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테면 감독에게 명성을 안겨준 ‘비기너스’(Beginners · 2010)는 그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미술관 큐레이터인 주인공은 아내가 암으로 죽고 75세가 됐을 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다른 삶을 ‘시작’하는데, 실제로 감독의 부친이 75세 에 커밍아웃했다. 이 영화에는 성적 정체성에 관한 현대 사회의 논쟁적인 질문이 녹아 있는 셈이다. 밀스 감독의 신작 ‘우리의 20세기’는 그의 모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대적 배경은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던 1979년. 카터가 ‘소비주의의 향락’을 비판하며 ‘삶의 의미’를 강조하던 때다(카터의 1979년 TV 연설 ‘자신감의 위기’ 장면이 영화에 삽입돼 있다). 사춘기 소년 제이미(루커스 제이드 주먼 분)는 제도사(製圖士)인 엄마 도로시아(애넷 베닝 분)와 함께 산다. 이 집엔 사진기자인 페미니스트 애비(그레타 거위그 분), 그리고 히피 세대인 자동차 정비공 윌리엄(빌리 크루덥 분)이 세입자로 살고 있다. 엄마는 ‘공황 세대’(193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 윌리엄은 60년대 히피 세대, 그리고 애비는 70년대 페미니즘 세대를 각각 대표한다. 여기에 제이미의 여자친구 줄리(엘르 패닝 분)가 제집 드나들듯 하는데, 이들 10대는 펑크 세대다. 즉 기존 질서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청춘이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시구(詩句)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우리의 20세기’를 즐기는 데 아라공의 시만큼 적절한 접근도 없을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중략)/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 열매 없는 빈 나뭇가지에 불과하다’(‘미래의 시’ 중에서).
이 영화에도 자전적 내용이 섞여 있다. 실제로 밀스 감독의 모친이 제도사였다. 그가 모친의 뜻대로 ‘열매 있는 나무’로 성장했는지는 관객이 영화로 판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