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도 한둘이 아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만 꼽아도 멜 깁슨, 러셀 크로, 제프리 러시,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주디 데이비스 등이 있다. 2월22일 열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X맨’의 휴 잭맨과 ‘킹콩’의 나오미 와츠, ‘크로커다일 던디’의 폴 호건도 호주가 배출한 월드스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 고(故) 히스 레저 역시 호주 출신. 호주 국민은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의 활약상을 자기 일인 듯 좋아한다. 그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하면 십중팔구 흥행에 성공한다.
멜 깁슨, 니콜 키드먼, 히스 레저…
호주에서 찍은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뒤 할리우드에 진출한 멜 깁슨을 제외하면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은 대부분 고향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러셀 크로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시드니에서 호구지책으로 허드렛일을 서너 개씩 해야 했다. ‘크로커다일 던디’ 시리즈로 억만장자가 된 폴 호건은 시드니 하버브리지의 페인트공으로 일했다. 휴 잭맨은 파트타임 택시운전사였다.
멜 깁슨도 ‘매드맥스’ 성공 전까지는 단역배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지독한 음주벽 때문에 촬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멜 깁슨은 만취해 패싸움을 벌이다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매드맥스’ 오디션을 봤다. 조지 밀러 감독은 기가 찼지만 거친 캐릭터를 찾고 있었기에 ‘촬영기간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를 발탁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멜 깁슨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술집으로 달려가 곤드레만드레가 돼 술주정을 부리곤 했다. 이런 그를 참다못해 함께 영화에 출연한 가수 티나 터너는 술 취한 그를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호주 출신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하면 십중팔구 흥행에 성공한다. <br><b>1</b>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2008)의 케이트 블란쳇(오른쪽). <b>2</b> ‘다크 나이트’ (2008)의 히스 레저. <b>3</b> ‘킹콩’(2005)의 나오미 와츠.
호주에서 고생이 막심했던 건 여자배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니콜 키드먼과 나오미 와츠는 단역배우 시절 나란히 수영복 광고모델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던 이들은 우연히 같은 택시에 합승해 서로를 위로하다 친해졌다. 지금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은 공통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호주에서 태어난 게 아니란 사실이 그것. 멜 깁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러셀 크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니콜 키드먼은 미국 하와이, 나오미 와츠는 영국 쇼렌햄 태생이다. 호주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과 그룹 ‘비지스’도 알고 보면 영국 태생이다. 호주에서 한 명뿐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패트릭 화이트는 부모가 영국으로 신혼여행을 하던 중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호주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출생지가 어딘지 거론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호주는 200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호주의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호주 태생이 아니라는 점을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민자라고 해서 계속 손님으로 살 이유가 없는 게 바로 호주 사회이기 때문이다.
호주 이민자 출신 월드스타들의 호주 사랑은 남다르다. 럭비광 러셀 크로는 재정난으로 팀 해체 위기에 빠진 사우스 럭비팀에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투자해 구단주가 됐다.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 럭비팀은 시드니 시민에겐 인기가 높다. 올리비아 뉴턴 존이 멜버른에 세운 올리비아 뉴턴 존 유방암 센터는 유방암 발생률이 유난히 높은 호주 여성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연구소 겸 병원이다. 그녀는 이 센터의 기금 마련을 위해 정기공연을 갖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중국 만리장성 걷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세금 문제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멜 깁슨도 호주 사랑은 여전하다. 모교인 호주 국립 드라마학교(NIDA)에 현대식 공연장을 마련하기 위해 200만 달러를 기탁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의 스튜디오 작업 대부분을 호주에서 한다. 최근 개교 50주년을 맞은 호주 국립 드라마학교 출신으로는 멜 깁슨 외에도 제프리 러시, 케이트 블란쳇, 주디 데이비스, 나오미 와츠 등이 있다.
호주 출신 배우들은 영화를 통한 호주 알리기에도 의욕적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호주 내륙의 대서사를 그린 미개봉 영화 ‘유칼립투스’는 니콜 키드먼과 러셀 크로가 주연을 맡았다.
최근 발생한 산불재난에서도 이들은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호주 국민에게 좀더 적극적인 성금 모금 참여를 독려했고, 본인들도 거액을 기부했다. 니콜 키드먼은 50만 호주달러(약 4억5000만원)를 보내왔다. 할리우드에 머물고 있던 러셀 크로는 “조국이 큰 재난을 당했는데, 멀리 해외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로 다음 날 귀국해 ‘사우스 럭비팀’의 자선모금 경기를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