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소리
귀가 웅웅거리니까 세상은 똑같은 소리만 낸다. 에밀레종이다. 어쨌든 그게 수술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난 그래도 중환자 넘쳐 나는 백 년 된 이 병원에선 귀여운 환자다. 구원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술은 너무하다. 베토벤도 있는데.
우정을 믿지 않는 남자 애들이 병원 뒤편에 모여 앉아 간호사의 치마 속을 상상하고 있을 때 ‘운명’이 울려 퍼진다. 날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저 병실의 천장까지는. 안 들리더라도 외마디는 지를 수 있었다.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은 내 불운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며’ ‘깨달았다’. 불끈 솟아오르는 게 사랑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박수받기 위해 살지 않았지만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은 왠지 꽃 같았다
―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에서
퇴원하던 날 난 꽃이 되었다
2년 전, 큰 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 뇌 한쪽에 물이 차 있던 상태여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따금 헛소리를 했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이 방에 UFO가 있다고, 외계인과 맞서려면 레이저 건이 필요하다며 빽빽 소리를 질렀다. 또 어느 날에는 엄마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미국에 있는 ‘닥터 하우스’에게 한시라도 빨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의식을 회복하고 조금씩 몸이 나아질 무렵, 독실에서 여러 명이 쓰는 병실로 옮기게 됐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종일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던 그곳.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이마를 꿰맨 아주머니, 당뇨병에 걸렸는데도 매일 밤 베개 아래서 몰래 초콜릿을 꺼내 먹던 아저씨, 그리고 불을 끄면 잠을 잘 자지 못하던 사내아이…. 이런 식으로 몇 명이 더 들어왔다가 나가고, 어느새 나는 헛소리 대신 농담을 즐기는 원래의 ‘오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원치 않았는데도 병실 터줏대감이 됐다. ‘구원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진통제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 뒤, 칼같이 나오는 병원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온다고 했지만 결국 오지 않은 사람들을,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열심히 기다렸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바깥 사람들을 상상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떠올렸다. 그 세상을 향해 다시 ‘날 수 있다고 믿었다’.
몇 개 월 뒤, 나는 있는 힘껏 지르게 됐다. 운명 같은 ‘외마디’ 비명을. 평생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지난 1년 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마취’ 상태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간 나를 찾아주었던 수백 명의 사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우정을 믿지 않’던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작은 일에 기꺼워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마치 ‘귀여운 환자’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난 것 같았다.
‘박수받기 위해 살지 않았지만’ 퇴원을 하자, 친구들은 내게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안도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비로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하는 현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온종일 먹먹했다. 앞으로는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르던 날이었다. ‘그날은 왠지 꽃 같았’고, 나는 그 꽃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한없이 생생하고 근사하게 피어났다. 나는 내 몸 위에 스스로 물을 주는 상상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시인 오은
*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귀가 웅웅거리니까 세상은 똑같은 소리만 낸다. 에밀레종이다. 어쨌든 그게 수술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난 그래도 중환자 넘쳐 나는 백 년 된 이 병원에선 귀여운 환자다. 구원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술은 너무하다. 베토벤도 있는데.
우정을 믿지 않는 남자 애들이 병원 뒤편에 모여 앉아 간호사의 치마 속을 상상하고 있을 때 ‘운명’이 울려 퍼진다. 날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저 병실의 천장까지는. 안 들리더라도 외마디는 지를 수 있었다.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은 내 불운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며’ ‘깨달았다’. 불끈 솟아오르는 게 사랑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박수받기 위해 살지 않았지만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은 왠지 꽃 같았다
―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에서
퇴원하던 날 난 꽃이 되었다
2년 전, 큰 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 뇌 한쪽에 물이 차 있던 상태여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따금 헛소리를 했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이 방에 UFO가 있다고, 외계인과 맞서려면 레이저 건이 필요하다며 빽빽 소리를 질렀다. 또 어느 날에는 엄마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미국에 있는 ‘닥터 하우스’에게 한시라도 빨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의식을 회복하고 조금씩 몸이 나아질 무렵, 독실에서 여러 명이 쓰는 병실로 옮기게 됐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종일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던 그곳.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이마를 꿰맨 아주머니, 당뇨병에 걸렸는데도 매일 밤 베개 아래서 몰래 초콜릿을 꺼내 먹던 아저씨, 그리고 불을 끄면 잠을 잘 자지 못하던 사내아이…. 이런 식으로 몇 명이 더 들어왔다가 나가고, 어느새 나는 헛소리 대신 농담을 즐기는 원래의 ‘오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원치 않았는데도 병실 터줏대감이 됐다. ‘구원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진통제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 뒤, 칼같이 나오는 병원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온다고 했지만 결국 오지 않은 사람들을,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열심히 기다렸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바깥 사람들을 상상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떠올렸다. 그 세상을 향해 다시 ‘날 수 있다고 믿었다’.
몇 개 월 뒤, 나는 있는 힘껏 지르게 됐다. 운명 같은 ‘외마디’ 비명을. 평생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지난 1년 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마취’ 상태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간 나를 찾아주었던 수백 명의 사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우정을 믿지 않’던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작은 일에 기꺼워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마치 ‘귀여운 환자’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난 것 같았다.
‘박수받기 위해 살지 않았지만’ 퇴원을 하자, 친구들은 내게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안도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비로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하는 현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온종일 먹먹했다. 앞으로는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르던 날이었다. ‘그날은 왠지 꽃 같았’고, 나는 그 꽃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한없이 생생하고 근사하게 피어났다. 나는 내 몸 위에 스스로 물을 주는 상상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시인 오은
*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