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까지 가서 동물원에 가라고? 동물을 보려면 아프리카 넓은 초원으로 떠나야지, 홋카이도로 가겠니!”
“선배, 펭귄들이 산책하는 거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예요. 산책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동물원은 가볼 만한 곳이라니까요.”
홋카이도 여행 경험이 있는 후배와의 짧은 대화다.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물원은 그냥 건너뛰려 했던 나를 붙잡고 후배는 강력하게 ‘그 동물원’에 가야 함을 강조했다.
펭귄 산책? 펭귄들이 산책하는 광경이라면 케이프타운에서도 충분히 봤는데, 일본에 가서 또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펭귄이 귀엽다고는 해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볼 만큼 가치가 있을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 옥타브 올라간 톤으로 ‘펭귄 산책’을 이야기하며 흥분하는 후배를 보면서 마음은 나도 모르게 동물원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본의 북단에 자리한 홋카이도.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홋카이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라멘부터 시작해 에끼 벤토, 게 정식, 디저트로 이어지는 군침 도는 먹을거리를 비롯해 물 좋은 온천과 스키장, 훌륭한 자연까지. 홋카이도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이런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싶었다. 가고 싶은 수많은 장소 중에서 몇 곳을 꼽기는 신상품으로 채워진 백화점에서 딱 옷 한 벌을 고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멋진 발상 돋보이는 아사히야마 동물원
그 어려움 끝에 간택된(후배의 강력 추천으로) 첫 번째 주인공이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삿포로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아사히카와에서 30분가량 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동물원 들목에 있는 코인라커에 거대한 트렁크를 구겨 넣고 펭귄을 먼저 만나러 갔다. ‘펭귄 산보’라고 안내된 팸플릿을 보고 확인해보니, 그날은 다행히 펭귄이 산책을 한다고 했다. 펭귄은 아주 추운 날만 산책을 나오기 때문에 동물원에 간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기야 극지방에 살던 친구들이니 날이 춥지 않으면 걷고 싶은 기분도 나지 않겠지.
펭귄 산책이 시작되는 오후 2시 반. 들목에 들어설 때만 해도 동물원이 한산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나 싶게 인파가 엄청났다. 눈대중으로 가늠해도 펭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100m도 넘을 듯한 긴 띠를 이루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호호 불며 펭귄을 기다리는 모습이란!
그때 펭귄들이 런웨이의 캣워크를 기다리는 모델들처럼 들목에 모였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더니 드디어 펭귄들의 산책이 시작됐다.
뒤뚱뒤뚱 한 걸음씩 내디디는 폼이 정말 귀여웠다. 하늘을 향해 부리를 쳐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오크족을 무찌르고 돌아온 작은 아라곤 같았다. 하얀 배와 까만 날개, 그리고 포인트를 주는 노란색 가슴은 펭귄의 색이, 자연의 색이 얼마나 단순하면서 아름다운지 보여줬다.
눈을 맞으며 우아하게 걷는 펭귄이 있는가 하면, 대열에서 이탈해 혼자 고독을 씹는 펭귄도 있고 헤엄치며 앞으로 가는 펭귄, 느리게 걷는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는 펭귄, 눈 속 어딘가에 배설물로 흔적을 남기는 펭귄까지 수많은 펭귄이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면서 한 걸음씩 산책하고 있었다. 이 단순해 보이는 펭귄들의 산책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펭귄들이 왜 산책을 하는 것일까? 관람객을 위한 ‘쇼’일까?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걷기는 펭귄들의 성인병 예방을 위한 운동이었다. 물론 ‘행동 전시’라는 면에서 보면 펭귄들의 산책 모습을 ‘전시’로 볼 수도 있지만, 본래 목적은 동물을 행복하게 해줘 보는 이들도 ‘행복한 동물’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니 이런 멋진 발상은 아사히야마 동물원 전체에 깔려 있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1967년 문을 열었는데, 1990년대 중반 관람객이 줄어들어 문을 닫을 위기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을 보여주는 전시 방식에 혁신을 시도해, 동물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2008년에는 3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지금은 ‘기적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꼽힌다.
펭귄 산책에 이어 펭귄관을 보러 가면 이들의 생각을 좀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남극 바다에서처럼 펭귄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수족관을 꾸며놓은 것. 수족관도 평면이 아니라 터널처럼 생겼다. 관람객들은 그곳에서 물속을 날아다니는 펭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펭귄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전국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TV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에서 만난 거대한 북극곰도 있다. 육중한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폼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북극곰과 가까운 곳에는 눈빛이 반짝이는 늑대가 살고 있다. 늑대관 또한 땅 아래에 투명 터널을 만들어 늑대를 어느 곳에서보다 가깝게 볼 수 있게 돼 있었다.
수많은 동물들 매력 … 행복 안겨주는 곳
펭귄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동물은 레서판다였다. 픽사의 인기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주인공인 푸의 사부가 이 레서판다인데,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사는 레서판다는 무척 귀여워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다 갑자기 앞에 나와 두 발로 서서 ‘너, 누구니?’ 하는 표정을 짓는 레서판다. 자리를 도저히 뜰 수 없게 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이 밖에도 수많은 동물이 각자 개성을 뽐내며 살고 있다. 모두 행복 바이러스를 풍풍 뿜어내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동물을 만날 때마다 동물이 아니라 친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행복을 안겨주는 동물원이라니, 자유롭게 노는 동물을 본 즐거움만큼이나 더 큰 배움을 얻고 동물원을 나왔다. 누군가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는 배려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창조의 힘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선배, 펭귄들이 산책하는 거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예요. 산책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동물원은 가볼 만한 곳이라니까요.”
