세의 궁정화가인 이스라엘 실베스트르가 1674년에 그린 ‘라톤 분수대에서 바라본 베르사유궁’ 속 독특한 뭉게구름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게 플랫-엘에는 루이 14세의 밈(meme·문화적 유전자)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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