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동해 포구에는 가자미가 여기저기 널린다. 해정한 모래톱에서 욕심 없이 착하게 자라 살이 하얀 가자미가 요즘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을 것이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란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괏은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선우사(膳友辭) :‘반찬 친구에게 바치는 글’이란 뜻.
나조반 : 소반의 하나로 전남 나주에서 제조한 소반.
해정한 : 맑고 깨끗한.
세괏은 :‘억센’의 평안북도 사투리.
백석이 1937년 발표한 시다. 함경남도 함흥에 있을 때 지었다. 함흥 바다면 동해고, 그 바다에서는 가자미가 많이 잡힌다. 가자미는 사계절 있지만 봄에 더 많이 잡힌다. 속초, 고성 등의 포구에 가면 작은 배가 바로 앞 바다에서 가자미를 잡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가자미는 그물로도, 낚시로도 잡는다.
동해에는 참가자미, 물가자미, 용가자미가 주로 산다. 참가자미는 배 바닥에 노란색이 묻어 있다. 참가자미는 살이 차져 잘게 썰어 회로 먹는다. 물가자미는 회로도 먹지만 뼈가 연해 식해로 담근다. 용가자미는 몸집이 조금 큰데, 말려서 굽거나 쪄 먹는다.
백석이 먹은 ‘반찬 친구’ 가자미는 욕심이 없어 살이 희고, 착해서 억센 가시가 없다. 파리할 정도로 정갈하다. 붉은 고춧가루 범벅인 가자미식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진 않았을 것이다. 파리하게 정갈할 수 있으려면 불에 구운 가자미도 아닐 것이다. 짐작할 수 있는 음식은 말린 가자미를 찐 반찬이다. 바닷바람에 곱게 말린 가자미를 가마솥 채반에 올려 쪘을 것이다.
흰밥과 가자미로 차린 저녁상이고, 이를 나와서 받았으니 따스한 날일 것 같다. 쓸쓸한 저녁이라 했지만 그런 쓸쓸함은 ‘흰밥과 가자미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며 백석은 스스로를 위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