홋카이도 여행 경험이 있는 후배와의 짧은 대화다.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물원은 그냥 건너뛰려 했던 나를 붙잡고 후배는 강력하게 ‘그 동물원’에 가야 함을 강조했다.
펭귄 산책? 펭귄들이 산책하는 광경이라면 케이프타운에서도 충분히 봤는데, 일본에 가서 또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펭귄이 귀엽다고는 해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볼 만큼 가치가 있을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 옥타브 올라간 톤으로 ‘펭귄 산책’을 이야기하며 흥분하는 후배를 보면서 마음은 나도 모르게 동물원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본의 북단에 자리한 홋카이도.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홋카이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라멘부터 시작해 에끼 벤토, 게 정식, 디저트로 이어지는 군침 도는 먹을거리를 비롯해 물 좋은 온천과 스키장, 훌륭한 자연까지. 홋카이도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이런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싶었다. 가고 싶은 수많은 장소 중에서 몇 곳을 꼽기는 신상품으로 채워진 백화점에서 딱 옷 한 벌을 고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b>1</b>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에서 주인공인 ‘푸’의 사부로 나온 레서판다. <b>2</b> 육중한 몸을 날리며 물속에 뛰어든 북극곰. <b>3</b> 아주 추운 날에만 산책을 나오는 펭귄.
그 어려움 끝에 간택된(후배의 강력 추천으로) 첫 번째 주인공이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삿포로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아사히카와에서 30분가량 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동물원 들목에 있는 코인라커에 거대한 트렁크를 구겨 넣고 펭귄을 먼저 만나러 갔다. ‘펭귄 산보’라고 안내된 팸플릿을 보고 확인해보니, 그날은 다행히 펭귄이 산책을 한다고 했다. 펭귄은 아주 추운 날만 산책을 나오기 때문에 동물원에 간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기야 극지방에 살던 친구들이니 날이 춥지 않으면 걷고 싶은 기분도 나지 않겠지.
펭귄 산책이 시작되는 오후 2시 반. 들목에 들어설 때만 해도 동물원이 한산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나 싶게 인파가 엄청났다. 눈대중으로 가늠해도 펭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100m도 넘을 듯한 긴 띠를 이루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호호 불며 펭귄을 기다리는 모습이란!
그때 펭귄들이 런웨이의 캣워크를 기다리는 모델들처럼 들목에 모였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더니 드디어 펭귄들의 산책이 시작됐다.
뒤뚱뒤뚱 한 걸음씩 내디디는 폼이 정말 귀여웠다. 하늘을 향해 부리를 쳐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오크족을 무찌르고 돌아온 작은 아라곤 같았다. 하얀 배와 까만 날개, 그리고 포인트를 주는 노란색 가슴은 펭귄의 색이, 자연의 색이 얼마나 단순하면서 아름다운지 보여줬다.
눈을 맞으며 우아하게 걷는 펭귄이 있는가 하면, 대열에서 이탈해 혼자 고독을 씹는 펭귄도 있고 헤엄치며 앞으로 가는 펭귄, 느리게 걷는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는 펭귄, 눈 속 어딘가에 배설물로 흔적을 남기는 펭귄까지 수많은 펭귄이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면서 한 걸음씩 산책하고 있었다. 이 단순해 보이는 펭귄들의 산책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펭귄들이 왜 산책을 하는 것일까? 관람객을 위한 ‘쇼’일까?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걷기는 펭귄들의 성인병 예방을 위한 운동이었다. 물론 ‘행동 전시’라는 면에서 보면 펭귄들의 산책 모습을 ‘전시’로 볼 수도 있지만, 본래 목적은 동물을 행복하게 해줘 보는 이들도 ‘행복한 동물’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니 이런 멋진 발상은 아사히야마 동물원 전체에 깔려 있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1967년 문을 열었는데, 1990년대 중반 관람객이 줄어들어 문을 닫을 위기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을 보여주는 전시 방식에 혁신을 시도해, 동물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2008년에는 3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지금은 ‘기적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꼽힌다.
펭귄 산책에 이어 펭귄관을 보러 가면 이들의 생각을 좀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남극 바다에서처럼 펭귄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수족관을 꾸며놓은 것. 수족관도 평면이 아니라 터널처럼 생겼다. 관람객들은 그곳에서 물속을 날아다니는 펭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펭귄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전국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TV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에서 만난 거대한 북극곰도 있다. 육중한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폼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북극곰과 가까운 곳에는 눈빛이 반짝이는 늑대가 살고 있다. 늑대관 또한 땅 아래에 투명 터널을 만들어 늑대를 어느 곳에서보다 가깝게 볼 수 있게 돼 있었다.
수많은 동물들 매력 … 행복 안겨주는 곳
펭귄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동물은 레서판다였다. 픽사의 인기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주인공인 푸의 사부가 이 레서판다인데,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사는 레서판다는 무척 귀여워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다 갑자기 앞에 나와 두 발로 서서 ‘너, 누구니?’ 하는 표정을 짓는 레서판다. 자리를 도저히 뜰 수 없게 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이 밖에도 수많은 동물이 각자 개성을 뽐내며 살고 있다. 모두 행복 바이러스를 풍풍 뿜어내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동물을 만날 때마다 동물이 아니라 친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행복을 안겨주는 동물원이라니, 자유롭게 노는 동물을 본 즐거움만큼이나 더 큰 배움을 얻고 동물원을 나왔다. 누군가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는 배려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창조의 힘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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