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 가수 임형주. 그의 데뷔앨범 ‘샐리 가든’은 연 17주째 클래식 앨범 판매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월 팝페라 앨범 ‘샐리 가든’을 낸 임군은 대통령 취임식 때 애국가를 부르기 전까지는 무명의 소년 성악가였다. 그러나 애국가를 부른 후 그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의 데뷔앨범 ‘샐리 가든’은 연 17주째 클래식 앨범 판매 1위(핫트랙스, 인터파크 집계)를 달리며 판매량 20만장을 넘어섰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조직된 팬클럽 ‘샐리 가든’의 회원도 2만명을 넘는다. 이 같은 폭발적 인기 때문에 임군은 재학중이던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휴학해야만 했다.
“원래는 취임식 다음주쯤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방송출연과 CF, 공연 등의 제의가 쏟아져서 점점 출국이 미뤄지다 결국 휴학하게 된 거죠.” 요즘 임군은 6월13, 14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첫 독창회를 준비하고 있다. 음반 수록곡과 올드팝, 한국 가곡 등으로 꾸며질 이 공연 후에는 6월30일 카네기홀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임군은 카네기홀에서 단독공연을 하는 최연소 남자 성악가로 기록될 예정이다.
팬클럽엔 여고생·여대생 대부분
임군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취임식을 통해 전 국민에게 소개되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전에도 김동규 등 여러 성악가들이 취임식이나 월드컵 개막식 등에서 애국가를 불러왔기 때문. 임군은 “10대의 가요와 40~50대의 트로트로 양분된 우리 음악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갈망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임군의 여성스럽고 곱상한, 소위 ‘꽃미남’ 외모도 한몫했을 법하다. 임군의 팬클럽 회원 중에는 여고생 팬들이 가장 많다고.
“그런 부분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얼마 전에는 ‘보호본능을 일으킨다’는 팬레터를 읽고 한참 웃은 적도 있으니까요. 관객에게 듣는 즐거움에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드릴 수 있다면 더 좋겠죠. 소프라노 중에서도 안젤라 게오르규처럼 미모의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이루마씨(26)의 인기에도 곱상한 외모가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5월17, 18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그의 독주회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원래는 17일 공연 한 회만 예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2월에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전석이 금방 매진돼버렸어요. 공연 홍보는커녕 포스터도 인쇄하기 전이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그 다음 날로 앙코르 공연을 기획했는데 앙코르 공연 역시 한 달 전에 매진됐어요.” 호암아트홀을 운영하는 크레디아 김혜성 대리의 설명이다. 호암아트홀이 매진 사례로 인해 앙코르 공연을 기획한 것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독주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라고.
‘러브신’ 등 2장의 뉴에이지 음악 앨범과 2장의 영화음악 앨범을 낸 이루마씨는 임군과 마찬가지로 정통 클래식을 공부하다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방향을 튼 경우다. 현재도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전공하고 있다. 그동안 이씨의 피아노 연주곡들은 TV 드라마 ‘겨울연가’와 CF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한 통신회사의 CF에 모델로 등장하면서부터다. 직접 작곡한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씨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깔끔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이씨의 음반들은 통산 판매량 10만장을 넘어섰다. 이 같은 인기를 배경으로 이씨는 올 9월 3집 앨범을 출반할 예정. 그에게는 여대생 팬이 특히 많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 6월4일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머만과 피아니스트 임동혁 모두 탄탄한 실력에 빼어난 외모까지 갖춘 음악인들이다(위 부터).
가요와 팝 등 대중음악에서는 이미 외모가 실력만큼, 아니 실력 이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된 지 오래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여성 4인조 연주단 ‘본드’처럼 섹시한 외모를 무기 삼아 등장한 그룹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외모가 실력만큼 중요한 조건이 된 것일까? 임형주, 이루마의 인기에 더해 최근 10대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나 팝스타의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에 휩싸였던 중국계 미남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내한독주회 등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정통 클래식에선 외모 큰 도움 안 돼”
빼어난 외모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까지 한층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중반부터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커플,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와 올리 무스토넨 등 미남미녀 연주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6월4일 첫 내한공연을 하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머만은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당시 그는 쇼팽을 연상케 하는 창백하고 가녀린 얼굴로 화제를 모았다. 5월31일에 열리는 월드컵 1주년 기념 연주회에 참가하는 팝페라 가수 알렉산드로 사피나도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의 소유자다. 한 클래식 공연기획자는 “솔직히 말해서 잘생긴 아티스트의 경우는 쉽게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 때문에 홍보부터가 수월하다. 특히 음반판매보다 실제 연주자를 볼 수 있는 공연무대에서 관객 반응이 확연하게 차이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향은 뉴에이지나 팝페라 등 크로스오버 쪽 장르에 국한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직 정통 클래식에서는 연주자의 외모가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것. 워너뮤직의 서동진 상무는 “본질적으로 클래식 음악은 기획자나 연주자, 애호가 모두 보수적이다. 다만 대중성이 한결 강한 크로스오버의 경우에는 외모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클래식 음악계의 ‘꽃미남’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팝, 가요와는 다른 문제다. 클래식에서는 ‘실력은 없지만 외모는 A급’인 경우를 찾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후에 외모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EMI 클래식의 이동은 대리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항상 많기 때문에 음반사나 기획사에서는 이왕이면 실력과 외모를 모두 갖춘, ‘상품성이 월등한’ 재목을 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클래식 연주자가 되려고 해도 잘생긴 외모를 갖춰야 하는 걸까. 임형주군의 말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항상 제 스스로를 클래식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왔어요. 앞으로도 예술가곡과 오라토리오를 전공할 거고요. 하지만 클래식 아티스트도 비주얼 시대를 비껴갈 수는 없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