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이 열린 것은 6월.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 때문에 객석에서 냉방장치가 웅웅거리는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음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한국 공연장을 찾았던 마주어는 객석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종문화회관측은 부랴부랴 냉방장치를 껐고, 관객들은 찜통 같은 더위를 참으며 연주를 들어야 했다. 전문 공연장이라기보다는 ‘행사장’에 가까운 세종문화회관의 한계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이 같은 속사정을 모르는 마주어의 입장에서는 공연장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냉방장치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다시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후에도 세종문화회관의 공연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난방 장치를 가동할 때 나는 소음은 여전히 연주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음향·시설 개보수 작업 한창

국립극장과 호암아트홀 등 강북의 대표적인 공연장들도 세종문화회관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콘서트홀, 오페라극장, 토월극장 등 공연 목적에 따라 극장이 나뉘어 있는 예술의전당이나 최고급 음향설계자와 건축가들을 초빙해 지은 LG아트센터 등 강남 공연장들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강북 공연장들은 ‘종합공연장’이라는 어정쩡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결과적으로 어떤 공연을 해도 음향이나 객석 규모 등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이들의 말처럼 오케스트라 공연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페라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실내악은 LG아트센터가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강북은 강남에 비해 주거 여건은 떨어져도 문화시설만큼은 비교할 수 없다고 자부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문화마저도 강남에 역전돼 버린 것이다.

강북의 공연장들은 강남의 공연장들에 비해 자신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국립극장은 이미 2000년 3월 발 빠르게 변신을 시도했다. 7개 전속단체 중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을 독립 법인화하고,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등 4개만 남겼다. 전속단체의 성격상 국립극장은 자연스럽게 연극과 전통예술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국립극장에서 독립한 3개 단체는 현재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다. 각자 전용극장을 찾아갔으니 단체들의 입장에서도 ‘윈`-`윈 게임’을 한 셈이다.

중형 공연장인 호암아트홀도 변신의 와중에 있다. 호암아트홀은 예술의전당 개관 후 별다른 공연을 유치하지 못하고 한때 강당이나 영화관으로도 사용되는 등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3월부터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가 위탁 경영을 맡으면서 밤 10시에 열리는 녹턴 음악회나 모닝 콘서트 등 독특한 기획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보수작업을 통해 좌석 수도 866석에서 640석으로 대폭 줄이고 대관 공연은 전혀 하지 않는다.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400석 이상은 채워지는 편”이라고 크레디아측은 전했다.

그러나 보수공사를 한다 해도 지나치게 큰 규모, 행사장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객석 형태 등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사실 세종문화회관측은 보수보다 1500석 규모의 중극장 건립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한때 소격동의 기무사 부지나 서대문의 기상청 부지 등이 중극장 건립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논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상태.
조성진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술국장은 “중극장이 건립되면 중극장을 클래식 전문 공연장으로 삼고 대극장은 대중가요나 뮤지컬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싶다. 세종문화회관뿐만 아니라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진 강북의 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도 중극장 건립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강한 희망을 피력했다.
주간동아 341호 (p78~79)