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정의의 아이디어
아마르티아 센 지음/ 이규원 옮김/ 지식의날개/ 560쪽/ 3만3000원
불평등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후생경제학자이자 아시아인 최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평생 화두로서의 정의론. 일생 스승으로 삼았던 존 롤스의 ‘정의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의를 완벽하게 정의하기보다 가치판단의 복수성을 인정하면서 그것들 간 비교접근을 통해 합의된 부정의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촉진하자고 제안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대륙적 관념론의 전통에 서 있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영국적 경험론의 전통에 서 있다면 이 책은 다원주의적 시각에서 양자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다. 철학과 정치학 외에 경제학과 자연과학,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신의 논지를 펴나간다.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인도 출신 경제학자의 부인이 세계적 대부호로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제사학자 엠마 로스차일드임도 발견할 수 있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리커버 버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오윤성 옮김/ 동녘/ 288쪽/ 1만6800원
현대인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으로 맺어진 가상의 세계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러나 트위터 팔로어 수가 늘고 페이스북 친구가 증가해 온라인상에서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면서도 정작 오프라인 현실에서는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는 이가 적잖다. ‘상시 접속’ 중이면서도 현대인이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2년 전 고인이 된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가을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민음사/ 333쪽/ 1만4000원
소녀와 노인의 우정에 관한 소설이다. 그런데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화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강사 엘리자베스다. 그는 10대 시절 학교 숙제로 이웃과 인터뷰를 하려고 우연히 80대 노인 대니얼의 집을 방문했다 그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이 쌓은 우정의 근원과 그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를 넘나들며 잔잔하게 펼쳐진다.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4번이나 오른 경력이 있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작가 앨리 스미스의 독특한 문체가 돋보인다.
리테일의 미래
황지영 지음/ 인플루엔셜/ 308쪽/ 1만6800원
현재 국내 유통업계의 최대 화두는 새벽배송이지만, 해외 유통업계는 이보다 몇 발 더 앞서나가고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한 음성 주문, ‘아마존 고’ 같은 무인(無人) 매장, 증강·가상현실 서비스가 미국, 중국, 유럽 소비자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알리바바는 ‘30분 배달’로 고객의 냉장고를 없애겠다는 각오고, 아마존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물류센터를 구상 중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마케팅 연구가이자 대학교수인 저자는 ‘리테일테크’가 유통업과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면밀하게 추적한다.
셀린
피터 헬러 지음/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488쪽/ 1만5500원
데뷔작인 ‘도그 스타’가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스타덤에 오른 작가 피터 헬러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첫 탐정소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주인공 셀린이다. 고령의 귀부인 탐정은 번득이는 지성과 관찰력은 물론, 예리한 사격 실력까지 자랑하며 20년 전 홀연히 사라진 유명 사진작가의 실종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작가의 어머니를 실제 모델로 한 우아하고 파격적인 할머니 탐정은 소설 마지막 쪽까지 독자를 이야기의 궤도 안에 단단히 붙들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